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앤하이드], 앞으로의 10년도 보장할 ‘인간의 이중성’ ★★★★

2015.03.12
고백하건대, 2004년에 국내 초연된 [지킬앤하이드]는 당시 지방에 살던 기자가 서울까지 올라와서 본 뮤지컬이었다. 귀에 익은 ‘Once Upon A Dream’이 [지킬앤하이드]의 넘버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당시 극장이라기보다는 컨벤션 홀에 가까웠던 코엑스 오디토리움에는 조승우를 직접 보기 위한 여성 관객들로 가득했다. [지킬앤하이드] 초연 이후 그들 중 일부는 뮤지컬업계 종사자가 되기도 했고, 열혈 관객이 되어 통장을 바치기도 한다. 올해로 10년, [지킬앤하이드]가 여전히 관객몰이에 성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킬앤하이드]
라이선스 재연│2014.11.21.~2015.04.05.│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극본, 작사: 레슬리 브리커스│작곡: 프랭크 와일드혼│연출: 데이비드 스완│주요 배우: 류정한·조승우·박은태·조강현(지킬/하이드), 소냐·리사·린아(루시), 조정은·이지혜(엠마)
줄거리: 1885년 런던, 유능한 의사이자 과학자인 헨리 지킬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인간의 정신을 분리해 치료하는 연구를 시작한다. 임상실험 단계를 앞두고 진행된 이사회에서 이사진의 전원 반대로 임상실험이 무산되자 지킬은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하기에 이른다. 실험이 진행될수록 지킬은 약혼자인 엠마와 점점 멀어지고, 상처 입은 채 실험실을 찾아온 루시로 인해 ‘하이드’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한다. 게다가 하이드는 이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에 반대했던 이사들을 하나씩 살해하기 시작하는데….


[한눈에 본 뮤지컬]
지혜원: 앞으로의 10년도 보장할 ‘인간의 이중성’ ★★★★

[지킬앤하이드]는 ‘지킬을 향한 두 여자의 애절한 사랑’과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주제를 뚜렷하게 구현한다.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개연성 있는 스토리에는 힘이 있고, 프랭크 와일드혼의 곡은 대중적이면서도 아름답게 서사를 이끈다. 선과 악을 오가는 원톱 캐릭터는 남자배우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현실적이지 않은 설정과 무겁고 우중충한 분위기 때문에 브로드웨이에서는 어필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국내 관객은 이 설정을 극적이면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지킬앤하이드]로서는 그야말로 새 인생을 얻은 셈이다. 작품을 관통하는 사랑과 신뢰라는 테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이 국내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한국이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점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이중적 행태를 보이는 이사들을 향한 복수나 약혼녀를 두고도 새로운 여자를 욕망하는 모습은 비도덕적이다. 하지만 그 행동이 관객에게 묘한 공감과 통쾌함을 준다. 관객의 풀이 넓지 않은 시장에서 10년간 공연된 이 작품이 앞으로도 꾸준히 공연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최근 다중인격을 다룬 드라마들이 다수 등장하며 소재가 익숙해졌고, 현실이 점점 더 각박해지면서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주제를 10년 전보다 더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다.

장경진: 10년간 쌓아온 ‘신뢰’라는 브랜드 ★★★☆
최근에 본 공연 중 가장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10년간의 노하우가 응축된 느낌이었는데, 그 바탕에는 그동안 작품에 꾸준히 참여해온 스태프와 배우의 힘이 컸다.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헤드윅]과 [쓰릴 미]가 다양한 연출가의 참여로 작품 고유의 정서가 흐려진 것에 반해, [지킬앤하이드]는 2004년 초연부터 현재까지 데이비드 스완이 연출을 맡아 작품의 기본 정서를 유지한 채 디테일을 잡아간다. 같은 역으로 800회 이상 출연한 김봉환은 물론, 작품 속 갈등을 유발하는 이사들은 평균 두세 차례씩 무대에 섰다. 연출의 뚝심과 배우들의 노하우가 작품을 묵직하게 눌러 어떤 배우가 들어와도 빠르게 극에 안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한 셈이다. 새롭게 지킬/하이드 역을 맡은 배우들이 제 몫의 연기와 노래만큼 노련해진 주변 인물들에게 눌리지 않아야 한다는 또 다른 미션이 주어진다는 게 흠이면 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캐스트로 봐도 평균 이상은 한다는 믿음을 준다. [지킬앤하이드]가 지난 10년간 일궈낸 가장 큰 성과다.


[더 넓은 눈으로 본 뮤지컬]
지혜원: 프랭크 와일드혼의 안전한 착륙

[지킬앤하이드]는 많은 것을 시장에 안착하게 했다. 초연 당시 [후아유], [클래식] 등으로 인기를 모은 조승우에게는 캐릭터와 장르를 뛰어넘어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힐 계기를 마련해줬고, 그로 인해 뮤지컬은 좀 더 대중적인 장르가 될 수 있었다. 브로드웨이 실패작을 성공작으로 만들면서 오디뮤지컬컴퍼니 역시 좀 더 안정적인 운영으로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무엇보다도 [지킬앤하이드]를 시작으로 스타 작곡가로 급부상하며 국내에서 많은 작품을 쏟아낸 프랭크 와일드혼에게는 노후 연금 같은 시장이다. 원톱으로서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남자배우는 물론, 여배우 역시 연인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지킬 곁을 지킨 외유내강형 엠마와 상처 속에서도 희망을 그린 외강내유형 루시를 통해 임팩트 있는 캐릭터를 갖게 되었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분기점이 된 작품이 [오페라의 유령](2002)과 [지킬앤하이드](2004)인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둘을 능가하는 작품이 없다.

장경진: 남자 뮤지컬배우가 할 수 있는 최대치
남자 뮤지컬배우가 주목받는 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쓰릴 미]에 출연하거나 [지킬앤하이드] 무대에 서거나. 작은 무대의 [쓰릴 미]가 섬세한 연기로 배우의 가능성을 이끌어낸다면, [지킬앤하이드]는 보다 넓고 다양하게 배우를 성장시킨다.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 연기에 지킬과 하이드가 동시에 부르는 ‘confrontation’ 같은 곡은 단번에 음역을 바꿔가며 노래해야 한다. 무대 장악력과 남성으로서의 매력 역시 필수다. 지킬/하이드는 기술적 테크닉에 섬세함까지 갖춰야 하는 캐릭터인 셈이다. 미성과 날카로운 고음으로 대변되던 박은태는 열 번째 지킬을 통해 풍성해진 저음부를 갖게 됐다. 긴 배우의 삶을 봤을 때 박은태에게 [지킬앤하이드]는 테크닉적으로 좋은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배우에게 주어진 롤이 많은 만큼, 아직까지는 100%의 무대를 구현했다고 보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글. 장경진, 지혜원(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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