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포크를 생각하다], 냄비와 주걱, 삼각김밥틀을 사는 이유

2015.06.26


[포크를 생각하다]는 냄비에 대한 책이다. 주걱에 대한 책이고, 토스터에 대한 책이며, 밥솥에 대한 책이다. 냄비가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부엌 기술은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다. 한때 치아가 다 빠지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1만 년 전 냄비의 등장으로 씹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출현해 치아가 없는 유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방 용품은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조지 왕조 시대에는 구운 골수를 좋아해서 골수 전용 은 숟가락을 만들었다. 만일 후세의 고고학자들이 우리 시대의 백화점을 발굴한다면 21세기인은 커피에 사족을 못 썼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시계가 드문 중세에는 요리 시간을 흔히 기도로 표현했다 “주기도문을 세 번 외울 동안 소스를 졸여라.” 전기 오븐은 초기에는 예열이 한세월이라 35분까지 걸리기도 했다. 거품기 대신 잔가지, 깃털, 포크를 사용하던 시절의 요리책 중에는 케이크용 흰자를 섞는데 3시간을 요구하는 것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냉장고의 특허를 냈지만 시판되지 못했다.

어떤 기술도 중립적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부엌의 역사는 구조와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귀족들이 파스타를 바닥이 비칠 정도로 얇게 밀고, 소스를 비단으로 거르고, 견과를 먼지처럼 곱게 빻으라고 요구한 것은 노동 집약적 요리야말로 부와 지위의 상징이기 때문이었다. 부엌에서 노동력을 절감하려는 노력은 19세기 중반이나 되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그 멋지고 값비싼 물건들의 태반은 고생을 진짜로 덜어주는 대신 망상만 제공했다. 나날의 고된 노동에서 자기편이 간절한 사람들에게 위약을 제공한 것이다.

환상은 현대인이 부엌 도구를 구입하는 가장 큰 이유다. 중동에서 발굴된 여자 유골들에는 심한 관절염 흔적이 있다. 평생 무릎 꿇고 절구질을 하느라 무릎과 엉덩이와 발목 관절이 닳은 것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도구는 어느새 쾌락을 위한 도구로 바뀌었다. 믹서가 멀쩡히 있음에도 우리는 찧는 감각을 만끽한답시고 굳이 절구를 꺼낸다. 그것은 진짜 쾌락일까? 저녁이 없는 삶은 요리하는 삶 또한 없다는 뜻이다. 인류 역사상 요리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뜨거웠던 적이 없지만 실제 요리를 하는 사람은 오히려 줄었는데, 한국은 특히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방용품을 산다. 한 번 쓰고 처박은 요구르트 제조기와 르크루제 냄비에 마음이 무겁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란 희망을 품고 삼각김밥 틀을 주문한다. 그렇지만 헛된 희망이 뭐가 나쁘단 말인가. 진짜와 가짜가 칼같이 나뉘는 시대는 오래 전 끝났다.

부엌은 정말이지 유령들로 가득하다. 최초로 흙을 빚고 강철을 벼린 이름 모를 조상들. 전자레인지와 냉장고에만 의존하는 삶에서도 우리는 그들의 덕을 본다. 옛 기술과 새 기술이 공존하는 부엌에서 좋은 도구와 그저 그런 도구들을 능란하거나 서툴게 사용하다 보면 식사가 차려지고 우리는 먹는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 [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디자인. 전유림




목록

SPECIAL

image '놀면 뭐하니?' 효리X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