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버터칩의 후예, 옥석을 가려라

2015.04.03
예부터 밥이 맛있으면 꿀맛이라고 했지만, 그 관용구를 만든 조상님들도 밥에 꿀을 뿌려 먹으면 맛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참사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하나의 신드롬으로까지 발전한 허니버터칩의 성공과 함께, 처음에는 감자칩 시장에서 그 이후에는 음료, 심지어 이제는 라면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먹는 거의 모든 것들에 꿀이 끼얹어져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징그럽기까지 한 이 허니의 물결 속에서 과연 무엇은 맛있고, 무엇은 괴식의 범주에 들어갈까. ‘허니’라는 말이 붙은 시중의 다양한 제품을 직접 먹어보고 옥석을 가려보기로 했다. 다만 치킨은 이 테스트에서 뺐다. 허니든 뭐든 치킨이 맛없을 리 없잖아.


BEST
3위 허니 치즈 볶음면
강인한 의지 덕에 슈퍼 솔져 프로젝트에 발탁된 캡틴 아메리카 스티븐 로저스처럼, 위험 부담이 큰 생체 실험은 강한 의지나 타고난 능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행해졌다. 마찬가지로 온갖 소스를 끼얹는 실험을 해도 웬만하면 견뎌내는 강철 재료들이 있으니 고기가 그렇고 또한 면이 그러하다. 요즘 웬만한 재료들을 압살하는 허니도 끼얹고 치즈도 끼얹은 허니 치즈 볶음면 역시 과연 소스에 면이 죽을 것이냐, 다시 한 번 면이 소스를 이길 것이냐에 대한 실험에 가깝다. 그리고 다행히, 면이 이겼다. 강한 치즈향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적절한 짭짤함이 단맛과 치즈향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면은 간이 맞으면 웬만하면 맛있다. 이 정도 느끼함도 참지 못하겠다면 동봉된 할리피뇨 오일을 부어 매콤하게 먹는 방법이 있지만, 정확히 말해 느끼함을 잡아주기보다는 혀의 통각을 자극해 아예 다른 맛을 못 느끼게 하니 추천하지 않겠다. 어쩌면 만든 사람도 각자 집마다 준비한 김치와 깍두기를 믿고 있는 건 아닐까.

2위 자가비 허니마일드
허니버터칩의 성공과 함께 해태는 허니 트렌드에 있어 항상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밖에 없다. 허니버터칩과 헷갈릴 정도로 봉지 디자인이 비슷한 허니통통처럼 실수로 구매를 유도하는 제품도 있지만, 무엇보다 허니버터칩을 감자칩계의 제왕으로 만들어준 마법의 가루, 허니버터 시즈닝이라는 원천 기술이 그들에게는 있다. 이 마법의 가루를 뿌린 자가비 허니마일드는 그래서 허니버터칩의 진정한 적자라 할 수 있다. 짙은 버터 냄새와 달콤 짭짤한 맛의 조화는 명백한 허니버터칩의 그것이다. 두툼하고도 부드러운 감자스틱이라 얇고 바삭한 허니버터칩과 비교해 감자 특유의 고소함이 더욱 강조됐다. 어떤 면에선 허니버터칩보다 조화로운 맛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허니버터 시즈닝을 뿌리면 전화번호부도 맛있어진다. 하지만 분명 허니버터 전화번호부나 허니버터 신용카드보다 원재료의 맛이 살아 있는 과자가 나왔다.

1위 스윗푸딩 허니 블러썸
벌들은 왜 꽃을 찾아갈까. 화려한 색깔? 향긋한 향기? 아니다. 달콤함. 광고에서의 내레이션 덕에 혀까지 오그라드는 기분이지만, 다행히 오그라든 혀로도 맛보고 삼킬 수 있을 만큼 푸딩은 부드럽다. 더 정확히 말하면 떠먹느냐 마시느냐 사이에서 고민할 정도로 기존 스윗푸딩보다도 부드럽다. 표면의 찰랑이는 크림 블랑쉐와 푸딩을 함께 떠먹고 나면 그 자체로 이미 달콤해서 굳이 꿀 소스를 뿌려야 하나 싶지만, 매끈한 푸딩 표면에 뿌려진 꿀의 비주얼은 팬케이크 위에 뿌려진 메이플 시럽, 기사 식당 돈까스 위에 뿌려진 갈색 소스, 졸업생 머리 위에 뿌려진 밀가루처럼 온전한 조화를 이룬다. 꿀 없이 우유 커스터드의 맛을 즐기다가 꿀을 뿌려 단맛과 향을 더해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으니 프리미엄이라며 가격을 올린 건 이해해주자. 다만 티스푼이 없다고 밥숟가락으로 떠먹는 경우 두 가지 맛이고 뭐고 첫술에 사라질 수 있으니 편의점에서 플라스틱 스푼은 꼭 챙길 것.

WORST
3위 허니 불타는 볶음면
앞서 허니 치즈 볶음면의 경우처럼 이번 역시 소스 대 면의 대결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면이 졌다. 단순히 고추장 소스와 꿀의 조합이 실패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소위 ‘불맛’이라 부르는 훈연의 향까지 담아낸 고추장 소스와 면의 조화를 생각하면 역시 꿀이 문제인가 싶지만, 그것 역시 만만한 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제품은 맛있는 볶음면이 아니다. 따로 동봉된 꿀 포함 액상 스프를 넣지 않고 고추장 소스만 넣고 비벼 먹어도 얼큰하기보다는 그저 아프게 맵고, 심지어 상당히 짜다. 그나마 꿀 스프를 넣어 비벼야 단맛으로 짠맛이 조금 중화되는 수준이다. 다시 말해 맛없는 볶음면 소스를 만든 뒤 이 책임을 허니와의 실험적 조합 탓으로 돌리니, 이쯤 되면 허니는 대세가 아닌 유명해서 덤터기를 쓰는 희생양이 아닌가.

2위 허니 렌틸콩 우유
마시기 전에 흔드세요, 라는 문구는 언제나 불안하다. 균질하지 않게 침전물이 가라앉았다는 것은 팩 안이 질서보다는 카오스에 의해 지배되는 혼탁한 상태라는 뜻이다. 설명대로 팩을 흔든 뒤 따를 때 육안으로도 확인되는 걸쭉함 역시 신선함, 맑음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걸쭉한 액체가 입술과 혀에 닿을 때의 긴장과 달리, 이 맛과 질감은 어딘가 낯익다. 그렇다, 이 달콤함과 고소함과 끈적임은 정확히 집 냉동고가 고장 나 황급히 뚜껑을 따고 후루룩 마시던 녹은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이다. 맛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가 이유 없이 아이스크림을 냉장고 대신 냉동고에 보관하는 건 아니다. 그나마 허니 불타는 볶음면을 먹고 혀가 얼얼할 때 마시면 조금 나으니 이것이 맛의 이이제이라 할 수 있겠지만, 오랑캐들에게 유린된 영토, 아니 혀는 무슨 죄란 말인가. 그래서 그 죄를 다시 묻느니, 허니와 렌틸콩이 만나 만들어낸 이 맛의 카오스는 허니버터칩 탓이냐, 이효리 탓이냐.

1위 허니 바닐라 마끼아또
허니가 정말 대세는 대세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 것은, 요식업계의 트렌드세터라 할 스타벅스가 올봄 신상품으로 허니 바닐라 마끼아또를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소비자의 니즈를 귀신같이 파악해내는 이 마케팅 스페셜리스트들은, 하지만 음료의 맛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나 보다. 입술을 대는 순간 강한 꿀 향기에 비위가 상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입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느끼한 우유 거품의 콤비네이션은 혀뿐 아니라 식도부터 위장에까지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특히 커피의 씁쓸함과는 또 다른 불쾌할 정도로 쓴 뒷맛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데, 느끼해서 한 호흡에 마실 수는 없고 끊어 마실 때마다 뒷맛은 쓰니, 스타벅스에서 쇼트 사이즈 주문이 된다는 걸 까먹은 내가 호구다.

글. 위근우
사진. 이진혁(KoiWorks)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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