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최초의 한입], 과자! 과자! 과자!

2015.07.17

여고생이란 무엇인가.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나 하얀 양말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언젠가 여고생이었던 우리는 안다. 여고생은 한 여자의 일생에서 가장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많이 먹는 시절이다. 난생처음 숯불구이 뷔페라는 곳에 진출한 여고생 5인조의 각오는 시타델로 돌아가는 퓨리오사에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본전을 뽑겠다는 소녀들의 야욕을 허락하지 않는다. 얼굴은 알지만 말은 못 섞어본, 세상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관계의 남고생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리하여 고기가 산처럼 쌓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여자애들은 배가 부르다며 내숭을, 남자애들은 아직 멀었다고 허세를 떨기 시작해 모두가 불행해진 청춘의 기억.

먹을 것은 우리 모두의 현재이고 미래이며 과거이다. 혀에 감긴 기억은 회색의 뇌세포에 쌓인 것보다 끈질긴데, 특히 최초의 한입이 그렇다. 처음 맛본 코카콜라와 밀크셰이크와 파르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지금 먹는 하겐다즈와 카페오레와 참치마요초밥이 아무리 맛있어도 언젠가의 그날만은 못하다. 비린 건 비려서 못 먹고 매운 건 매워서 못 먹는 작가에게 최초의 한입은 주로 과자다. 부모님은 안 사주는 걸 손님이 들고 와서 맛보거나, 아버지가 성인 오락실에서 따오거나, 다른 과자로 착각해 잘못 사오거나, 먼 곳으로 수련회를 갔다 사 왔는데 너무 맛있어서 몇 년간 애태우던 중 동생이 같은 데로 수련회를 가서 또 사오거나, 과자 종류만큼 사연도 각각이다.

피노, 엔젤파이, 돈가리콘, 가라부초, 고에다 초콜릿…. 일본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지만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과자들이다. 자칫 지루할 것 같지만 천만에, 따라 한 한국 과자가 많아서 대충 짐작 가는 가운데 오히려 신난다. 마스다 미리에게는 아무리 그리워도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인 첫 입이, 나에게는 창창한 미래인 것이다. 끝내주게 멋지고 더불어 실현 가능한 신세계, 환상이지만 현실이고 현실이면서 환상인 가장 편리한 단계다. 물론 나는 이미 어른이고 과자 한 봉지에 일일이 경이로워하기에는 세상의 때가 너무 많이 묻었다. 용돈 부족과 부모님의 잔소리에 시달리다 간신히 하나씩 얻어걸리는 소중함은 어린이만의 몫이다. 그렇지만 원하는 걸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해치우는 통쾌함은 누릴 수 있다. 샤넬 가방을 철마다 구입할 수는 없어도 프링글스 정도야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쓸어올 수 있는 것이다.

첫 입의 기억이 늘 달콤하지는 않다. 마스다 미리의 아버지는 낫토를 혐오했다. 그럴수록 더 궁금해 끈질기게 졸랐는데, 간신히 먹게 된 딸 앞에서 아버지는 그딴 걸 어떻게 먹냐고 조롱하며 약을 올렸다. 자식들에게 툭하면 소리 지르고 손찌검까지 하는 아버지는 딸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든 이기고 싶어서 꾸역꾸역 먹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아버지는 거보라며 흡족해했다. 어른이 된 이제 아버지는 그냥 제멋대로인 아저씨이지 딱히 극복할 대상이 아니다. 낫토도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분한 기억이 없었던 일로 되지는 않는다. 달고, 쓰고, 짜고, 맵고, 삶이 그런 것처럼 낫토도, 샤브샤브도, 복어도, 스파게티도 그렇다. 마스다 미리는 얼마 전 한국 여행길에 김치 초콜릿을 먹어봤다고 한다. 그런 첫 입은 없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 [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디자인. 전유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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