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 사회│① warning.or.kr의 세상

2015.04.07


이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를 헷갈려 하는 사람들은 줄어들 것 같다. 지난 3월 25일, 방통심의위는 웹툰 서비스 사이트인 레진코믹스를 불법 유해 사이트로 규정해 warning.or.kr 블루 스크린으로 뜨게 만든 것과 동시에, 같은 날 진행된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의 동성 키스 장면에 대한 심의에서 “(성소수자는) 다수와 다른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다 생각”(함귀용 위원)이라는 표현을 쓰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방통위도 질세라 음란물 유통 차단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오는 4월 16일에 발표할 계획이다. 이 개정에 따르면, 아동 및 청소년이 등장하거나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변태적인 음란물을 공유하는 이들은 2년 이하의 징역과 1억 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다수의 야한 만화를 일일이 제재할 수 없어 아예 사이트를 차단하는 게 정당한지, 사회에 실재하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드라마에 담아낸 게 무슨 윤리적 문제인지, 성인용 음란물을 보고 공유하는 것을 그 자체로 성범죄로 봐도 될지, 많은 의문이 들지만 그들은 답해주기보다는 실행한다.

레진코믹스에 시정 명령 대신 차단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방통심의위 청소년보호팀장은 “음란물이나 성매매 등에 대해서는 의견 제출이 의무가 아니다. 이용자 보호가 최우선이기 때문”([디지털 데일리])이라고 말했다. 심의의 당위성을 텍스트에 대한 윤리적 판단 대신 이용자 보호에서 찾으며 심의는 차단이 아닌 보호의 이미지를 얻는다. 인용한 기사에서 청소년보호팀장은 그것이 조치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는 걸 전제하면서도 “이런 성인만화를 내 가족이 보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세상의 악한 기운으로부터 선량한 내 가족,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존재로서의 방통심의위. 하지만 이번 레진코믹스 사태처럼 이 프레임은 실제로는 오히려 여론을 수렴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생략하는 알리바이 역할을 한다. 성범죄 피해가 막심하니 잘못된 성 가치관을 불어넣는 음란물을 차단해야 한다는 방통위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따질 시간에 당장 선량한 이용자들이 피해를 당할 수 있으니 우선 막고 보자는 식의 고민 없는 행동주의가 정당화된다.

재밌는 건, 이러한 논리가 최근 정부나 정부 기관이 내놓는 대책들이라는 것과 논리적 쌍생아를 이룬다는 것이다. 기자 출신이자 현재 동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한만수의 2012년 저서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에는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검열을 비판하는 이 책에서 그는 웹툰을 검열하면 청소년 폭력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이들의 논리가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풍자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든다.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건물의 옥상을 폐쇄하자.”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얼마 전 교육부는 청소년 충동 자살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옥상 문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1학기 동안 수학여행을 금지한 경북도 교육청이나, 해경의 구조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일자 해경을 해체하겠다던 대통령 역시 비슷한 논리였다. 사안이 심각하니 해결 방안을 깊게 고민하기보다는, 빠르고 단순하게 처리하자는 논리. 이것은 방법적으로 무능해서 조롱거리가 됐지만, 실천적인 차원에서의 반민주주의기에 위험하다. 흔히 검열을 가위질이라 표현하는데, 공론장 안에서의 합리적 논의와 논쟁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사회적 차원의 가위질로 대체됐다. 문제가 된다 싶으면 잘라내면 그만이다.


이번 방통위와 방통심의위의 조치가 단순히 야한 콘텐츠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 동시대 한국의 후진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건 이 지점이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어떤 논의 과정도 생략한 채 해당 대상에 대한 접근을 원천 차단할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레진코믹스 건과 음란물 공유 금지 개정안에서처럼 나름의 대의는 있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민주적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너무 흔한 독재의 논리인 동시에, 대의라는 것 자체가 다수 시민의 공감과 동의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난센스다. 합리적 논의 과정이 생략된 장에선,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정신 장애로 규정하는 차별적인 언사가 권력 기관의 대의가 될 수 있다. 흔히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하지만, 또한 권력은 틀리며 절대 권력은 항상 틀린다.

그래서 지금 이곳은 차단 사회다. 어떤 대의를 위해 대중의 권리 일부를 차단하는 메커니즘이 사회적 합의 과정을 대체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얼마 전 예산을 이유로 학교 무상급식을 폐지했던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지금 우리나라에 욕먹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모두를 만족시키는 리더십은 없지만 리더가 틀린 판단을 할 수 있기에 민주적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전제는 권력자의 자기만족 앞에 무력하다. 복지의 차원뿐 아니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부터는 야구장 주류 반입이 금지된다. 구장 내 매점의 매출을 위한 조치로서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즐거운 여가 장소라고 생각됐던 야구장이 팬들과의 공감대 형성 없이 쉽게 가방 검사를 말하는 건 당혹스럽다. 이처럼 사회적 합의 없는 차단과 금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사회에선 문화와 정치와 복지와 여가의 영역 모두에서 언제 어떻게 warning의 경고장이 뜰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왜 그랬는지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대체 이게, 뭐하는 세상인가.

글. 위근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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