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자’와 ‘김치녀’에 ‘좋아요’를 누르면

2015.06.22

여자가 애인에게 묻는다. “오빠, 오늘 점심은 뭐 먹을 거야?” 남자는 여자의 턱을 가격하며 외친다. “아가리 여물어! 썅년아!” 그리고 남자는 여자의 머리채를 붙잡아 모텔로 끌고 들어가며 선언한다. “오늘 점심은 너다!”

MBC [PD수첩] ‘죽음 부르는 데이트 폭력’ 편의 한 장면이 아니다. 한 남성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직접 그려 올린 ‘상남자 만화’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다. 지난 4월 20일 올라온 이 게시물은 수많은 “ㅋㅋㅋ”와 함께 1천 6백 회 넘게 공유됐고, 4만 2천 명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상남자 만화’의 패턴은 단순하다. 여자가 어떤 제안을 하거나 자신의 기분을 말한다. 남자는 여자를 때리거나 걷어차 무력하게 만든 뒤 “거울을 봐, 니가 꽃이잖아”, “니 순결은 내가 지킨다” 등 ‘애정’이 담긴 한마디를 던진다. 대체 어디서 웃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힌트가 있다. ‘상남자 만화’가 여성 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자 한 페이스북 유저는 이 작품이 “아가리 여물어 썅년아! 시전 후에 심쿵! 할 만한 대사를 치는 만화”라고 주장했다.

갑작스런 폭행에 뒤따르는 ‘애정’ 표현을 ‘심쿵(심장이 쿵)’으로 받아들여 즐기는 것은 남성들만이 아니다. ‘상남자 만화’에 달린 수천 개의 댓글 중에는 친구나 애인을 태그하며 재미있어하는 여성의 댓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심각하게 현존하는 데이트 폭력 상황을 희화화해 소비하는 정서의 기저에는 여성 혐오 혹은 ‘여성 멸시’가 짙게 깔려 있지만, ‘병맛’ 코미디와 대중문화 속 로맨스의 폭력적 클리셰로 위장한 ‘상남자 만화’는 창작자와 독자 모두 윤리적인 지점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논란이 거세지자 만화를 그린 김 모 씨는 “전 여혐 만화가가 아닙니다. 전 그저 광대였고, 웃겨드리고 싶었고 웃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렸을 뿐입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어쩌면, 그가 정말로 여성 혐오를 의도하고 ‘상남자 만화’를 그린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용하는 플랫폼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웃음을 유발하는 데 무엇이 효과적인지 알고 있었다. 김 씨는 6월 초, ‘상남자 만화’에 비판적인 댓글을 단 유저에게 “초반 인기를 끌려면 자극적인 요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극적인 만화를 그린 거고요”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가 전에 올렸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남자 만화’는 수십 배 더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는 인기의 척도이자 권력이 된다. ‘좋아요’가 대세인 페이지에서 ‘싫어요’를 의미하는 의견을 표하면 “진지충 극혐”이라 불리며 조롱당한다. 페이스북에서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김치녀’ 커뮤니티 페이지는 12만 명이 좋아하는 곳이다. 이 페이지의 게시물에는 “이래서 김치년은 삼일에 한 번씩 쓰레빠로 죽기 직전까지 패야 돼”나 야구방망이를 든 남성의 사진과 함께 “니년들 뒤졌어 시발년들이”라는 댓글이 달리고 이 모든 것은 즐거운 장난처럼 이루어지지만, 페이스북 코리아 측은 ‘김치녀’ 페이지를 신고한 유저들에게 “커뮤니티 표준을 위반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라고 답한다. 대부분 실명을 사용하고 오프라인에서 마주치는 지인들과 얽혀 있는 페이스북에서 ‘진지충’이나 ‘김치녀’로 비난당하는 게 두려운 누군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어떤 공간에서, 여성 혐오와 멸시는 대중적이면서도 제도의 틀 안에서 보장받는 엔터테인먼트다.

비판이 계속되자 김 씨는 ‘상남자 만화’ 중 일부를 삭제하고, 덥다는 여자에게 남자가 물을 끼얹은 뒤 수건을 던져주며 “닦아. 후러덜년아!”라고 외치는 에피소드를 새로 그려 올렸다. 그는 “수위를 훨씬 낮췄다”고 말했고, 팬들은 ‘상남자 만화’에 문제를 제기한 이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물론 실재하는 폭력을 희화화 혹은 낭만화하고 폭력에 대한 비판 자체를 취급하지 않는 콘텐츠는 ‘상남자 만화’만이 아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남성이 저항하는 여성의 손목을 붙들고 끌고 가거나, 벽에 밀어붙여 강제로 키스하거나, 고백을 빙자해 위협하는 모습들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한 사랑’인 양 그려냈는가를 돌이켜보면 이 왜곡된 판타지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창작물의 탄생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으로부터 살해당한 여성은 언론에 보도된 것만 114명, 10대 피해자는 전년보다 두 배로 늘었고 통계를 발표한 한국 여성의 전화 측은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는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4월, 자신이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애인을 구타한 뒤 집으로 끌고 들어가 목 졸라 살해한 20대 남성은 “겁만 주고 말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5월, 한 20대 남성이 헤어지자는 애인을 목 졸라 살해한 뒤 야산에 묻고 시멘트를 부어 암매장했다. 애인이 잠들어 연락을 받지 못했을 때 집으로 찾아가 잠든 상대를 마구 때리기도 했던 그는 수사 과정에서 “서로 좋아했습니다. 서로 사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진지하게,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애인에 의해 목 졸린 흔적과 멍으로 가득했던 피해 여성들의 사진과 “아가리 여물어! 썅년아!”가 오버랩될 때, 분노와 공포 외에 심장이 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글. 최지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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