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인터뷰에는 좀 더 특별한 것이 있다

2015.04.15
지난 4월 9일, 방송인 백지연은 자신의 트위터에 “인터뷰 프로그램이 잘 만들면 참 재미있는 프로그램인데 요즘 재미있는 것도 별로 없고, 인터뷰이들이 딱히 나가고 싶은 프로그램도 없는 듯. 누가 참신한 기획 하면 괜찮을 텐데”라는 글을 올렸다. tvN [피플 인사이드]를 비롯해 수많은 인터뷰를 진행했던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요즘 매력적인 인터뷰 프로그램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인터뷰 형식의 토크쇼가 예능의 ‘대세’로 영향력을 발휘했던 시절은 지난 지 오래고, 홍보 시즌마다 비슷한 내용으로 쏟아져 나오는 인터뷰 기사들은 그 어마어마한 양만큼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닌 대신, 요즘 유명인이 출연했을 때 가장 주목받는 인터뷰는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 겸 보도 담당 사장이 진행하는 15분 안팎의 코너다. 서태지, 김혜자, 한석규 등 인터뷰를 자주 하지 않기로 이름난 이들조차 기꺼이 출연하는 이 코너가 방송되고 나면 종종 손석희와 게스트의 이름은 나란히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다. 이것을 단지 그들의 인지도 때문이라 볼 수 있을까. 손석희의 인터뷰에는 좀 더 특별한 것이 있다.


* 손석희는 손석희다.
손석희의 인터뷰가 흥미로울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인터뷰어가 손석희이기 때문이다. 동어반복이 아니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묻는 입장’에 있는 사람 가운데 가장 유명할 뿐 아니라 사랑과 신뢰까지 받는 인물이다. 그래서 평생 셀 수 없이 많은 인터뷰를 해왔을 유명인들조차 자신이 손석희와 인터뷰한다는 사실을 즐거워하고, 스튜디오에 마주앉은 그에게 자신도 팬이라고 고백한다. “처음에 뵀을 때 얼굴이 빨개지고 당황했어요”(윤여정), “이렇게 직접 뵌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떨리더라고요”(염정아), “앵커들 가운데 세상에서 제가 제일 신뢰하고 좋아하는 분”(이문세)처럼 직접적으로 호감을 표현하는 이들은 물론, 들뜬 인터뷰이가 인터뷰어로 돌변하는 경우도 있다. 5년 만에 컴백한 서태지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손석희에게 동안을 유지하는 비법에 대해 물었다. 손석희는 “인터뷰는 오늘 제가 하기로 돼 있습니다”라고 방어했지만 서태지는 다시 “한 번만 제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저희 팬들이 너무 궁금해했었어요. 오늘 만남 중에 제일 궁금했던 부분이었어요”라며 재차 답변을 부탁했다. 진짜 ‘스타들의 스타’란 그런 것이다.

* 너무 많이 알지 않는다.
‘대화의 신’으로 불리는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래리 킹은 말했다. “조금밖에 모르는 것은 어떤 누군가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을 뿐만 아니라 더 재미있기도 하다.” 거의 매일 새로운 인터뷰이를 만나고, 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활동해온 전문가들과 대화하는 입장에서 그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아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선 불필요한 일이다. 뮤지션을 인터뷰하기 전 “새로 내신 음반을 듣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고, 배우들과 관련된 자료를 직접 찾아보며, 은퇴한 차두리에게 수년 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을 언급하면서 그의 축구 인생에 대해 “4:5까지 만드셨습니까, 5:5입니까? 아니면 6:5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손석희 역시 자신이 이미 아는 것을 설명하기보다 미처 모르는 것을 묻는다. 과거 “인터뷰를 하는 데는 간접적 경험을 통한 정보만을 가지고 인터뷰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가 있어요. 알면 안 물어볼 것도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어보게 되고, 거기서 또 새로운 정보가 나올 수 있는 거죠”(지승호, [마주치다 눈뜨다])라고 말하기도 했던 그가 그래서 종종 질문에 사용하는 표현은 “제가 잘 몰라서요”다.

* 피하지 않는다.
공직자나 정치인과의 인터뷰에서의 예리하고 집요한 질문은 MBC FM [시선집중] 시절부터 손석희의 트레이드마크지만, 문화예술계 인사를 포함한 민간인들과 그의 인터뷰는 대체로 화기애애한 편이다. 그러나 손석희의 인터뷰가 유명인에 대한 단순한 찬사에 그치지 않는 것은, 그가 필요하다면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질문을 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미국 퍼거슨 시에서 일어난 인종차별반대 시위를 지지하고 현장에서 트윗을 하며 공개적인 입장을 밝혔던 데 대해 “트위터의 영향력을 최대화하려는 의도 아니었나요?”라고 물었고, 이문세에게는 후진을 양성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해당 사안에 대한 상대의 의견을 정중히 청해 듣고자 하는 태도다. ‘편한 질문과 편한 답변’을 지양하고 “인터뷰를 준비할 때 논쟁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철칙이 있다면 인터뷰이를 평가하지 않는 것”이라는 그의 고민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무례하지 않은 인터뷰를 만드는 것이다.

* 농담하거나 농담거리가 된다.
지난해 11월, 잭 도시와 호레 카레라스, 제이슨 므라즈까지 잇따라 영어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 손석희는 “사실 제가 지난 며칠 동안 영어 때문에 고문을 좀 당했습니다. 차라리 당신들이 한국말을 배우는 게 어떨까요?”라는 농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비록 제이슨 므라즈가 “좋은 질문이다”라고 매우 진지하게 답하면서 분위기는 다소 썰렁해졌지만, 손석희가 웃지도 않고 차분하게 던지는 농담은 그 의외성으로 상대의 긴장을 푸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는 바둑 실력이 아마추어 10급이라는 [미생]의 윤태호 작가가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자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좀 서운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보다 급수가 낮기 때문에”라며 상대를 당황시키기도 하고, 골든 글러브의 주인공 서건창 앞에서 “저도 사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한 야구 한다 그랬습니다”라는 실없는 소리를 던지기도 한다. 물론 어지간한 돌발 상황에도 침착하고 여유로운 그의 평정심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순간은 뜻밖의 선물과도 같다. 생방송 도중 김혜자가 갑자기 “선생님은 되게 깍쟁이인데 나한테는 안 그러시니까”라며 해맑게 웃을 때, 당혹감을 애써 감추고 “제가 왜 깍쟁이입니까?”라고 되묻던 손석희의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 마지막까지 질문한다.
방송, 특히 생방송 인터뷰에서 시간은 늘 가늠하기 어렵고 대개 부족하다. 많은 질문을 준비했어도 다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순간순간 변하는 흐름에 따라 뺄 것과 더할 것을 결정해야 한다. [시선집중] 진행 당시 “만약 30분이 주어진다면 마지막 1초까지 인터뷰에 쓰자는 주의다. 늘 욕심이 앞서다 보니 ‘이제 30초 남았습니다’라며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자주 있다. 너무 궁금하니까”라고 말했던 손석희는 여전히 궁금한 것에 대해 하나라도 더 물으려고 한다. 차두리에게 “아직도 제일 빠릅니까, 대표팀 내에서?”라는, 황당하지만 아마도 진심 어린 궁금증에서 나왔을 질문을 던졌던 그는 지난 3월 출연했던 안성기를 향한 마지막 질문으로 “연기생활 60년 가까운데 이 연기만은 못 하겠다, 너무 어렵다 하는 연기는 어떤 겁니까?”를 선택했다. 그러나 곧이어 예의 “한 가지만 더” 찬스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외압 논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안성기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분명하게 “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건 어떤 제한이나 제약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세계 영화제가 가진 공통적인 것이고 영화 자체도 관객의 선택에 맡겨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리고 손석희는 “알겠습니다. 후배 영화인들이 답변을 어쩌면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인 그로부터, 필요한 시기에 유의미한 답변을 끌어낸 것은 바로 그 마지막 질문이었다.

글. 최지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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