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만 아니면 김태호 PD의 시대

2015.07.22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음원차트에서 이수만과 양현석보다도 강하다. 2년마다 한 번씩 여는 ‘가요제’의 발표곡들은 차트를 이른바 ‘올킬’하고, 지난해 ‘토토가’ 등 다른 음악 관련 이벤트도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올해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혁오의 ‘위잉위잉’ 등 가요제 참여 뮤지션들의 과거 곡들이 씨스타, 소녀시대, AOA, 에이핑크 등 인기 걸 그룹의 신곡들을 제쳤다. 지금 대중은 인기 걸 그룹의 신곡보다 김태호 PD가 섭외한 뮤지션들의 지난 곡들을 더 많이 듣는다.

혁오는 인디 밴드고, 자이언티는 음원차트에 강한 흑인음악 뮤지션이다. 박진영과 윤상이 1990년대부터 활동하며 일가를 쌓았고, 아이유와 지드래곤-태양은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아이돌이다. 가요제의 라인업은 현재 한국 대중음악 산업에서 일정한 지분을 차지하는 거의 모든 경향들의 컴필레이션이다. 그리고, 멜론 같은 음악사이트는 [무한도전] 방영 직후 가요제 참여 뮤지션들의 곡을 따로 묶어 서비스한다. 시청자가 TV에서 본 음악들을 곧바로 음원사이트에서 찾아 들을 수 있는 시대. [무한도전]은 출퇴근이나 등하교 길 플레이리스트를 가장 쉽게 구성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 Mnet [쇼 미 더 머니]의 힙합, MBC [일밤] ‘복면가왕’의 흘러간 가요, SBS [인기가요]의 아이돌을 취향에 따라 고르면, 그것이 지금 한국의 가장 대중적인 음악들이 될 것이다.

이적은 [무한도전]에서 혁오에 대해 “경리단길이나 한남동”에서 들리는, “리스너”들의 “핫한” 음악이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유튜브로 과거보다 더 많은 음악을 찾을 수 있고, SNS로 더 쉽게 자신의 취향을 퍼뜨릴 수 있다. 그러나 혁오의 [20], [22] 등 앨범이 모든 음반몰에서 품절된 것은 [무한도전] 출연 후다. 올해 [쇼 미 더 머니]의 출연자 수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유희열도 [무한도전]에서 혁오에 대해 “음악적으로 가장 뜨거운” 밴드라고 말했다. 4년 전까지, 그는 이런 멘트를 라디오에서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한도전]이나 SBS [일요일이 좋다] ‘K팝스타’에서 음악 이야기를 한다. 많은 사람이 라디오를 통해 새로운 음악들을 알아가던 시절은 지났다. 홍대나 이태원에서만 들리는 “핫한” 음악이 대중음악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줄어들었다. 대신 산업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더 적은 숫자의 뮤지션들을 골라서, 더 확실하게 띄운다.


초기의 가요제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은 곡을 받기 위해 작곡가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지금 정형돈은 뮤지션들에게 자신과 함께 해야 뜰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박명수가 아이유의 곡을 퇴짜 놓거나 더 잘되는 곡을 원하는 것은 대중이 음악을 [무한도전]으로 알고 멜론으로 듣는 시대이기에 연출 가능한 상황이기도 하다. [무한도전], [쇼 미 더 머니], ‘복면가왕’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려야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고, 음반이 팔리고, 여러 뮤지션이 출연하는 페스티벌이나 기업 행사가 아닌 일정 규모의 단독 공연이 가능하다. 혁오가 최근 YG 엔터테인먼트의 레이블 하이그라운드와 계약한 것은 이런 변화의 의미를 보여주는 듯 하다. 대형 기획사가 인디 음악도 다룰 수 있는 레이블을 다루고, 그 레이블의 감 좋은 제작자는 특정 지역이나 리스너들 사이에 알려진 뮤지션과 계약한다. 이미 스타쉽 엔터테인먼트는 레이블 스타쉽 X를 만들어 정기고, 매드클라운 등을 스타로 만들었다. 시장은 점점 더 기획사와 미디어가 대중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지금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SNS로 좋은 음악을 퍼뜨려 그것을 김태호 PD나 대형 기획사의 제작자들이 듣게 하는 것 정도일지도 모른다. 

나쁠 것은 없다. 대중은 더 쉽게 음악을 듣고, 마니아는 유튜브로 더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한국에서 뮤지션이 마니아들의 지원 속에 스타가 되는 것은 어차피 희귀한 일이었다. 김태호 PD처럼 좋은 음악을 잘 골라낼 수 있는 사람이 산업에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뮤지션에게 현실적으로는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처럼 좋은 뮤지션들을 선택하는 것과 예능의 재미를 동시에 가져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올해의 [무한도전] 가요제는 그들도 모르게 대중음악 산업에 한 가지 선언을 했다. 이제 뮤지션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둘뿐이다. 대형 기획사와 계약하거나, [무한도전]에 출연하거나. 모두가 알고 있던 일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확실하게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됐다. 그 날이 온 것이다.

글. 강명석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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