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한, 조승우, 홍광호가 부르는 ‘지금 이 순간’

2015.03.12
뮤지컬은 몰라도 ‘지금 이 순간’은 안다. CF, 예능, 드라마, 오디션, 팬미팅, 심지어 결혼식장에서도 ‘지금 이 순간’은 흘러나온다. 가창력을 맘껏 뽐내면서도 다짐을, 순간의 영원함을 노래하는 ‘지금 이 순간’은 언제나 기본 이상의 성공을 보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이중성을 다루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안에서 ‘지금 이 순간’은 노래 자체가 가진 힘 외에도 이야기의 본격적인 스타트를 알리며 중요한 분기점으로 떠오른다. ‘지금 이 순간’은 선언인 셈이다. 그러나 어떤 가사에 집중하고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은 전혀 다른 캐릭터로 태어난다. 2004년 초연부터 지난 10년간 지킬/하이드 역을 거쳐 간 배우는 열한 명. 그중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잘 소화한 사람은 누구일까. ‘지금 이 순간’을 통해 [지킬앤하이드]를 대표하는 류정한, 조승우, 홍광호가 빚어낸 인물을 살펴봤다.


류정한, 절박한 ‘지금 이 순간’
류정한은 가장 신사적인 지킬로 유명하다. 성악과 출신다운 깨끗한 발성과 똑 떨어지는 박자, 꼿꼿한 걸음걸이와 온화한 미소, 우아한 손짓까지. 하지만 류정한 지킬의 완성은 애티튜드에 있다. 스쳐가는 순간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말과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인류애에 가까울 정도로 모두에게 친절을 베풀면서도 상황에 따라서는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아버지의 초상화를 바라보는 쓸쓸한 뒷모습은 또 어떤가. 사랑 많고 책임감 강한 장남 같은 지킬이 “나만의 길”에 집중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오만한 자신감도, 개인적 성취를 이루겠다는 과학자의 야망도 아니다. 류정한의 ‘지금 이 순간’에는 “내 육신마저 내 영혼마저 다 걸고” 오로지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절박함으로 가득하다. “간절한 기도 절실한 기도”에 힘이 실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래서 외로움과 슬픔을 딛고 부르는 류정한의 ‘지금 이 순간’은 러브송처럼도 들린다. 노래만 놓고 봤을 때 류정한이 가장 잘 부르는 곡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지금 이 순간’은 이 노래를 부르기까지 쌓아온 50분간의 연기가 더해져 품격있는 신사의 지킬로 완성시키고, 외모부터 행동까지 정반대인 하이드를 위한 2차 단계로 돌입한다. 대중은 조승우를 기억한다. 하지만 왜 류정한이 [지킬앤하이드] 무대에 가장 오래 선 배우였는지에 대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글. 장경진


조승우, 희망의 ‘지금 이 순간’
지킬은 나쁜 남자다. 약혼녀 엠마보다는 자신의 연구가 우선이고, 결혼을 앞두고도 낯선 여자 루시에게 끌린다. 하지만 그를 비난하기보다 안쓰러움과 안타까운 감정이 먼저 드는 건 조승우가 만들어낸 지킬의 캐릭터 덕분이다. 소년 같은 열의와 과학자로서의 신념 사이를 넘나드는 조승우의 지킬은 때로는 모성본능을 자극하고, 때로는 신사다운 젠틀한 매너로 여심을 흔든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서있지도, 저돌적이지도 못한 그가 쫓는 것은 야망이 아닌 꿈이다. 그래서 그가 부르는 ‘지금 이 순간’은 호기롭기보다는 절실하다. 막다른 길에서 결국 자신이 스스로 실험대상이 되기로 선택한 그에게서는 비로소 소원을 이룰 길을 찾았다는 희망이 벅차게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 던진다”라고 말하는 조승우의 설렘이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 역시 그의 빛나는 눈빛 때문이다. 약혼식을 치르고도 지킬의 선택에 엠마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그의 편이 되는 엠마의 시선으로 지킬을 바라보고, 그의 간절하고 절실한 기도를 신께서 허락해주길 바랄 뿐이다. 조승우의 지킬이 가진 힘은 가공 없는 순수함이다. 지킬을 가슴으로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이 요소를 섬세하게 짚어내는 조승우를 한국형 [지킬앤하이드]의 ‘오리지널 캐스트’로 인정하게 되는 이유다. 
글. 지혜원(공연 칼럼니스트)


홍광호, 확신의 ‘지금 이 순간’
홍광호는 ‘진격의 지킬’이다. 천하의 조승우가 “지구에서 노래를 제일 잘 하는 배우”라고 치켜 올릴 정도로 타고난 가창력도 한 몫 하지만, 홍광호가 지킬을 “열정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인물로 해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지금 이 순간’을 부를 땐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폭발한다.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고자 위험한 실험을 앞둔 지킬은 ‘지금 이 순간’을 부르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나만의 소원”을 향해 나아간다. 대부분의 지킬이 불안한 심리로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하는 반면 홍광호의 지킬은 “지금 이 순간”부터 확신에 차있다. 앞으로 벌어질 미래에 대한 번뇌보단 자신의 신념을 향한 믿음이 앞선다. “간절한 기도 절실한 기도 신이여 허락하소서”라고 노래하지만 그의 지킬은 이미 스스로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꿈”을 허락한 상태다. 이렇듯 그가 이 곡을 대하는 선언적 태도는 섬세하게 쌓아올리는 감정의 결을 우아하게 소화하고 웅장한 절정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는 원동력이다. 홍광호는 역대 열 한 명의 지킬 중 가장 많이 객석을 직시하는 배우일 거다. 그만큼 자신 있게 객석을 도발한다. 당신 안에도 ‘지킬’과 ‘하이드’가 쉼 없이 충돌하고 있지 않느냐고. 그 충돌을 견뎌내기 위해선 자신처럼 견고하고 단단한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고.
글. 이유진(공연 칼럼니스트)

사진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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