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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이 어른이 되는 법

2015.03.09

“채, 채, 책임지겠습니다.” 더듬거린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때린다. 좀처럼 똑똑해 보이지 않는다. 동갑인 서봄(고아성)이 아이를 가진 사실을 안 고등학교 3학년 한인상(이준)의 모습이다. 서울대는 당연히 수시로 합격했고, 3대째 부와 권력을 누리는 대형 로펌가의 아들이다. 하지만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내가 과외만 받아온 등신인 건 맞지만, 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처음으로 내 스스로 한 것”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필사적으로 전한다. 어리바리해 보이지만, 처음으로 자신이 사랑한 소녀에 대한 열정이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습이었다.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인상은 아이돌 그룹 엠블랙의 멤버인 이준으로나, 연기자 이준으로나 낯선 모습이다. 엠블랙의 프로듀서였던 비는 자신의 본명인 정지훈을 빨리 발음하면 ‘준’이 되는 것에 착안해 그에게 지금의 이름을 지어주었고, 이준은 [닌자 어쌔신]에서 비가 연기한 라이조의 10대 시절을 연기했다. 서울예술고등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무용과를 다닐 만큼 춤에 뛰어난 재능이 비와 닮아서만은 아니다. 이준은 “칫솔에 치약처럼 바퀴벌레가 붙어 있던” 집에 살았고, 돈이 없어서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다. 들어갈 때는 꼴찌였지만 2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예종에 입학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노력 하나로 이겨내고, 가수가 되어 성공하는 스토리는 비와도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연기 활동도 마찬가지였다. 비는 KBS [풀 하우스]와 [이 죽일 놈의 사랑], 최근 SBS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까지 캐릭터 한구석에 늘 어둡거나 절박한 느낌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준 역시 [닌자 어쌔신]에서 닌자로 살아남으려던 10대의 라이조, [배우는 배우다]에서 스타가 되기 위해 무슨 짓이든 감수하는 오영, KBS [정글피쉬 2]의 자퇴를 선택한 고교생, 그리고 즐거움을 위해 살인을 즐기는 [갑동이]의 류태오를 연기했다. 이준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늘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한번 출발하면 뒷걸음질을 몰랐다.


그러나 비는 토크쇼에서도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진지하게 말하는 남자다. 반면 예능에 출연하는 자연인 이창선은 “잘생긴 버전의 김종민”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어리숙했다. 말을 더듬거리고, 조깅의 조가 아침 조자라는 이야기를 믿는다. 심지어 “아이돌계는 동물의 왕국이다”라는 발언도 솔직하게 던진다. 그래서 스스로 “(예능에서) 내가 입을 떼면 팬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래도 나는 할 말은 할 거”라고 말한다.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이준이 흥미로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연예인으로, 또는 연기자로서의 영역에 이창선의 모습을 조금씩 섞어놓는다. 단지 어리숙해 보여서만은 아니다. 한인상은 주눅 든 얼굴로 종종 백치미까지 느껴지지만, 서봄을 지키겠다는 간절함으로 서봄을 자신과 떼어놓으려는 부모에 맞선다. 이것은 한인상처럼 막 스무 살이 됐을 때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용 대신 아이돌의 길을 선택한 그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어수룩하고 빈틈도 많지만,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심지 굳은 선택을 한다. 이준은 비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절실함을, 자신의 평소 모습을 반영하며 연기한다. 절실하지만 공격적이지는 않고, 웃기지만 우스워 보이지만은 않는 연기자의 탄생. 그리고,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한인상이 서봄과 함께 부모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듯, 이준도 [풍문으로 들었소]를 시작으로 독립을 시작할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하든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고, ‘리틀 비’라는 별명의 아이돌이 해왔던 것과는 점점 다른 배역을 연기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그는 자신의, 자신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게 아이돌이 어른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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