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은 지금도 게이 코미디를 하고 있다

2015.06.08

홍석천이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나온다는 소식과 함께 몸 좋은 남자 두 명 사이에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짤방’으로 돌아다녔다. ‘매느님’과 ‘안전한 오빠, 위험한 형’의 뒤를 잇는 새로운 짤방의 역사가 쓰이는가 싶어 방영시각을 확인했다. 커밍아웃 직후 지상파에서 퇴출당한 홍석천이 소위 ‘탑 게이’가 되어 돌아온 이래 그의 방송은 되도록 챙겨본다. 이를테면 나는 전형적으로 ‘팔이 안으로 굽는’ 게이 시청자인 셈이다. 얼굴만 가리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서도 ‘게이 같음’을 전면에 배치한 캐릭터를 초지일관 유지한다는 점에서 홍석천은 상징적인 존재다. 그가 이토록 활발하게 방송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반갑기 그지없다. 

홍석천이 ‘여성스러운 게이’ 이미지를 일반화하여 편견을 조장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의 당부에 관하여 간혹 질문을 받지만, 정작 할 말은 별로 없다. 우선 나는 홍석천이 적극적으로 게이의 이미지를 ‘일반화’한다는 인식에는 공감할 수가 없다. 의도적이진 않아도 그가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이 ‘모든 게이’의 이미지를 획일적으로 규정해버린다는 지적도 있지만, 글쎄다. 모든 게이가 ‘끼’를 떨고 섬세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게이는 분명 존재한다. 전체를 표상하지 못하는 일부가 자신의 정체성을 언급할 수 없다면, 누구도 자신이 귀속한 집단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없을 뿐이다. 

꾸준히 언급되고 등장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게이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홍석천의 활약을 응원하면서도, 요즘 그가 등장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마음이 미묘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점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홍석천은 훈남 배우에게 은근한 사심을 던지거나, 여자를 외면하고 남자와의 에로틱한 상황을 선택한다. 편견을 극복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진한 감동을 선사하거나 여성의 마음을 이해하는 ‘자상한 게이 오빠’로 비춰질 때도 있지만 이조차 곁가지에 그친다. 즉물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홍석천의 역할은 대개 남자들을 당황케 하는 껄떡쇠, 아니면 전 국민이 아는 ‘나 사실 (여자에 관심 없는) 게이거든!’이란 선언과 예정된 반전에 그치고 만다. 


그런 모습이 언제나 ‘노잼’이었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2012년 tvN [SNL 코리아]에서 신동엽의 엉덩이를 탐하던 홍석천이나 비슷한 시기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tvN [코미디 빅리그]에 등장한 ‘퀴어 코미디’라는 명명에 배를 잡고 웃으며 감탄하던 순간이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 때 신선했던 상황과 코드가 이제는 새롭지 않다는 점에 있다. 고정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잘생긴 게스트가 나오면 홍석천은 관심을 표시할 것이고, 공개형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홍석천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가 몇 초 뒤 잘생긴 개그맨을 끌어안고 있으리란 사실은 이제 명백하다. 남자에게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으로 지목당한 남자 연예인이 당황하는 전복적인 상황에 감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흐른 것 아닌지. 나는 이미 이 정도 ‘게이 코드’에는 둔감해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예능에서 ‘게이 코드’의 생명이 다했다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 아닐까 싶다. 가령 홍석천이 완벽한 부외자가 되어버렸던 JTBC [마녀사냥]에서도 ‘동엽신’은 “저 새X 게이 아닐지도 몰라!”라며 그걸 또 살린다. 그렇다고 이 단조로움이 전적으로 홍석천의 능력 부족 탓이라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에게 주어지는 상황과 요구되는 역할에 있다. 오픈리 게이의 캐릭터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웃음이 ‘훈남’들의 당황스러움이나 극적으로 강조된 ‘끼스러움’에 한정될 이유는 없는데 말이다. 지난 주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홍석천은 몸 좋은 트레이너들을 대동한 채 나타나 노골적으로 ‘게이 드립 불판’을 깔았으면서도 “사심방송”이라는 지적이나 “효모” ‘드립’에 짐짓 당황한 척 시청자들을 말린다. 그간 이성애자 남성들의 것이었던 당황스러움이 이번에는 홍석천의 몫이 되었다. 상황적 요소를 다시 배치함으로써 천편일률적으로 박제된 ‘게이 드립’을 피해 성정체성에서 신선한 웃음을 이끌어낼 방법은 아직 고갈되지 않았을 것이다. 홍석천이라는 걸출한 희극인 또한 그 방법을 고민하는 듯하다.

홍석천의 화려한 귀환 이후에야 전면에 부각된 ‘게이 코미디’가 관성적인 답습으로 조금씩 재미를 잃어가는 과정이, 마치 성정체성이 ‘특별할 것 없어’진 나머지 파격성을 상실해가는 구미 게이 문화의 원숙함을 앞질러 닮은 것 같을 때도 있다. 결국 한국에서 ‘게이 코드’는 만개하기도 전에 조로한 나머지 사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그러나 낙관할 수 없는 만큼 미리 비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는 오픈리 게이 연예인이 있고, 그 연예인은 방송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포함한 다양한 면모를 적극 활용해 웃음을 만든다. 성정체성을 어떻게 비틀고 변주하여 코미디에 활용할지에 관한 고민도 간혹 확인하게 된다. 그 고민과 시도의 결과가 항상 ‘예스잼’은 아닐지언정, 아직은 팔을 안으로 굽혀 홍석천이 등장한 예능프로그램을 ‘닥본사’할 이유가 충분하다.

MECO
퀴어니 성소수자니 LGBT니 하는 단어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본업은 섹슈얼리티와 별 상관이 없는 대학원생 겸 등골브레이커. 사람 좀 만나보겠다고 트위터와 블로그를 시작했다. 꿈은 높았지만 현실은 네트워크에서도 건어물 인증.




목록

SPECIAL

image '놀면 뭐하니?' 효리X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