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중년의 시

2015.07.10

시즈오라는 남자가 있다. 40세.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늙은 아버지에게 얹혀살고 있고, 하나뿐인 딸은 아빠라고 불러주지 않은 지 오래.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던 중 갑자기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은 만화가임을 깨닫는데!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1. 열심히 노력해서 역경을 헤치고 훌륭한 만화가가 되어 자아를 실현하고 가족애를 되찾고 해피엔딩. 2. 헛된 길임을 깨닫고 다시 평범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찾아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며 가족애를 되찾고 해피엔딩. 정답은? 이미 추측했겠지만 둘 다 아니다.

만화의 주인공들이 흔히 갖고 있는 빛나는 재능, 매력, 의지, 운 등을 시즈오는 갖고 있지 않다. 고로 사표를 내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플레이스테이션을 하고, 만화 아이디어를 짠다고 잡지를 뒤적이다가 괜히 므흣한 기분에 안마방에 가서 누구를 만나는 등 한심의 연속이다. 그리고 어느 날 가장 한심한 그 말을 한다. “나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인데… 휴… 최선을 다해도 괜찮겠습니까…? 온 세상이여 괜찮겠습니까?” 하고.

최선을 다한 시즈오가 초사이어인이 되어서 명작을 그려내고 지구가 폭발하는… 그런 전개는 없다. 초사이이언도 애초부터 사이어인이었던 손오공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손오공도 정신과 시간의 방(손오공이 수련을 위해서 들어가는 방. 바깥에서의 하루가 그곳에서는 일 년처럼 흐른다. 무시무시한 훈련을 받고 돌아오면 어느새 레벨업!)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재능도 재능인데, 노력마저도 재능이다. 시즈오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막내인데도 나이가 많아 점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20대 초반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돈이 없어서 17세 딸에게 돈을 꾸고, 그 와중에 축구 게임은 계속 한다. 회사원 친구를 만나서는 허세를 부리고, 만화를 그리긴 하지만 별 소득은 없다. 시즈오는 현실파악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자기가 최선만 다하면 할 수 있다고 믿고, 자기를 비꼬는 말도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보고 있자니 분통이 터졌다. 창작이 우스워요 시즈오 씨? 하지만 1권 끝 무렵,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느 날 시즈오의 꿈에 나타난 신이 이대로 괜찮겠냐고 압박을 넣자 시즈오는 황당하게도 신과 몸싸움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둘이 껴안고 울면서 말한다. 무승부. 인생과 씨름을 해서 무승부를 얻을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갈 자격을 가진 사람, 기회를 얻은 사람, 거기서 버틸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겠지만 인생과의 씨름은 누구나 한다. 그리고 진다. 인생은 우리의 다리를 천천히, 계속 그리고 강하게 후려쳐서 결국 무릎 꿇게 만들고 정신과 시간의 방도 그 커다란 인생 안에선 그저 거쳐 가는 하나의 방일 뿐이다. 하지만 눈치 없는 시즈오는 계속 만화를 그린다. 여전히 한심하게 말이다. 세상은 그를 풀죽게 할 일 천지지만 좌절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아주 뛰어난 재능이다.

5권을 덮고 나서 큰 심호흡을 여러 번 했었다. 어마어마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배 나온 한심한 40대 아저씨가 만들어가는 아주 찌질한,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다운 시. 아, 시즈오가 결국 어떤 만화를 그리게 되는지는 직접 확인하시길!

오지은
음악 하고 글 쓰는 한국의 30대. 만화를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 처음 산 단행본은 이은혜의 [점프트리 A+].

디자인. 전유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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