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설계된 망각], 뇌는 속인다

2015.09.04

지뢰 폭발 이후 남북한 긴장이 고조되던 8월,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하나가 글로벌 트렌드로 떴다. #PrayForKorea(한반도를 위한 기도). 살벌한 서울발 뉴스를 보던 외국인들은 이 해시태그를 달고 평화 기원 메시지를 올렸다. 북한이 최후통첩일로 정한 8월 22일이 다가오자, 내가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쓴 세계 곳곳의 평화주의자들부터 자기 가수의 사진을 걸어둔 K-POP 팬들까지, 트위터 세계는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간절함으로 하나 되다시피 했다.

딱 한 곳 예외가 있었는데, 한국이었다. 해시태그에서 한국어 메시지는 어김없이 분위기를 깼다. “맥주에서 맥주 맛이 나게 해주세요.” “엑소 콘서트 1열.” “[헌터헌터]가 휴재 없이 완결 나게 해주세요.” “회식이 사라지게 해주세요.” 한국에 사는 외국인도 가세했다. “엑티브 엑스도요.” 세계가 진지한데 드립만 치기 미안했는지 한국어 트위터 사용자들은 #WeAreFineThankYou(우리 괜찮아 고마워)라는 해시태그를 띄웠다. 한국의 평화를 세계에 알리는 방법은 치킨 사진이었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가장 과소평가하는 게 한국인이라는 말이야 사실이지 싶다. 그래도 한국인 특유의 안전불감증을 한탄하는 습관성 우국지사가 되는 것보다는 나은 설명이 있다. 신경과학자 탈리 샤롯은 [설계된 망각]에서, 인간의 뇌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기보다는 낙관주의로 기울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뇌는 나쁜 일은 더 잘 잊어먹고, 현실의 확률보다는 일이 더 잘 풀리리라고 근거 없이 예측하며, 폭락장에도 내가 산 주식만큼은 오를 거라 믿어버린다. 샤롯은 이걸 낙관 편향이라고 부른다.

일이 잘못될 확률을 과소평가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전쟁은 발생 확률이 낮지만 일어날 경우 결과가 워낙 파국이어서, 우리 뇌가 매번 전쟁의 기댓값을 정확히 계산했다가는 전쟁보다 스트레스가 더 많은 한국인을 쓰러뜨릴지 모른다. 낙관주의는 실제로 일이 잘 되도록 이끄는 힘도 있다. 학생을 무작위로 골라 이들의 지능이 높다는 거짓 정보를 교사에게 흘리면, 성적이 정말로 올라간다. 어느 정도의 낙관 편향은 정교한 현실 인식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뇌에 세팅되었다. 물론 이게 과하면 서브프라임 위기를 무시한 월스트리트 꼴이 된다.

샤롯이 소개하는 연구 중 내가 특히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심리학 연구를 보면, 자녀는 부모를 불행하게 하는 요소다. 육아 시간이 늘수록 불행도 커진다. 그런데도 아이가 행복을 준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이 답 없는 투자를 부모가 기꺼이 하게 만드는 유력한 방법이라서다. 낙관 편향이 뇌를 속여준 덕에 우리 종은 살아남았다! “아이를 낳고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라며 나도 빨리 결혼하라는 지인들이 있다. 그럴 때는 이 연구를 들려주고 표정을 본다. 순간 당혹감이 스치다가, 곧 지금 행복이 가짜일 리 없다는 확신이 떠오르고, 결국 내가 아이가 없어서 뭘 모른다는 결론으로 평온을 찾는, 인류를 멸종으로부터 건져낸 낙관 편향의 위대한 드라마를 3초 버전으로 볼 수 있다. 나도 안다. 이거 꽤 악취미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썼다. 2014년 11월부터 사회 기사를 쓴다. 농땡이를 보다 못한 조직이 발로 뛰는 부서로 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정확하다.

디자인. 전유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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