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서장훈, 연예인?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2015.03.02

요즘 가장 TV에 자주 나오는 사람, 그러나 방송인은 아니다. 아니, 아니라고 한다. MBC [세 바퀴] MC를 맡았지만 자신은 ‘매주 나가고 있는 게스트’라 생각한다고 말했고, Mnet [야만 TV] MC가 된 뒤에는 ‘방송 참여자’라는 포지션으로 한 발 물러섰으며, MBC [무한도전]에서 새 멤버 영입설이 언급되자 진지하게 “이 자리를 빌려 꼭 얘기하고 싶다”면서 소문을 일축했다. 하지만 “막상 그러면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나오잖아요”라는 놀림에는 더 당황했다. 각종 토크쇼는 물론 설 특집, 파일럿, 신규 프로그램까지 부지런히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한사코 자신은 연예인이 아니라 ‘유명인’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전직 프로농구 선수, KBL 통산 역대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 서장훈이다. 

90년대 농구대잔치의 열기와 함께 아이돌 급 인기를 누렸던 연세대 농구부의 막내이자 최강의 센터로 활약했던 서장훈을 모르는 30대는 없지만, 지난해 MBC [사남일녀]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초딩’들에게 그는 [무한도전]에서 쫄쫄이 입고 줄넘기하다 넘어지던 아저씨일 뿐이었다. 선수 시절의 화려한 기록은 금세 잊힌다. 인지도는 인기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27년 농구 인생의 결과로 무릎 연골을 잃고 자신 소유의 건물을 갖게 된 마흔 살, 207cm의 남자는 ‘의리’로 출연하게 되었다는 예능에서도 촉망받는 신인으로 떠올랐다.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과장이나 허튼소리가 어렵지 않게 용인되는 분야에서 감정도 사연도 엄격한 정확성을 추구하는 서장훈은 분명 독특한 캐릭터다. 특히 그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찬사다.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 윤후를 만나 잔뜩 들떠 있을 때도 “농구 실력이 전국 1등이었냐”는 물음에 서장훈은 “꼭 등수가 있는 건 아니고”라며 조심스러워하는 대신 “삼촌은 우리나라에서 골을 제일 많이 넣은 사람이야”라는 객관적 지표를 말해준다. “연세대 출신”이라며 띄워주는 멘트에도 “시험 봐서 들어간 게 아니라 특기생”이라며 진지하게 정정하는 그는 이혼 후 연애나 이상형에 대해 가볍게 던져지는 질문 역시 적당한 ‘드립’으로 웃어넘기는 대신 또렷한 입장을 밝혀 방어한다. 어릴 때부터 유명해지고 말실수를 많이 하는 바람에 생겨났다는 말버릇 “아니 그게 아니고”는 오히려 그가 만든 유행어가 되었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할 말 다 하는 서장훈에 대해 JTBC [썰전]에서는 ‘김구라를 상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서장훈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정확히 얘기하면’, 그는 강자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대중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다. 지나친 예민함이나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다. 최소 반평생을 ‘유명인’으로 살아왔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사회적으로 노블레스까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 책임의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입장을 진지하게 고수하는 것이다.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과 임대 수익이 방송에서 끊임없이 화젯거리로 오르내리지만 열심히 모은 재산에 대해 굳이 숨기려 하지도, 자랑하지도 않는다. 다만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이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의 기분을 걱정하고 “웬만하면 사회 정의에 맞는 좀 착한 임대업자가 되면 좋겠다”고 말할 뿐이다. 


그래서 ‘능력 있고 의욕 없는’ 캐릭터 이서진에 이어 방송 욕심은 없지만 책임감 강하고 섬세한 서장훈의 캐릭터는 위압적인 외모, 언뜻 부루퉁해 보이는 표정과 어우러져 묘한 즐거움을 준다. 방송에서 만난 초등학생에게 “삼촌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널 기다렸어”라고 투덜거린 뒤 “안 추워?”라면서 몰래 사둔 점퍼를 선물한다거나, 댄스타임에 한없이 뻣뻣한 몸짓으로 ‘위아래’를 추더니 춤을 못 추겠다는 현주엽을 대신해서 한 번 더 추겠다고 나서는 것은 이 까다로운 남자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심판에게 격렬하게 항의하는 모습으로 오해도 많이 받았던 현역 시절과 달리, 자신보다 훨씬 어리고 약한 존재들과 함께하는 MBC [일밤] ‘애니멀즈’에서 그는 개와 아이들에게 누구보다 다정한 놀이 상대이자 보호자다.

인생의 유일한 목표,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던 서장훈의 꿈은 일찍 이루어졌다. 전신에 부상을 달고 살면서도 “첫눈 오는 날, 크리스마스에도 농구를 하고 남들 쉬는 날 쉬는 사람들 보러 오라고 시합을 했던”(SBS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 그는 은퇴 후 “그 꿈이 이루어졌든 아니든 더 노력할 수가 없다. 끝났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역으로서의 꿈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선수 이후의 삶은 덤이라 생각한다는 그가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든, 방송에 참여하는 서장훈은 여전히 뛰어난 플레이어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니 소통이든 휴식이든 이 새로운 코트에서도 그가 즐거운 경기를 펼칠 수 있기를, 다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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