퍼스널리티

강호동, 나이 먹은 호랑이의 예능 생존기

2015.10.05

“내 팔자가 파이팅을 타고 난 걸 어떻게 하냐.” 네이버 TV캐스트 [신서유기]에서 “형은 파이팅 넘치는 것만 좀 줄이면 될 것 같다”는 은지원의 조언에 강호동은 이렇게 대답했다. 왜 아니겠는가.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고도 씨름 선수로 성장해 황제 이만기를 꺾은 앙팡테리블 천하장사. 그리고 씨름 선수로서의 최전성기에 코미디언으로 전향한 뒤 유재석과 함께 MC의 시대를 만들었던 최고의 진행자. 파이팅 하나로 스포츠와 예능, 두 개 분야에서 한국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그의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이하 ‘1박 2일’) 시절 별명은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였다. 그리고 그는 올해 만 45세의 나이에도 작가에게 내일 방송을 위해 물에 뛰어들 필요는 없느냐고 묻는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호랑이의 여전한 파이팅. 하지만 정작 [신서유기]는 이 여전함에 대해 ‘전형적인 옛날 MC 마인드’라는 자막으로 응수한다. 주름이 늘고 근육이 줄어들어도 강호동은 자신이 과거의 ‘그’ 강호동이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동시대의 예능은 이제 그 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요청한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세금 미납 문제로 1년여 자숙의 기간을 갖다가 복귀한 이후 강호동의 성적표는 꾸준히 좋지 않다. 화제를 모으며 다시 시작했던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는 정우성 등의 대형 게스트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예전만 못한 관심을 받다가 종영했으며, 역시 그의 안방이었던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도 재정비 기간을 위해 최근 시즌 1이 종영됐다. 새로 맡은 프로그램 중엔 KBS [우리동네 예체능]을 제외하면 KBS [달빛 프린스]와 [투명인간], MBC [별바라기] 등은 처참한 시청률과 함께 2~3개월 내로 조기 종영했다. 단순히 흐름과 기세가 꺾인 슬럼프라고만 보긴 어렵다. 잠시 화제를 모았던 [우리동네 예체능] 농구 편에서 보여주었듯 강호동은 여전히 기운 넘치는 모습으로 때론 가슴이 뜨거워지는 어떤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만 지금의 시청자들은 정치나 성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예능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JTBC [썰전]과 [마녀사냥], 포맷의 참신함이 돋보이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일밤] ‘복면가왕’, 반대로 설정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디테일을 극대화해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나영석 PD의 예능, 그리고 수많은 ‘쿡방’에 익숙해졌다. 역대 가장 팀워크가 견고한 예능인 MBC [무한도전]과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을 제외하면 역시 신규 프로그램에서 고전 중인 유재석에게서도 볼 수 있듯, 한 사람의 카리스마 혹은 말솜씨로 프로그램을 이끌 수 있던 MC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강호동은 말하자면, 한 시대의 끄트머리에 선 마지막 거물이다.


하지만 호랑이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 아무리 시청률이 낮고 회자조차 되지 않더라도 [투명인간]의 그는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일반인과 팔씨름 대결을 하며 구경 온 사람들에게 “소리 질러!”라 외친다. 제목 그대로 구민회관 스케일의 [우리동네 예체능]에서도 마치 국가대표 경기 같은 비장함과 박력으로 게임 시작을 알린다. 그와 함께 ‘1박 2일’의 전성기를 누렸던 나영석 PD는 에세이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에서 [해피선데이] ‘준비됐어요’의 실패에도 아무 내색 없던 강호동의 말을 소개한다. “선수는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나머지는 감독이 알아서 하는 거 아닙니까.” 팀이 연패를 해도, 잘못된 전술의 희생양이 되어도 선수는 자기 차례엔 모든 걸 올인해야 한다. 파이팅을 타고난 팔자란 그런 것이다. 지치고 상처 입어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으르렁거리는 삶.

[신서유기]의 강호동이 낯설다면, 단순히 이승기, 은지원 등의 놀림감이 되어서만은 아니다. 그들은 ‘1박 2일’ 시절에도 겁 없던 동생들이었다. 그 시절의 강호동이 그럼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진행을 고수했다면 [신서유기]의 강호동은 이승기의 거침없는 멘트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요즘 누가 진행을 하느냐”는 은지원의 타박에 기가 죽는다. 익숙한 사람들과 재회하고 마음의 짐을 어느 정도 내려놓은 호랑이는 비로소 괜찮은 척했던 자신의 지친 몸과 상처를 드러낸다. [우리동네 예체능] 사이클 편에서 승부욕을 불태우며 허벅지가 터져라 페달을 밟았던 그는, 하지만 [신서유기]에서 벌어진 자전거 레이스에서 이승기, 은지원 팀을 따라잡을 수 없자 어느 순간 느긋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확실히 젊은 것들이 잘하네.” 세월의 무게를 지고 변화의 급류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던 그는 이제 자신의 휘청거림을 숨기지 않는다. 전성기에 언제나 진정성을 강조하던 그지만, 지금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현재의 강호동이 정말 가슴을 건드리는 건 그다음이다. [신서유기]의 강호동은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숨기지 않지만 그것을 전시하기보단 그 안에서 그럼에도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촬영을 위해 중국어 공부를 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는 “새벽 2시 3시까지 그냥 무너지는 거야. 목표도 없고 그냥 무너지는 거야”라며 옛날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덧붙인다. “지치면 시후 눈을 보고 또 박차를 가하고.” 이제 더는 타고난 혈기와 야성으로 방송을 호령할 수는 없다. 대신 잠든 새끼 호랑이를 보며 다시금 전의를 불태운다. 명언 좋아하는 습관에 대해 20년 전 개그 센스에 대해 놀림을 당하고, 때때로 기가 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믿는 프로로서의 파이팅을 버리지 않는다. 맞다. 구식이다. 한때 세상을 다 가졌던 구식 MC의 파이팅은 결코 예능의 시계를 뒤로 돌릴 수 없다. 대신 움직이는 시곗바늘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는 그 외로운 모습은 이제 허파가 아닌 심장을 건드린다. 멸종 위기의 나이 든 호랑이는 백수의 왕이 아닌 연민의 대상이다. 하지만 호랑이는 직접 연민을 구하지도 동정 섞인 인간의 먹이를 바라지도 않는다. 센 척하지 않고 지친 표정 안에서 역설적으로 백수의 왕의 위엄은 드러난다. 물론 그것만으로 그가 예능 신세기의 엄동설한을 이겨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추위를 견뎌내는 이 한 마리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의 적응기, 아니 생존기를 앞으로도 바라보고 싶다. 아마 이 감정은 연민이 아닌 존중에 가까울 것이다.

글. 위근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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