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팬의 설레발은 죄악이라지만…

2015.03.30

청탁을 받고, “몇 개 팀 팬을 섭외하셨어요?”라고 여쭤봤다. “한화 이글스만 따로 합니다”란 답변이 돌아왔다. ‘야신’ 김성근 감독의 복귀 이후 비시즌 기간 내내 언론과 팬덤의 관심의 중심에 있었던 이글스의 현실을 보여주는 문답이다. 그렇지만, 상당히 서글픈 관심이다.

어쩌면 2011년까지만 해도, 한화 이글스가 프로야구 인기의 급상승과 맞물려 한국 야구계의 대표적인 약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불만이 있었다. 불과 3년 전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직전까지만 해도 가을야구를 기대했고(암흑기가 열리기 직전의 3년인 2005년에서 2007년까지 한화는 가을야구를 했다), 통산 승률이 5할을 넘는 팀이었다. 암흑기가 금방 끝나진 않더라도 적어도 만년 꼴찌 팀으로 계속 놀림받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2011년 ‘야왕 신드롬’의 반짝 공동 6위 이후, 한대화와 김응용 두 감독을 거치며 3년 연속 꼴찌로 2008년 이후 ‘588-6899’의 거대한 비밀번호를 찍은 지금은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다. 2011년 이후 한화 구단은 야구만 빼면 뭐든 잘한다는 평을 들었다. 매년 겨울은 뜨거웠지만 성적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사이 한화 구단의 팬서비스는 ‘로봇 응원단’ 등의 시도에 힘입어 BBC 방송에까지 소개되었고 그 ‘명성’은 국제적인 것이 되었다.

이 몇 년 동안 한화 이글스팬으로서 겪은 수모는 형언할 수 없다. 차라리 야구팬들 사이에선 상대적으로 괜찮았다.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이 이 팀의 명성을 귀동냥으로 듣고 “꼴찌 팀을 왜 응원하시냐”라고 물을 때, 한화팬임을 밝혔을 때 사람들이 순간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몇 초씩 침묵할 때, 그리하여 좌중에 앉은 이들로부터 동정의 시선을 받을 때 가장 참기 힘들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야구팬에게 응원팀은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라는 격언(?)처럼 한 번 형성되면 쉽사리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팀 세탁보다는 리그 세탁이 더 쉽다”고 푸념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한화팬 입장으로 치면 한국 야구 안 보고 류현진 나오는 LA 다저스 응원하는 게 삼성 라이온즈 응원하는 것보단 쉽단 얘기다.

“한화팬은 보살”이라는 말도 우리끼리 킥킥댈 때는 몰라도 남들에게 듣기는 싫었다. 야구팀이 약하면 흔히 나오는 농담인 “(참을성이 강한) 한화팬과 연애해야 한다”는 말도 정말로 듣기 싫었다. 일단 이 말은 명백하게 사실이 아니다. 당신이라면 자신의 모든 인내심을 공놀이에 소모하고, 일 년 중 절반가량 시기의 저녁 시간에 60% 이상의 확률로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이와 연애를 하고 싶겠는가.

작년 여름 즈음에 들었던 가장 끔찍한 농담은, “요즘 한화 잘하던데, 김응용 감독님 재계약하는 거 아냐?”란 것이었다. 그 농담을 들을 때를 떠올리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같다. 나는 ‘최악’만 벗어나도 좋겠다는 생각에 ‘한용덕 감독’이라도 지지하려 했지만, 인고의 세월을 견디다 못한 이글스의 팬덤은 ‘야신’을 소환하고야 말았다.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은 대체로 부임 첫해부터 성과를 냈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이 팀의 팬들은 긴 암흑기 동안 이 암흑기가 어째서 왔는지를 성실하게 탐구했다. 비유하자면, 우리 구단은 소를 상당히 많이 잃은 다음에야 외양간을 고쳤다. 한화 이글스란 이름의 외양간에서 소가 북적대려면, 남은 소들이 새끼를 칠 동안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몇 년의 시간 동안 이 팀의 팬들은 팀에 무엇 무엇이 부족한지를 절실하게 체감했다. 심지어는 2015년의 시범경기 결과에서도 그랬다. 한화는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기 전 SK 와이번스보다 상황이 안 좋은 팀이며, 쌍방울의 사례를 떠올리기엔 한국 야구의 수준이 제법 발전했다. 허비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2012년에 한화에 왔어야 했던 건 김응용이라기보단 차라리 조범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성근 감독 선임 후 한화 이글스에 대한 기대는 그가 주어진 자원을 잘 활용할 뿐만 아니라 팀의 미래를 당겨쓰는 일도 하지 않을 거란 전제에서 나온다. 이 전제만 맞춰진다면 남은 것은 ‘기본’이 채워지는 시간의 문제요, 기다림의 문제다. 고통은 그것이 무의미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끝날 거란 것을 알 때에 비로소 참을 만해진다. 한화팬은 올해도 많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무의미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원래는 시즌을 예상하라는 청탁을 받은 건데 이쯤 되니 괴로워서 차마 쓸 수가 없다. ‘가을야구’란 단어를 쓰려니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 오직 한 가닥 있어 /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라는 시 구절이 떠오른다. 현실적인 시즌 목표는 ‘탈꼴찌’ 정도겠으나 ‘7위’나 ‘8위’나 ‘9위’ 같은 걸 적어내자니 팬심으로 마음이 아프다.

그리하여, 시즌 예상은 순위가 아닌 이미지로 하기로 한다. 최훈 작가가 올 시즌엔 독수리를 무서운 동물로 종종 그려줄 거라고 예측한다. 아니, 꼭 보고 싶다.

글. 한윤형(자유기고가)
사진 제공. 한화 이글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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