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 우주 읽기 좋은 날

2015.07.24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가 지구를 출발한 것은 2006년 1월이었다. 이 7억 달러 프로젝트를 놀리려고 그랬는지 그해 8월 국제천문연맹은 명왕성의 행성 지위를 박탈하고 ‘왜소행성’으로 강등시켰다. 미국 여론의 반응이 재밌는데, 춥고 외롭고 가여운 명왕성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며 무려 항의집회가 일어났다. 몇몇 학자는 ‘명왕성 킬러’라는 살벌한 별명도 얻었다. 태양에서 지구까지보다 30~50배쯤(이 친구의 공전궤도가 좀 기괴하다) 멀리 떨어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이 조그마한 천체가 난데없이 대중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하트라니 너무하잖아. 9년 6개월을 날아간 뉴호라이즌스는 우리가 사는 동안 되풀이해 보게 될 최고의 명왕성 사진을 보냈다. 뉴호라이즌스와 조우한 명왕성은 인류와의 첫인사에서 선명한 하트 무늬를 선보여 모두를 대책 없이 반하게 만들었다. NASA는 과학자의 냉철함 따위 태양계 밖에 던져버리고 ‘명왕성의 사랑고백’이니 ‘I L♡VE PLUTO’니 온갖 하트 드립을 쏟아내며 열광했다. 9년 전에 항의집회까지 일어날 때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이 녀석 인류를 조련할 줄 안다.

나도 어릴 때 “우주의 끝이 어디예요?” 같은 남들 다 하는 질문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단다” 뭐 이런 답을 들으면 눈빛이 반짝거리기는커녕 “아 몰라 그게 뭐야”라며 시큰둥해지는 문과형 꼬마였다. 하트 한 방에 조련당한 김에 잊고 살던 우주에 발가락쯤은 담가보고 싶지만, 플랑크 시간이니 우주상수니 외계어를 이해할 능력은 당연히 없다. 딱 나 같은 독자를 위해, 최전선의 젊은 우주학자인 연세대 이석영 교수가 쓴 책이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살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빅뱅도 황당한데 급팽창 빅뱅은 또 뭘까? 중력 때문에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건 대체 무슨 일베가 [시사IN] 구독하는 소리일까? 저자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한다. 최대한 수식을 배제하고, 이야기와 비유와 그림과 에피소드로 우주 연구의 기원부터 최신판까지 독자를 끌고 간다. 읽다 보면 최면처럼 저자의 권유를 따라 허블 망원경 홈페이지(spacetelescope.org)에 접속하게 된다. 넋 놓고 우주의 풍경에 취했다가 두 시간쯤 날리는 건 각오해야 한다.

과학을 몰라도 과학책에서 얻는 기쁨이 있다. 진화를 다룬 책을 읽다 보면 사소한 일도 그렇게 중요해 보일 수가 없다. 생명의 미묘한 차이조차 진화의 산물이니 무심히 넘기던 장면도 하나하나가 달리 보인다. 우주를 다룬 책을 읽다 보면 중요한 일도 그렇게 사소해 보일 수가 없다. 턱밑까지 차올라 짓누르는 원고 마감도, 우주의 눈으로 렌즈를 바꾸면 찰나의 먼지다. 거대한 해방감과 평화가 찾아온다(물론 편집자의 평화는 별개 문제다). 미묘한 진화의 변이부터 상상을 뛰어넘는 우주의 지평까지, 갈아 끼울 렌즈가 많을수록 우리의 세계는 깊어지고 넓어진다. 명왕성이 러브레터를 보냈다. 우주를 읽기 좋은 날이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썼다. 2014년 11월부터 사회 기사를 쓴다. 농땡이를 보다 못한 조직이 발로 뛰는 부서로 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정확하다.

디자인. 전유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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