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에서 가인의 진짜 춤을 보고 싶다

2015.03.16

가인이 최근 발표한 새 앨범의 콘셉트는 인류 최초의 여성, ‘하와’다. 박재범이 피처링한 ‘애플’은 남녀의 욕망을 선악과에 비유해 풀어냈으며, ‘파라다이스 로스트’는 뱀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안무로 하와와 금기라는 소재를 결합시킨다. 두 곡 전부 가인의 그 어떤 솔로곡보다 발칙하고 과감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하지만 지상파 음악프로그램에서는 ‘애플’과 ‘파라다이스 로스트’를 제대로 보고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 전자는 남녀의 정사 장면을 표현한 가사 때문에 KBS와 MBC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후자 역시 뱀처럼 바닥을 기거나 엉덩이를 치켜드는 안무 등은 전부 어정쩡한 다른 동작으로 수정되었다. 때문에 가인이 준비한 오리지널 버전의 안무는 지난 12일 방송된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밖에 볼 수 없었다. “지상파 무대에서 안무를 못하게 되면서 큰 ‘멘붕’이 왔다”던 가인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의가 본래의 콘셉트에 차질을 주는 경우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멤버 하니의 ‘직캠’이 SNS로 퍼지면서 음악프로그램에도 다시 출연하게 된 EXID는 지상파용으로 안무를 약간 수정했다. 골반을 앞뒤로 흔들지 않고 양옆으로 살짝만 흔들거나, 혹은 허리를 돌리는 식이다. 지상파 심의에 걸려서가 아니라 ‘걸릴지도 몰라서’ 기획사 측이 자체적으로 수정 버전을 내놓은 것이다. 원래 버전을 보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행사 무대의 ‘직캠’을 검색하거나, EXID 공식 계정에 올라온 ‘섹시 버전’ 안무 영상을 확인해야 한다. 약간 다른 경우지만, 독특한 콘셉트로 화제가 된 노라조의 ‘니 팔자야’ 뮤직비디오는 오로지 유튜브에서만 시청가능하다. 멜론이나 엠넷 등의 음원사이트에서도 “문신이 나온다”, “최면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노라조가 지상파 심의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치거나, 포기하거나. 가수가 무엇을 선택하든 시청자들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콘텐츠의 온전한 모양새를 지상파에서 볼 수 없다.


이들의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것은 지상파의 한계다. 가사나 안무에 대한 KBS와 SBS, MBC의 심의 기준은 동일하지 않으며, 구체적으로 알릴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SBS 심의실 측은 “부적합 판정 사유를 일일이 공지하고 있지 않다. 우리 방송에 사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인데, 이를 외부에 공개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해당 가수나 제작자 측에는 사유를 통보하고 있다”([일간스포츠] 보도)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3월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상파 심의책임자들에게 가요프로그램에 대한 엄격한 심의 규정을 적용하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분명 최소한의 심의는 일정 부분 필요하다. 그러나 ‘특정 상표 언급’, ‘선정성’ 등처럼 모호하고 부차적인 기준 외에 좀 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명시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혹은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처럼 심야 시간대 방송되는 음악프로그램에 한해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방법도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가수들이 가사와 안무를 수정할 순 있지만, 원래 보여주고자 했던 콘텐츠에서는 점점 멀어진다.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도 무시하기 어렵다. 처음부터 심의에 걸리지 않을 수준으로 조정하는 건?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는 가사를 포함한 노래의 맥락과 분위기를 고려해 만들어지고, 이 모든 요소가 합쳐질 때라야 전체적인 콘셉트는 훨씬 더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질문은 그래서 애초에 무의미하다.

만약 그렇게 해서라도 음악프로그램 무대에 선 다음엔, 뭐가 남을까? MBC [음악중심]과 KBS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 등 지상파 3사 음악프로그램의 시청률은 평균적으로 2~3%대다. 보통 출연 가수의 팬들 정도만 본다는 얘기다. 적어도 대중적으로는, 본방송보다 유튜브나 네이버TV캐스트 등에 게재되는 짧은 영상 클립들의 영향력이 더 커진 지 오래다. 현재 지상파 음악방송들이 그나마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다. 유튜브에 올라간 음악방송의 클립이 해외 팬들에게 퍼지고, 소위 ‘한류’라고 일컬어지는 움직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지상파 방송사들은 자사의 음악프로그램을 한류의 첨병이라고 홍보하거나, 가수들을 동원해 해외에서 특집 방송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그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만든 해외 팬들의 관심과 애정은 가수와 기획사가 만든 콘텐츠,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지상파 음악프로그램의 카메라 앵글이 종종 엉망이라거나 무대가 부실하다는 문제는 차라리 부차적이다. 진짜 문제는, 음악을 둘러싼 콘셉트와 퍼포먼스를 완결성 있는 하나의 콘텐츠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대와 미디어의 제반환경은 계속해서 변하고, 콘텐츠의 수준도 높아져간다. 엔터테인먼트를 이해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수준도 예전보다는 올라갔다. 가인처럼 여성이 여성의 욕망을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 또한 발전적인 일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지상파 방송에서는 그것을 아예 없는 일인 척 숨기거나, 아닌 척 돌려서 보여줘야 한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오디션 혹은 경쟁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음악 산업과 방송의 동거는 과연 앞으로 얼마나 계속 될 수 있을까. 멋진 무대도, 완벽한 카메라 앵글도, 높은 주목도도, 심지어 표현의 자율성마저 보장해주지 못하는데. 인터뷰에서 장수원은 “음악방송을 한다고 해서 음원이 많이 나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노라조는 “방송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가수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인은 “안무 영상을 유튜브에라도 따로 올려야 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가수들은 방송의 한계를 인식하고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방송은?

글. 황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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