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안, 분노가 이긴다

2015.09.16

#AngerWins. 온라인 연대 ‘메갈리아’가 최근 몇 달 동안 이룬 승전보를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는 이 해시태그가 붙어야 할 것이다. 성인사이트 소라넷을 통해 공공연히 유통되던 몰래카메라 사진에 대해 지속적인 캠페인과 소라넷 자체에 대한 온라인 공격으로 해당 이슈를 뜨겁게 공론화시킨 덕에 지난 8월 워터파크 몰래카메라 사건 이후 경찰은 몰래카메라 근절 대책을 내놓았으며, 얼마 전 [맥심 코리아] 9월호에 여성 납치 범죄를 연상시키는 커버 사진이 사용되자 [맥심 코리아]와 [맥심] 본사에 지속적인 항의와 청원으로 압박해 결국 [맥심 코리아] 측의 사과문을 받아냈다. 가장 최근에는 소셜 커머스 회사 위메프와 티몬에서 초소형 몰래카메라를 판매하다가 ‘메갈리아’ 회원들의 항의 및 신고에 바로 해당 판매를 중지하기도 했다. 짧은 기간 동안 벌어진 이 일련의 기록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분노가 이긴다.

참기보단 화내고, 떨기보단 화내며, 도움을 청하는 대신 화낸다. ‘메갈리아’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타칭 메갈리안들의 글에는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여성 혐오와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공공연하게 드러난다. 논리적이고 차분한 반박도 있지만 심한 막말도 많다. 많은 이들이 ‘메갈리아’의 방식에 대해 과격하다고 우려를 표하는 건 그래서다. 이러한 과격함이 오히려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잘못된 전략이라는 지적 역시 있다. 즉 이기는 방법이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앞서의 사례들이 증명하는 건, 오히려 그 반대다. 커버가 문제가 되자 [맥심 코리아]의 한 남성 에디터는 페이스북을 통해 “미화할 거였으면 소지섭을 썼겠지”라고 비아냥댔다.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회피하는 상대 앞에선 누구라도, 심지어 세상의 반수라도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을 제대로 된 논의의 장으로 끌어 앉히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지랄을 해서라도 깨갱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메갈리아’의 분노와 막말, 강력한 행동력은 선택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온전히 주체 대 주체로 싸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값이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저서 [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2005년 파리 소요 사태에 대해 “폭동은 단지, 가시성을 얻기 위한 직접적 노력”이었다 말한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의 시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는 진정한 정치적 사회적 공간에서 배제되어 있다고 느”낀 시위자들은 행동을 통해 “싫든 좋든, 우리는 여기 있다. 애써 우리가 안 보이는 척해봐야 소용없다”고 발언한다. 끊임없이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존재에게 때로 과격함은 주체가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 된다. 존중은 연민이 아닌 두려움으로부터 온다.

‘메갈리아’의 반대자들이 그들을 ‘여자 일베’라 칭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또한 그에 대한 메갈리안들의 반박 논리이기도 한 ‘미러링’ 개념은 그래서 지금에 와선 오히려 논의를 공회전 시킨다. 물론 단순한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에 대한 혐오는 맥락이 다르며 폭력의 질 역시 다르다. 하지만 실천적 차원에서 어쨌든 이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는 그 윤리적 빈틈을 파고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미러링’ 개념으로 방어하지만, 사실 현재 ‘메갈리아’의 분노에 찬 남성 혐오는 남성들에게 사실 너희가 하던 게 이런 것이었다는 걸 비춰주는 정적인 거울이 아니다. 그보단 우리도 너희에게 아픔과 쪽팔림을 줄 수 있는 주체라는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선언에 가깝다. 이러한 능동적 주체로서의 ‘메갈리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예시가 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켰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라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쫄지 마, 씨바”라는 유행어로 상징되듯, [나는 꼼수다]의 미덕은 제대로 된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해선 상대의 덩치에 쫄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씨바”라고 욕을 해서라도 나도 화낼 수 있고 나도 뒤엎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에 기꺼이 동참했던 이들조차 메갈리안들이 성폭력과 몰카와 혐오가 판치는 세상으로부터 쫄지 않고 “씨바”라고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하다 말하는 건, 이 세상이 여성들에겐 여전히 불균형하고 기만적이며, 앞으로 더 많은 “씨바”와 분노와 지랄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실제로 메갈리안은 여성을 혐오하는 ‘씹치남’에 대해 분노하고 그들의 ‘실자지’를 비웃으며 쫄지 않고 훨씬 많은 개선을 이뤄냈다.

물론 앞으로의 싸움에서도 분노만으로 이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폭력에 대한 ‘미러링’으로서 정당화되는 한 줌 반폭력이 아닌, 적극적이고 대등한 싸움을 위한 폭력은 결국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단계로 이행해야 한다. 일부 유저들의 장애인, 성소수자 비하를 ‘메갈리아’ 전체의 의견으로 매도할 수 없지만 이에 대한 내부 지적을 무조건 ‘찻내’(다음 카페로 대표되는 친목적인 여성 커뮤니티 분위기를 비하하는 표현)나 ‘자정충’이라는 말로 윽박지르고 ‘미러링’ 개념으로 정당화하는 것도 어느새 다양한 목소리가 모이게 된 대중운동으로서의 ‘메갈리아’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수많은 싸움이 증명하는 건, 너희가 무기를 버리면 도와주겠다는 이들의 선심보단 내 손에 들린 몽둥이가 훨씬 믿을만하다는 것이다. 분노 이후를 말하고 싶다면, 좋은 말로 해도 알아먹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게 우선이다. 그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이 화난 얼굴의 아마조네스들을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온전한 주체로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이 사태에 대한 결과가 아닌 원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글. 위근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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