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사채꾼 우시지마], 돈이라는 고어물

2015.07.31


누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도그빌]이다. 친구는 보다가 졸았다고 했지만 나에겐 그저 흥미진진했다. 보통 사람에게 숨겨진 악, 인간이라는 동물의 한계, 어리석음, 용서와 구원, 그리고 결코 긍정적이라 할 수 없는 마지막 장면의 카타르시스까지! 어마어마한 선인의, 악인의 이야기도 아닌 보통사람에게 내재된 잔인함이 나에게는 가장 재미있는 주제다. 

편집자에게 이번 만화는 [사채꾼 우시지마]로 하겠습니다, 하고 카톡을 보내니 끄아아!! 라는 답이 왔다. 항상 침착하신 분께서 격한 피드백을. 이유를 여쭈어보니 상냥하게도 나의 ‘멘붕’이 걱정된다 하셨지만, 나는 지금 상당히 평화롭고 침착하다. 마치 [도그빌]을 자근자근 뜯어볼 때처럼.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씨익.

토끼를 키우는 이 시대의 성실남 우시지마는 사채업을 하고 있다. 파칭코에서 잠시 놀 돈이 필요한 소시민부터 길에서 마주치는 것조차 싫은 어둠의 시민들까지, 모두에게 공정하게 돈을 빌려주고 잔인하게 추심한다. 처음에는 비정한 거리 신주쿠를 배경으로 악당들에게 엿을 먹이며 지하세계에서 나름의 정의를 실현하는 블랙히어로 우시지마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을 토끼에게 위로받으며 뒤로는 고아원에 기부를 하는 새드 히어로 우시지마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사람을 망가뜨리는 데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 이야기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돈을 빌려주고 살벌하게 추심할 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채계의 성실남일 뿐이다.

우시지마를 따라가다 보면 꿈에 나올까 무서운 상황을 자주 만난다. 많은 이들의 공통점은 아주 작은 유혹에 빠졌다는 것, 몇만 엔 정도 간단하게 빌려서 지금 상황만 모면하면 되겠지, 일단 사고 싶은 걸 사도 되겠지, 체면을 차리면 되겠지, 투자를 하면 되겠지, 그럼 부자가 되겠지, 날 우러러보겠지. 그러다 콰과광. 우시지마의 회사 카우카우 파이낸스에 전화를 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아마 우시지마는 당신에게 돈을 뽑아낼 수 있는 만큼 뽑아낸 후에 젊은 여자라면 섬에 팔 것이고 젊은 남자라면 장기를 적출할 것이다. 방사능 오염지대에 노동자로 팔아버릴 수도 있다. 그런 쓸모조차 없다면 보험증서에 사인을 받고 타살 같은 자살을 시킬지도 모른다. 우시지마는 자본주의 세계의 신인 돈을 우습게 보거나 돈에 삼켜진 사람들에게 끝까지 돈을 받아낸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이 파멸하든 말든 우시지마는 관심이 없다. 더 끔찍한 사실은 여기 나오는 에피소드의 대부분이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믿는다. 삶은 안전할 것이라고, 성실히 일하면 매 끼니 고기반찬은 아니어도 굶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끔찍한 상황에는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 믿음을 이 만화는 산산이 부순다. 고어물을 보는 것 같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 하는 세계, 그 낭떠러지로 얼마나 간단하게 떨어질 수 있는지, 그 세계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이 만화처럼 생생하게 보여준 작품은 없었다. 

우시지마는 톱니바퀴다. 이 잔인한 세상의 평범해 보이는 윗면과 절망적인 아랫면을 맞물려 돌아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 ‘돈’ 외에는 그 어떤 가치판단도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희귀종은 아닐 것이다. 은행에 다니는 아는 친한 언니는 이 만화를 모든 가정의 필독서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액운이 깃들 것 같아 나도 집에 두긴 꺼렸던 만화지만, 아직 큰 금전 트러블은 없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고 모두 한 질씩 구비해둬도 좋을 것 같다.

오지은
음악 하고 글 쓰는 한국의 30대. 만화를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 처음 산 단행본은 이은혜의 [점프트리 A+].

디자인.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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