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서유리, ‘미스 마리테’가 연예계라는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

2015.07.20

“여러분, 본방사수 좀 해주세요. 먹고 살아야 돼.” 지난 4월 9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의 시험 방송이 끝날 무렵, 서유리는 간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굳이 [마리텔]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는 2008년 대원방송 성우 1기로 합격한 이래 정말로 쉴 틈 없이 먹고사는 일에 매달려왔다. [드래곤볼]과 [파워레인저], [도라에몽] 등의 작품 더빙을 비롯해 [리니지 2], [아이온], [던전 앤 파이터], [카오스 온라인]과 같은 게임에서도 목소리 연기를 펼쳤고, 대원과의 계약이 끝나 프리랜서로 풀린 시점에 “싸게” 작업한 것이라고 밝힌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무려 애쉬, 잔나, 시비르 등 세 가지 캐릭터의 더빙을 맡았다. 여기에 XTM [남자들의 동영상 랭크쇼 M16] 진행, tvN [SNL 코리아] 크루 합류, MBC [경찰청 사람들 2015]의 재연 코너 출연까지 이어졌다. 애니메이션, 게임, 케이블, 지상파.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한 것이다.

서브컬처부터 조금 더 범대중적인 자리에 오르기까지, 서유리를 유명하게 만든 건 단연 섹시한 이미지였다. 그가 일을 시작한 분야는 여전히 남성 소비자들의 비율이 높은 시장이고, 게임 및 애니메이션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새침한 고양이 같은 외모, 애교 있는 목소리, 결정적으로 글래머러스한 몸매는 그를 단숨에 ‘여신’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스스로는 “성적인 부분에서 개방적인 스타일이 아니다. 핫팬츠도 스물세 살 때 처음 입어봤다”([뉴스엔])고 털어놓기도 했지만, 일에 있어서만큼은 게임의 홍보 모델이 되든 CF에 섭외되든, 볼륨감 있는 신체를 강조하는 의상이나 콘셉트를 빼놓을 수 없었다. [SNL 코리아]에서도 그는 가슴 부분이 훅 파인 옷을 입고 등장해 신화의 에릭을 흥분시킨 박물관 청소 담당 직원, 인질의 야릇한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악당 등 언제나 섹시함이 동반된 역할을 연기했다. 그때마다 서유리의 노출에 대한 기사는 쏟아져 나왔고, 덕분에 많은 이들은 그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는 몰라도 섹시한 몸매의 소유자라는 사실만큼은 알게 되었다. 게다가 서유리가 회사에 상의도 하지 않고 혼자서 벌였다는 ‘잔나 코스프레’ 이벤트는 인지도와 함께 이러한 이미지를 더욱 굳혔다.


그러나 섹시 콘셉트로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은 엔터테인먼트계라는 직장에서 살아남는 하나의 방식이며, 엄연히 업무의 영역이다. 섹시한 여성 연예인이라고 해서 타인의 무례를 감수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서유리가 라이브 채팅방을 열고 하품을 했을 때 “뭐하느라 못 잤냐”고 의도가 빤히 보이는 질문을 했고, 또 누군가는 “이 라이브 채팅이 별풍선을 노리는 여성 BJ들의 그것과 뭐가 다르냐”고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서유리는 당황하거나 쉽게 웃어넘기는 대신, 냉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한다고 못 잤지. 먹고살아야 될 거 아냐.” “무조건 다 오케이, 오케이 해준다고 해서 인성이 좋은 게 아니에요. 아닌 건 아니라고 끊을 수 있어야 해요. 빈정거려도 ‘아하하 고마워요, 그래요’ 하고 받아주잖아? 그러면 한도 끝도 없어요.” 일할 때의 자신과 실제의 자신을 칼같이 구분하는 태도다. 트위터에서 최근의 여성혐오 경향에 관해 의견을 밝혔다가 한 유저로부터 “듣보 3류 쓰레기 성괴” 등의 공격적인 메시지를 받은 후에도, 그는 다시 차분하게 글을 게재했다. “너는 공인이 아니냐 하셨는데, 저는 공인도 아니고 설사 공인이라 하여도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것을 무조건 용인할 필요는 없다 생각합니다.”

서유리와 트위터 유저의 대립이 화제가 되자, 몇몇 인터넷 매체들은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는 서유리의 과거 노출 사진들을 기사로 옮기며 어뷰징을 노리기도 했다.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인 서유리의 과거는 손쉽게 가십이나 조롱거리가 되고, 여성이, 그것도 섹시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연예인이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가기는 여전히 어렵다. [마리텔]처럼 인터넷 문화가 지상파 방송에도 조금씩 활용될 만큼 세상은 바뀌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서유리는 최소한 나를 너희 마음대로 소비하고 판단하게 내버려두지는 않겠다고, SNS 계정 뒤에, 혹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뒤에 진짜 사람이 있다고 크게 소리친다. 그의 이런 자세가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조금씩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일은 일, 나는 나’라는 서유리의 철저한 가치관 역시 더 많은 직장인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글. 황효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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