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돼먹은 영애씨], 살아남은 영애를 위하여!

2015.08.19
 

“염~병은 니가 염~병이다! 이 염~병할 놈아!” 돌아온 영애씨는 꿈을 이뤘다. 모든 직장인의 꿈, 진상 상사를 향해 참아왔던 분노를 속 시원히 토해낸 뒤 직장을 때려치우는 것 말이다. 물론 자고 일어나면 후회할 꿈이다. 어느새 서른여덟, 모았던 돈은 이래저래 다 날렸고 계약직에서 권고사직까지 두루 겪은 끝에 이직조차 쉽지 않은 나이가 된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제 백수와 험난한 자영업자의 길뿐이다. 2007년 방송을 시작해 열네 번째 시즌을 맞이한 tvN [막돼먹은 영애씨]는 다시 한 번 주인공 이영애(김현숙)를 세상의 거센 파도에 내던진다.

이직 네 번, 자진 퇴사 두 번, 해고 두 번, 그리고 파혼 두 번. 드라마가 시작되던 서른 살에 “인생이 뭐 이렇게 개떡 같아요?”라고 불만을 토로하던 영애는 서른여덟이 되는 동안 이 모든 일을 겪었다. 광고 디자이너지만 경리 일도, 차 심부름도, 청소도 자연스레 여직원의 몫이 되어버리는 10인 이하 영세사업장에서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다는 것은 고용의 불안정과 직결되는 문제다. 사장 개인의 변덕이나 무능, 독단을 막을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고 연봉은 제자리걸음에 월급이 연체되기도 일쑤다. 시즌 12에서 경력 12년 차 디자이너인 영애의 월급은 203만 원에 불과했다. 비록 재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어 우는소리를 하면서도 그럭저럭 중산층에 가까운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부모와 함께 살지 않았더라면 영애의 일상은 훨씬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시집가라”는 무한 반복 잔소리를 견뎌야 하는 옵션이 붙긴 했지만.

그래서 일을 하지 않아도 당장 굶지는 않지만, 제 손으로 밥벌이하지 않는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영애는 30대 비혼 여성이자 노동자로 살아가며 일상의 수모에 끝없이 노출된다. 인간은 원래 쉽게 바뀌지 않기에 궁상스런 정지순(정지순)과 얌체 같은 라미란(라미란) 등 [막돼먹은 영애씨]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성장하지 않고 일관되게 ‘진상력’을 유지한다. 숨 쉬듯 성희롱과 외모 비하 발언을 내뱉던 ‘대머리 독수리’ 사장(유형관)을 비롯한 ‘갑’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수많은 변태와 무례한 인간들을 엿 먹이거나 퇴치해왔고, 자신뿐 아니라 다른 여성이나 약자가 곤경에 처했을 때 외면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영애는 먹고살기 위해 때로는 비굴해질지언정 결정적 순간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버리지 않는다. 영애가 또다시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둔 것 역시 경영난을 이유로 희망퇴직을 강요하면서 직원들을 이간질하는 새 사장(조덕제)에게 항의해서였던 것처럼.


9년에 걸쳐 14시즌, [막돼먹은 영애씨]가 성공한 시즌제 드라마인 동시에 한 채널의 대표 브랜드가 되고 동년배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처럼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영애가, 영애의 삶이 언제나 영애다움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애씨’ 김현숙이 결혼해 엄마가 되고, [막돼먹은 영애씨]를 세상에 내놓으며 10년 이상 갈 시리즈라 자신했던 송창의 대표가 tvN을 떠날 만큼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작품 안팎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변하지 않은 것은 결함투성이면서도 드물게 괜찮은 인간이기도 한 영애의 캐릭터였다. 지독한 외모지상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영애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전 남자친구 산호(김산호)를 비롯해 영애를 스쳐 간 여러 미남들과의 로맨스가 단지 개연성 없는 판타지로만 그려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2007년, 서른한 살이 되어 시즌 2를 마치며 영애는 말했다. “여전히 전 애인도 없고 그저 그런 직장에 다닙니다. 내년도 변함없이 이 모습일까 봐 겁이 나네요. 그래도 꿋꿋이 걸어가 보렵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인생이니까요.” 그리고, 서른여덟 살이 된 영애는 어쩌다 보니 애인도 없고 그저 그런 직장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개성과 생명력 넘치는 여성이자 ‘평범한’ 인간, 영애의 이야기는 오늘도 꿋꿋이 계속된다. 드라마여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인생은 있다.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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