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우리 안의 빙봉이 중요한 이유

2015.07.23

* 이 기사에는 [인사이드 아웃]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나랑 같이 놀 친구, 빙봉 빙봉. 로켓을 타고 소리쳐, 빙봉 빙봉. 모든 일이 최고야, 모두 함께 불러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봤다면 이 노래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노래를 부르면 빗자루연통에서 무지개가 뿜어져 나와 달나라로 날아갈 수 있는 수레.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진 빙봉과 기쁨은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며 수레를 하늘로 날린다. 몇 번의 실패에 이은 성공. 하지만 그 성공에는 희생자가 있다. 빙봉. 그러나 빙봉은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쁨의 탈출을 기뻐한다. 그리고 다짐을 받는다. 나대신 기쁨 네가 라일리를 꼭 달나라로 데리고 가 달라고. 빙봉의 몸은 서서히 사라지고 객석은 흐느낀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의 상당 부분은 이처럼 빙봉에 빚지고 있다.

빙봉은 상상 친구다. 상상 친구는 아이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친구다. 유아들의 정신세계에서 현실과 상상은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현실의 공간에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실인 양 경험한다. 아이가 만들어낸 상상 친구들은 다양하다.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친구도 있고, 아이가 부르면 나타나서 잠시 있다가는 친구도 있다. 인형이나 장난감이 잠시 생명을 갖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놀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상상 친구가 완벽한 실제라고 확신하는 반면 어떤 아이는 그저 자기 머릿속 생각일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 어느 것이든 상상 친구는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그 친구는 나만의 친구고 다른 어느 누구의 친구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구라도 언제나 내 편일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니까. 하지만 상상 친구는 언제나 내 편이다. 나를 사랑하고, 자기보다도 나를 위한다. 물론 그렇게 나를 위하는 존재는 현실에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런 삶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지만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상상 친구를 창조해낸다.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는 자신과 엄마가 하나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자기 마음을 다 알아줄 테니 자기는 안전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 기대는 시간이 지나며 깨어진다. 엄마가 아무리 훌륭해도 엄마는 내가 아니다. 엄마는 엄마의 삶을 살아야 하고 내 말을 다 들어줄 수 없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를 대신해 자기 곁에 머물 존재를 찾는다. 곰 인형이나 담요 등이 그 역할을 하는데 엄마의 느낌이 나는 물건을 들고 다니며 아이는 엄마가 곁에 있는 듯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상상이 가능해지는 세 돌 무렵, 아이는 상상 속 친구를 만들어낸다. 상상 친구의 소재는 그 무렵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다. 빙봉은 고양이의 다리와 너구리의 꼬리에 몸통은 솜사탕이고 얼굴은 코끼리다. 울면 사탕과 캐러멜 눈물이 나온다. 좋아하는 것을 합쳐 가장 좋은 것을 만들어낸 라일리는 욕심쟁이다. 모두의 상상 친구가 꼭 그런 식은 아니다. 단순한 외모를 지닌 상상 친구도 있다. 어쨌든 상상 친구는 물건이 아닌 상상이기에 곰 인형이나 담요보다 편리하고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아이는 업그레이드되었다.

이제 아이는 외로운 순간이면 상상 친구를 호출한다. 함께 놀면 즐겁고, 함께 슬퍼하면 위로가 된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이는 상상 친구에게 전한다. 상상 친구는 주로 아이를 격려하지만 때론 따끔한 충고도 한다. 그렇지만 상상 친구의 따끔한 말은 서운하지 않다. 그가 내 편인 것을 알기에. 또 바로 웃기면서 놀아주고 늘 손잡아주니까. 상상 친구는 아이의 일부고 아이의 다른 쪽 얼굴이다. 아직 하나로 통합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자아의 일부가 상상 친구다.

모든 아이가 상상 친구를 갖는 것은 아니다. 대략 절반 정도의 아이가 일시적으로라도 상상 친구를 갖는다. 확실한 캐릭터를 갖는 상상 친구를 경험하는 아이는 10% 남짓이다. 예전에는 여러 의심이 있었다. 상상 친구가 있는 아이들은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 친구에 푹 빠져 현실의 인간관계를 못 맺는 것은 아닐까? 혹시 이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정신적인 어려움을 더 많이 겪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이런 의심들이 모두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오히려 상상 친구를 가진 아이들이 보다 영리하고 창조적이며 사회성 면에서 낫다고 보고하고 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는 어린 시절부터 살던 고향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한다. 라일리에게는 위기고 위기는 슬픔에 힘을 실어준다. 기쁨은 이 상황을 간신히 버텨내려 노력하지만 역부족. 상황을 감당하지 못한 기쁨은 슬픔과 몸싸움을 하다 함께 기억의 저장고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들은 이곳에서 빙봉을 만난다. 삶이 어려울 때 우리는 옛 친구가 그립다. 물론 어떤 사람은 돌아가신 부모가 그리울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선생님이 그리울 것이다. 어린 시절 상상 친구를 경험했던 아이들 중 일부는 그 순간 다시 상상 친구를 호출한다. 상상 친구는 이제 마지막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다. 위로하고 힘을 내게 해 위기에서 탈출하도록 돕는다. 이렇게 마지막 역할을 하고 나면 상상 친구는 자신의 역할을 희망과 의지에게 넘긴다.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약하다. 한 발 내딛기가 매번 어렵다. 순간순간 외로움에 시달린다. 그래서 추억이 호출되면 눈물이 나고 위안을 주는 말엔 매번 귀가 솔깃하다. 때로는 술에도 의존하고,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여러 자극에도 빠진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그 모두를 통해서 나를 일으키려 한다. 그래서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간다. 어떤 때는 성공하지만 또 어느 순간 실패한다. 하지만 앞으로 나간다. 또 나간다. 달나라까지는 갈 수 없겠지만 오늘 하루를 살아낸다. 겨우 그런 어른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그런 어른이면 이미 충분하다. 더 이상의 어른은 없다.

글. 서천석(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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