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크러쉬│①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2015.03.10


여성이 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 1950년대 여성국극의 배우들은 수많은 여성 팬들을 거느렸고,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여성들이 걸 그룹 멤버나 특정 여배우의 ‘여덕’을 자처한다. 심지어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스타가 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여성 팬들은 스스로를 ‘크리즈비언(Krisbian. Kristen+Lesbian)’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여성으로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좋아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최근 이런 행동은 모두 단 한 단어로 설명된다. ‘걸 크러쉬(Girl Crush)’. 옥스퍼드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한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느끼는, 일반적으론 섹슈얼한 감정이 동반되지 않은 강렬한 호감 혹은 감탄을 뜻한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포털 사이트에서 당장 ‘걸 크러쉬’로 검색을 해보라. “‘뮤직뱅크’ 포미닛, 걸 크러쉬 이끄는 박력 퍼포먼스 ‘미쳐’”. “나인뮤지스 경리, 걸 크러쉬 부르는 미모… ‘절 만나주시겠어요?’” 등의 뉴스들이 눈에 띄는 한편, 매력적인 여성 연예인들의 사진을 올려두고 ‘걸 크러쉬 당했다’는 식의 블로그 포스팅도 찾아볼 수 있다. 차츰 가시화되곤 있으나 아직까지 아주 널리 쓰이고 있진 않다는 점,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직접적 표현보다 뭔가 세련돼 보인다는 점, 그리고 여성이 여성의 팬이 되는 현상에 대한 새로운 명명이라는 점에서 걸 크러쉬는 ‘힙’해 보이는 표현이다. 그러나 ‘힙하다’라는 말만큼 걸 크러쉬라는 말 또한 모호하다. 예컨대 유튜브 스타 제나 마블스는 애정의 강도에 따라 걸 크러쉬를 1, 2, 3단계로 나누고, 여성에 대한 여성의 호감이 전혀 숨겨야 할 일이 아님을 강조했다. 패션지 [코스모폴리탄] 미국판에서는 상황별로 예를 들어가며 섹슈얼한 감정이 없다면 걸 크러쉬, 있다면 그냥 크러쉬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는 맥락도 마찬가지다. 한 매체는 Mnet [언프리티 랩스타]의 제시와 치타가 “이 멋진 언니들을 열렬하게 응원하게 하는 걸 크러쉬를 저격하고 있다”는 기사를 작성했다. f(x)와 포미닛, 러블리즈 등 걸 그룹의 소위 ‘여덕’이라는 여성들은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혹은 “레즈비언은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꼭 달며 “이건 단순한 걸 크러쉬”라고 고백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지만 딱히 신체적 접촉을 하고 싶거나 로맨틱한 상상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저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내가 갖지 못한 부분을 부러워할 뿐이라고. 보이시한 이미지의 여성에게만 끌리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여성스러운 여성에게도 걸 크러쉬를 느끼는 것이 그 증거라고. 그래서 ‘걸 크러쉬’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호모포비아적이라고 이해되기도 한다. LGBT 이슈를 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인 마리사 히긴스는 온라인 여성 매거진 [xoJane]에서 ‘걸 크러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며 이 같은 사실을 지적했다. 다른 여성에 대한 한 여성의 감정을 동성애라고 말하기 싫거나, 그들 스스로 내면의 동성애적 성향을 인정하지 못해서 ‘걸 크러쉬’라는 표현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단어는 동성애자들을 심리적으로 더욱 고립시킨다는 결론이다.


사실 여성이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건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낯선 감정이 아니다. 어릴 적 유난히 보이시했던 한 학년 위의 선배를 선망해보거나, 친한 친구가 온전히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질투해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걸 크러쉬’는 대부분 일상이 아닌 스타들을 대상으로 사용된다. 그녀들은 어차피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판타지와 같은 존재이며, 섹슈얼한 감정의 유무와 관계없이 그녀에게 ‘걸 크러쉬’를 느낀다고 말해도 성 정체성을 의심하는 눈길로부터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가꾸어진 몸매와 경탄할 만큼 예쁜 얼굴, 확실한 커리어 등 동경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또한 엠버나 ‘미쳐’로 활동하는 포미닛처럼, 남성에게 굳이 매력을 어필하지 않는 아이돌들도 점점 더 많이 나타나는 중이다. 이 지점에서 ‘걸 크러쉬’는 ‘여성으로서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요 구매층인 여성들의 지지를 어떻게 얻어낼 것인가’라는 마케팅적 고민 사이에서 찾아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여성들은 예쁘고 안전하게 포장된 ‘걸 크러쉬’라는 말로 단순한 소비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걸 크러쉬’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소비되는 현상은 현재 이곳의 페미니즘을 보여준다. 김태훈 칼럼니스트가 패션지 [그라치아]에 쓴 여성 혐오 칼럼은 여성들의 실질적인 항의로 이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들이 형편없는 역할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본 후 직접 제작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는 리즈 위더스푼의 인터뷰는 인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남성 앞에서 고분고분하게 굴거나 애교를 부리는 것이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 절대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머리를 기르거나 치마를 입지 않아도 매력적인 여성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게다가 여성이 같은 여성에게 열광한다는 것을 충분히 겉으로 드러낼 수도 있다. 반면 그와 동시에 ‘걸 크러쉬’라고 뭉뚱그려지는 그 감정들의 본질을 더 깊이 고민하려는 움직임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걸 크러쉬’는 한때의 트렌드로 남을까, 더 많은 논의를 끌어낼 수 있는 기폭제가 될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걸 크러쉬’에 섹슈얼한 감정이 동반되느냐, 동반되지 않느냐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겠다.

글. 황효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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