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필석 “불안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생각해요”

2015.09.02
아무리 한국에서 가장 ‘게이 프렌들리’한 곳이 공연계라 해도 연극 [프라이드]는 여러모로 쉬운 작품은 아니다. 대사나 액션, 상황의 수위가 상당히 세다. 당연히 그들이 경험하는 감정의 진폭도 크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형식은 불친절한 데다 러닝타임은 3시간이다. 그러나 많은 관객은 2014년 가장 인상적인 연극으로 [프라이드]를 꼽는다. 50여 년간 치열하게 삶을 살아낸 소수자들의 이야기에는 성정체성을 떠나 모두가 느끼는 외로움과 함께하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데뷔 11년, 유난히 예민하고 쓸쓸한 정서를 도맡아온 강필석과 [프라이드]는 최적의 조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만나 물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쓸쓸함에 대한 어떤 이야기다.

[프라이드]가 초연 당시 워낙 화제였던 작품이라 부담됐을 것 같아요.
강필석
: 초연 때 캐스팅 제안을 받았지만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할 수 없었거든요. 하려고 했던 스케줄이 없어지는 바람에 그때 했어야 됐는데 싶었죠. (웃음) 사실 초연을 봤어도 잔상이 강하진 않았는데 텍스트를 다시 보고 장면을 만들어가다 보니 잔상이 들어오더라고요.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고. 최대한 잊으려 했지만 워낙 잘된 작품은 그게 쉽지 않잖아요. 정말 좋지 않은 이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게 맞을까? 여러 물음표가 수없이 떴고요. 처음에는 서로가 답을 몰랐고, 지금은 어느 정도 답을 아는 상황이다 보니까 표현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답답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했죠. 우리 계통이 답이 없잖아요.

연습 과정에서 내 생각과 조금 다르다고 했던 게 있었나요?
강필석
: 무대에서 연기할 때 가장 경계해야 되는 지점인 것 같은데, 감정들이 너무 크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짜 이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사람들은 감정을 그렇게 드러내지 않아요. 울려고 작정한 게 아닌데 그냥 말을 하다가 갑자기 울 때가 있잖아요. 오히려 그런 게 굉장히 가슴 아프죠. 이야기에 집중하면 감정이 저절로 느껴지니까, 조금 더 건조한 척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어요.

‘역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방편이지만,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15년이 수시로 교차하기 때문에 드라마를 쌓아가는 게 쉽지 않은 작품이죠.
강필석
: 맞아요. 58년도의 필립은 격정적인 상황이 많아서 더 그래요. 1막 1장, 3장, 5장이 58년도인데 중간 이야기들은 빠져 있어요. 올리버와 처음 만났을 때 식당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3장과 5장 사이에 필립과 올리버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진짜 좋은 공연은 이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고 툭 뱉었는데 거기에 관객들이 우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려면 앞에 드라마가 쌓여야 하고요. 이건 말 그대로 왔다 갔다 하니까 그게 가능할까? 라는 질문도 참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 중간을 하고 있는데, 자꾸만 감정적으로 가는 부분이 있어서 어려워요. 58년도 대사는 문어체가 많아서 리얼하게 주고받는 것도 쉽지 않고. 이 작품 전에 형식적으로 복잡했던 [스피킹 인 텅스]를 해서 리딩할 때 명쾌하다! 라고 느꼈는데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렵네요.

사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캐릭터가 더 중요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필립을 어떤 인물로 만드셨나요?
강필석
: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겉으로 봤을 땐 너무나 유쾌하고 저 사람은 진짜 안 가진 게 뭐지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나이스한 사람. 그런데 정작 혼자 있을 때는 비어 있는. [프라이드]에서 가장 변화가 많은 사람이 필립이에요. 그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려면 그럴 것 같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찔러도 절대 안 들어갈 것 같은 사람이 갑자기 확 무너지는 모습이 매력적이겠다 싶어서 오히려 더 이성적이고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사람으로 만들었죠. 이 사람은 가진 게 많아 보이지만 사실 자기 것은 없거든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지금 이걸 해야 하니까 해온 사람이죠. 우리 주위에 있는 대부분이 그래요. 요즘에야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작품을 하면서 아버지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아버지가 30년 군인이셨는데 한 번도 여행을 같이 가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죠. 저도 나이가 들고 아버지도 퇴직하시고 나니 누굴 위해 저렇게 열심히 일하셨을까 싶더라고요. 아버지라고 가족들이랑 여행갈 생각을 안 하셨겠어요. 필립 역시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고 보니 필립은 가장이네요.
강필석
: 저는 사랑 때문에 모든 게 생긴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작품을 볼 때 이 인물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제일 먼저 찾아요. 흔히 말하는 남녀 간의 사랑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핸드폰이 될 수도 있어요. 사랑 때문에 화도 나고 울기도 하고 결핍도 생기는 거고. 마음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거죠. 필립은 방어기제가 굉장히 강한 사람인데 그게 자기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라고 생각했어요. 이민 가고 싶다고 하잖아요.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아서 형이 재산을 물려받고 엄마를 책임지지 않아도 됐다면 이민 갔을 거예요. 올리버가 아내인 실비아 얘기할 때 가장 화를 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울타리를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 올리버를 만나서 자신, 가족, 올리버와 자기 안에서 엄청 싸우게 된 거예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불안했던 시기를 연극으로 만들 수 있는 것 같은데, 그 58년이 필립의 인생에서는 가장 큰 사건이었을 것 같아요.

본인의 인생을 연극으로 만든다면 언제가 될 것 같아요?
강필석
: 10대, 20대는 다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30대 초반은 좀 잔잔하고, 50대는 또 나름대로 부인 있는 드라마가 나오겠죠. 안정적인 사람이 어딨어. 불안함을 느끼지 않으면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한대요. 가령 지금 100억 원이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되지만, 아무것도 안 할 거냐는 거죠 인간이. 어떤 연출가가 작업의 원동력이 뭐냐는 질문에 불안함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봤을 때는 너무나 뛰어난 연출가인데 연습실 갈 때마다 불안해 죽을 것 같고, 첫 공연 올라갈 때 심장이 터질 것 같대요. 근데 그것 때문에 한다고. 제가 오해해서 해석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 순간부터 저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사람은 끊임없이 안정적이고 편안한 것을 원하지만 불안하기 때문에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불안함을 견디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뭐죠?
강필석
: 자기죠. 배우는 특히나 자신을 믿어야 해요. 앞에 막 200명, 1000명 있는데 어떻게 해요. 의심하는 순간 끝이에요. 군대에서는 연기를 할 수 없으니까 연기 서적을 읽고 또 읽어서 ‘그래! 연기는 이거야!’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제대하자마자 학교에서 작품을 했는데 내가 생각한 거랑 너무 다른 거예요. 스타니슬랍스키, 미카엘 체홉 같은 메소드 서적만 계속 봤으니 매칭이 안 되죠. 길게 나오는 역할도 아니었어요. 근데 무대에 섰을 때 관객 눈을 못 보겠더라고요. 너무 무서웠죠. 내일도 과연 무대에 설 수 있을까. 그날 첫공 올리고 엄청 울었어요.

지금은요?
강필석
: 세뇌해요. 처음 주인공 맡았을 때는 더 그랬어요. 연극만 해서 무대에서 노래를 해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뮤지컬 주인공을 하게 됐어요. 너무 불안했죠. 인터미션 있는 게 싫을 정도였어요. 진짜 1000, 1500명 관객으로 꽉 차 있는 무대에 서 있으면 밀릴 정도의 기운이 있어요. 그래서 계속 혼자 궁시렁거리면서 세뇌를 했죠. 저 사람들은 너를 보러 온 게 아니야 같은. (웃음) 생각해보면 그건 다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걸 망쳐버리잖아요. 옛날에는 공연하거나 연습 중이면 오디션 제안이 와도 그 노래 하나를 못 했어요. 집중이 안 돼요. 이제는 떨어져서 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쟁취해야 되는데 그 순간 그걸 못 하면 그냥 훅 넘어가요. 이거 놓쳤구나? 그럼 다음에 저거 잡아야지. 근데 그때는 지나간 걸 계속 잡으려고 했으니까요.

사진 촬영할 때 ‘피로함’을 주문했는데 굉장히 쓸쓸해 보였어요. 그동안 했던 작품에도 쓸쓸한 정서가 늘 있고요. 대체 그 근원은 어딘가요.
강필석
: 아, 모르겠어요. 가을 타서 그래요. 지금 같은 가을바람이 탁 불어오면 되게 꼬맹이일 때부터 ‘아휴, 올해 끝났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가을바람 처음 불 때 다들 그런 기분을 느끼지만 저는 좀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쓸쓸하고 외로운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예전엔 혼자 여행을 진짜 많이 다녔어요. 근데 어느 순간, 뭘 보고 너무 좋아서 얘기를 하고 싶은데 얘기할 사람이 없다는 게 갑자기 미치겠더라고요. 너무 허무한 거예요. 지금 뭐하는 거지? 대체 뭘 보고 다니는 거지? 싶더라고요. 한 4년 됐는데 그 이후로는 혼자 여행 절대 안 가요. 그런데도 어떤 영화나 공연 같은 것을 봤을 때 잔상이 남는 건 늘 외롭고 쓸쓸한 그런 것들이에요. 요즘은 사람들 템포가 빨라졌는데 2015년에 쓸쓸한 정서를 계속 가져가려고 하니 이게 문제에요. (웃음)

세상이 빨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쓸쓸함을 느끼는 사람은 있고, 어떤 상황에서 단 하나의 감정만 느껴지는 게 아니니까요.
강필석
: 올해로 데뷔한 지 11년째인데, 모든 배우가 무게감을 드러내는 연기를 하고 싶어 하잖아요. 어릴 때는 저도 그런 작품에 더 끌려서 쇼뮤지컬이 들어와도 안 했었어요. 그래서 나이 많은 역할도 많이 했고요. 그러다 2009년에 [김종욱 찾기]를 했는데 그 작품이 거의 처음으로 도전하는 로맨틱 코미디였어요. 제가 하는 작품은 항상 숨죽이는데 여기서는 막 관객들이 웃으니까 가슴이 막 간질간질해지는 거예요. 너무 웃고 싶어서. (웃음) 되게 희한한 경험이었죠.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역할인데도 해피엔딩이기도 해서 힘들지가 않았어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할 때는 기가 다 빠져서 공연 끝나고 한 시간 동안 분장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던 적도 있어요. 물론 두 정서가 모두 매력적이지만, 저는 선배님들 연기하시는 걸 봐도 유쾌해도 슬픈 작품이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어떤 건가요?
강필석
: 작년에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를 봤는데, 아후, 신구 선생님 정말 인간문화재 같으시더라고요. 되게 경쾌한 호흡을 쓰시는데 너무 슬픈 거예요. 죽겠더라고요. “야~ 홍매야” 그냥 이거예요. 뭐 대단한 걸 하시는 것도 아니고, 몸에 마비가 와서 부인에게 그냥 빨리 와달라고 하는 것뿐인데. 그런 것들을 하고 싶어요. 요즘은 무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렸을 때 “잘하는 선배님들은 아무것도 안 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제는 그게 더 진짜 같다는 생각이 점점 들지만, 여전히 계속 과하다 싶어요. 그런데 힘 빼는 건 힘을 줘봐야 알 수 있잖아요. 내가 힘이 들어갔구나, 왜 이렇게 힘들지? 하면서 조금씩 바뀌는 거니까. 우연히 공을 던졌는데 확 멀리 나갈 때가 있어요. 다시 해보죠? 안 돼요. (웃음) 계속 맞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언젠가 도달하겠죠. 그래서 좋은 연기들을 많이 봐야 되는 것 같아요. 좋은 배우, 좋은 연출과 작업을 해야 깨고 나올 수 있고. 그리고 순간적인 것에 속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게 뭔지를 생각했을 때 이게 필요한가 아닌가를 정확히 봐야 하고, 그게 이야기를 방해한다고 생각되면 버려야 해요. 저는 그냥 우리의 공간을 관객이 몰래 훔쳐보게 했으면 좋겠어요.

[프라이드]가 얘기하는 건 뭘까요?
강필석
: 프라이드죠. 자기 자신, 모두의 이야기. 괜히 ‘프라이드’라는 제목을 지었을까요? 남의 시선을 생각 안 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도 자신을 정말 행복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본인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근데 나 계속 이상한 이야기만 하고 있죠? 너무 할아버지 같은. (웃음) 한 4년 전, 일 때문에 과나화토라는 곳을 간 적이 있어요. 멕시코시티에서 차로 5~6시간 들어가는 곳인데, 우연히 좁은 길을 밴드랑 같이 가게 됐어요. 무슨 국민가요인지 거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진짜 자기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진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느낌에 너무 부러웠어요.

그럼, 강필석이라는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강필석
: 잘은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것과 남이 바라보는 건 또 다르고요.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는 알 것 같아요. 최소한의 어떤 양심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고 멋있게 살고 싶어요. 카톨릭 신자인데 저에게 종교라는 것도 맹목적이라기보다는 최소한의 양심이거든요. 내가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요. 나중에 아이에게도.

글. 장경진
사진. 이진혁(KoiWorks)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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