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필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다 사람이 만드는 거니까”

2015.04.02
김영필에 대한 기억 하나. 2011년 연극 [연애시대] 초연 당시, 그는 머리에 까치집을 달고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미 자기 말이 되어버린 대사를 한참 들은 후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 보인 것은 배우 김영필이 아닌 이혼하고 혼자 지내는 남자 그 자체였다. 영화 내내 부스스한 머리로 비척비척 걸으며 혼돈의 순간을 담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서는 더 심하다. 김영필에게는 언제나 거창한 것이 없다. 스스로 “게으르다”고 얘기할 만큼 꾸미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거창한 고전 속 인물 대신 가까이에 있는 소소한 삶을 주로 다뤄온 극단 골목길과의 작업을 통해 꾸준히 구축된 것이기도 하다. 지난 3월 6일부터 공연을 시작한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6.25 전쟁 중 아내와 딸을 남겨둔 채 떠나며 “너희는 둘! 내는 쏠로! 진정 외로운 사람은 내다!”라는 허무맹랑한 논리마저도 묘하게 설득시키고야 마는 힘. 거기에는 언제나 무심하지만 그 안은 자연스러운 따뜻함으로 충만한 룸펜 같은 김영필의 삶이 곧 힌트다.

[경숙이, 경숙아버지]가 올해로 네 번째 공연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동안 꼬박꼬박 참여하신 거죠?
김영필
: 제일 많이 한 작품이죠. 지방 공연도 참 많이 다녔어요. 울릉도랑 제주도를 제외하고 도별로 거의 다 다녔을 거예요. 태백에도 갔었고, ‘찾아가는 연극’이라고 해서 교회에서도 성당에서도 폐교에서도 했어요. 6.25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 외지에 가면 오히려 더 공감해주세요. 정서가 좀 더 와 닿으시는지 전달도 잘 되고요. 장기로 한 건 네 번째 정도가 될 테지만 작은 공연까지 다 합치면 서른 번도 넘었을 거예요.

공식적으로 2011년 공연이 마지막이었는데요. 4년 만에 다시 해보니 어떻던가요.
김영필
: 그때는 몰랐던 정서들이 다시 발견되기도 하지만, 4년 전에 비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돼서 그 부분이 가장 좋아요.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많으면 하는 일을 잘하기 어렵잖아요. 예전에는 많이 지쳐 있어서 굉장히 산만했었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죠. 그런데 역할 자체가 아주 편안한 건 아니라서 스트레스가 무대에 비춰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어요.

관객 눈에는 자연스럽게 보이는데, 어떤 면에서 편안하지 않은 건가요?
김영필
: 감정의 굴곡이 너무 커요. (박)근형 선배님([경숙이, 경숙아버지]의 작․연출이자 극단 골목길 예술감독) 작품들이 그런 인간들을 많이 그리고, 선배님은 연극이란 배우가 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시기도 하고요. 무대에서 배우가 가만히 대사만 하는 꼴을 못 봐요. (웃음)

감정의 굴곡이 크게 느껴지는 건, 작품이 아버지를 다루고 있지만 가장이라는 롤로서 그려지는 것이 아닌 한 인간으로 그려지기 때문인가 봐요.
김영필
: 10여 년 전에 이 작품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아버지라는 사람들이 외로운 존재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알기로 근형 선배도 누나들이 있고 본인이 손이에요. 경숙이는 친누나의 이름이기도 하고요. 아버지와의 관계가 깊거나 추억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누나를 통해 아버지 얘기를 많이 들으셨던 것 같아요. 우린 아버지가 강하길 바라지만 그 사람도 한 인간인데 적응을 못 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잖아요. 거기에 대한 연민과 생각이 근형 선배로 하여금 아버지를 계속 그리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다들 빡빡하게 살다 보니 아버지라는 사람이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돼버리는 것 같아요. 지금도 이런데 그때는 더 했겠죠. 다만 배우 입장에서는 그런 걸 표현해야 되니까 하고 나면 마음이 많이 안 좋죠. 배우라는 직업의 어려움이 그런 것 같아요. 이런 감정들을 꾸준히 연습하고 표현해야 된다는 거.

삶과 연극을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일 텐데, 선배들은 무슨 얘기를 해주시던가요.
김영필
: 젖어 있지 말고 빨리 털고 나와서 들어왔다가 다시 작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근데 뭐 그분들도 많이 젖어 있는 분들이라. (웃음) 자기 세대 때는 그렇게 술들을 많이 마셨는데 너희 때는 그냥 와인 한잔 하면서 많은 얘기를 하면 훨씬 좋겠다고 하시죠. 선배들 시대는 너무 많이 힘들었잖아요.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사는 것도 그렇고. 지금은 그때보다는 여유로워지기도 했으니까 그런 문화에서 탈피하라고 하시는 거죠. 그리고 제가 가진 개인적인 부족함, 단점 같은 것들도 정확하게 보시고. 요즘엔 그런 얘기를 잘 안 하잖아요.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런데 다행히도 저는 충고해주는 좋은 선배들을 운 좋게 만난 것 같아요. 혼도 많이 나고 많이 개기기도 했고. (웃음) 내가 일을 하면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되게 의미 있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됐고요. 다행히 이젠 많이 개선이 돼서 일을 재밌게 할 수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2010년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개봉 당시 [스포츠조선] 인터뷰에서 “연극을 그만두고 택시운전 하려고 조합에 문의도 했었다”는 얘기를 했는데요.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까요.
김영필
: 지쳐 있었던 거죠. 한 공간에서 계속 한다는 것도 숨 막히는 일이거든요. 진이 빠진 상태로 일을 계속 하다 보니 심신이 다 힘든 거예요. 이런 정신 상태로는 어떤 좋은 일이 와도 달갑지가 않죠. (웃음) 그건 어디까지나 제 문제예요. 그래서 당시 임순례 감독님에게 저 좀 질질 끌고 가달라고 했어요. 남들은 보통 20대 때 겪는다는데 나는 그걸 30대에 겪었죠. 3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꽤 긴 시간 동안 그랬던 것 같아요. 얼마 전까지도 그랬고요.

무엇이 그렇게 발목을 잡은 것 같아요?
김영필
: 단체생활이라는 게 나랑 안 맞나?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꽤 긴 시간 동안 일하는 순간 말고는 자꾸 벗어나려고 했었거든요. 집이 너무 숨 막혀서 밖으로 많이 나다녔어요. 근형 선배님이 “똑같이 와서 할 거면 뭐하러 하냐, 차라리 여행을 가라”고 하시는데 그 얘기를 나한테 했다가 매일 매 공연마다 여행을 가고. (웃음) 다행히 근형 선배님이 충분히 이해를 해줬기 때문에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안 그랬다면 이것도 벌써 그만뒀겠죠.

방랑벽이라는 측면에서 경숙아베를 많이 닮으셨네요. (웃음)
김영필
: 경숙아베도 어떤 갈망으로 떠나잖아요. 많은 남자들이 꿈을 접고 현실에 맞춰서 살지만 그렇게 쉽게 잊혀지겠어요? 한없이 후회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런 것에 젖어서 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사람이 한 번 사는 건데 그런 걸 포기했을 때는 굉장히 한이 될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저야 원하는 걸 하고 있으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여기서도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거든요. 경제적인 측면도 그렇고, 꾸준하게 닦아와서 다른 장르도 하면 좋지만 쉽지도 않고 그게 계속되리라는 보장도 없고.

마음의 안정은 어떻게 찾게 되셨나요?
김영필
: 작년에 6~7개월 정도를 다 정리하고 대전으로 내려갔었거든요. 여러 가지 생각도 들고 나에 대해서도 좀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혼자 있고 벌이도 없고 하면 그 자체가 힘들어요. (웃음) 나이 먹고 알바라는 걸 해보니 내가 했던 일이 한편으로는 여유롭고 괜찮은 일이었구나 싶기도 하고. 아마 계속 이것만 했다면 그런 생각 못 했을 거예요. 이런 시간이라는 건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극단 골목길 생활은 2003년부터 한 거죠? 어떻게 골목길에 합류하게 되셨나요?
김영필
: [청춘예찬]이라는 작품을 보고 이 사람하고 꼭 한번 공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형 선배님 작품을 보면 조명, 세트 뭐 이런 게 거의 없어요. 빈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있는 배우들의 모습이 너무 사실적이었어요. 그러면서도 아주 드라마틱하고. 전에 봤던 연극과는 전혀 달랐어요.

연극이라고 하면 대부분 과장된 톤을 생각하니까요.
김영필
: 대전에서 연극을 하다가 골목길에 들어간 건데 처음에 만났을 때는 이상하다고 혼도 많이 났어요. 번역극만 했냐? 셰익스피어만 했냐? 이러시고. (웃음) 저한테는 근형 선배 스타일이 훨씬 더 와 닿고 설득력이 있었어요. 인물들도 배우가 아닌 그냥 인간 같았고, 돈 들이지 않고도 이렇게 재밌게 만들 수 있는 게 연극이구나 싶었죠. 당신이 배우들과 항상 함께 있으면서 창작을 하니까 그 인물들이 다 내 옷 같은 게 있어요. 덕분에 여러 생각들이 많이 바뀌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렇게 믿고 해왔더니 여기저기서 불러주더라고요. (웃음) 물론 연기 스타일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은 유효할 것 같아요. 잘 만났죠.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잘 알아주는 이와의 작업이 무한한 것은 아니라는 게 현실이죠.
김영필
: 중간에는 점점 지겨워졌던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소리도 자꾸 들으면 지겹듯이. 그건 본능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한동안은 거절을 하고 제 마음 가는 대로 다른 작품들을 했어요. 드라마나 영화도 처음에는 적응 안 되던 것이 한두 편 하다 보니 시스템도 이해하게 되고 그렇더라고요. 폭이 넓어졌고 저 자체도 조금씩 열리고 있죠. 대신 거기에 구속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하려고요. (웃음)

주체적으로 준비 중인 게 있나요?
김영필
: EBS에서 [다큐프라임] 5부작짜리 제안이 왔어요. 내레이션과 진행을 하는 건데 해외를 간대요. 그리스, 아일랜드, 미국. 해외에서도 찍고 세트 촬영도 하고, 12월에 방송할 예정이라고 해요. 가을에는 [너무 놀라지 마라]를 하게 될 것 같고, 다른 연극도 얘기 중인 게 있어요. 올해는 어떻게 운이 좋아서 지금 마음가짐으로 편하게 하면 될 것 같아요.

전에 남명렬 선생님도 ‘문명과 수학’이라는 주제로 [다큐프라임]을 하신 적이 있어요. 이번에는 주제가 뭔가요?
김영필
: 민주주의. 흐허허허허허. 그분이야 인문적 지식도 있고 공부도 좀 하셨고 가방끈도 있으시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서 왜 그러셨냐고 피디에게 물어봤더니 신뢰감 가는 얼굴이래요. (웃음) 민주주의에 대해 지식이 없는 편인데 사실 관심은 있거든요. 배우의 좋은 점이 그것 같아요. 이런 계기로 그쪽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는 것. 그나저나 10시간 비행기를 타야 된다는데 겁이 많아서 걱정이에요. (웃음)

겉으로 보기엔 그렇지 않은데. (웃음)
김영필
: 다들 외모에 속죠. (웃음) 상반된 부분이 많아요.

많은 연극배우들이 다음 단계로 드라마나 영화를 생각하는 편이잖아요. 물론 그쪽에도 생각이 있겠지만 특별히 내레이션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김영필
: 좀 더 공부하고 집중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비주얼이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의외로 소리가 여러 장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야 어차피 연극을 많이 하니까 계속 작품 분석을 하면서 역할에 맞는 더 좋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요. 다큐도 그런 부분이 많이 있더라고요. 이번 계기로 이쪽 일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웃음) 이게 나에게 다른 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겪어봐야 알겠지만, 내레이션이나 라디오 같은 걸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딱 닥치니까 이거다! 이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재밌을 것 같고, 나도 재밌게 할 수 있겠다 싶고. 물론 좋은 드라마, 영화도 하고 싶고요.

좋은 영화, 좋은 드라마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영필
: 작업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이 세팅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 그 사람을 내가 믿을 수 있다면 다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다 사람이 만드는 거니까.

글. 장경진
사진. 김도훈(KoiWorks)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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