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래퍼는 꼭 ‘언프리티’해야 되나요?

2015.02.27

온라인상에 떠돌고 있는 한국 여성 래퍼 순위는 다음과 같다. 1. 윤미래 2. 타샤 3. T 4. 조단맘 5. 타이거 JK의 부인. 모두 한사람을 칭하는 말들로 만들어진 이 리스트는, 물론 윤미래의 월등한 실력을 칭찬하는 애정 어린 농담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현재 한국 힙합신에서 여성 래퍼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윤미래의 등장 이후 2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를 능가하거나, 하다못해 그녀와 비슷한 정도의 명성을 거둔 여성 래퍼를 떠올리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Mnet이 기획한 [언프리티 랩스타]는 ‘윤미래 이후’를 조명한다. 여성 래퍼들만으로 구성된 출연자들이 컴필레이션 앨범의 트랙을 놓고 경쟁하는 이 방송은 섹시한 안무나 구구절절한 사연을 강요하지 않는다. 같은 비트를 놓고 랩 실력을 겨루는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부가 미션은 영상 촬영, 무대 매너 등 아티스트에게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자질에 관련한 것들이다. 대신 프로그램은 같은 채널에서 먼저 방송된 [쇼 미 더 머니]의 출연자들을 대거 기용해 참가자들의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설정한다. 타이미와 졸리브이의 불편한 관계는 경쟁이 구체화되기도 전부터 프로그램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요소로 활용되었고, 키썸과 육지담은 경쟁 안에서도 각자의 성장 서사를 만들어낸다. [쇼 미 더 머니]에 출연하지 않았던 AOA 지민은 ‘아이돌 래퍼’라는 역할을 계승해 익숙한 갈등 구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덕분에 방송은 일종의 애프터서비스이자 스핀오프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제시의 등장은 [언프리티 랩스타]가 고유함을 담보할 수 있는 큰 부분이다. 첫 미션에서 탈락한 뒤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랩으로 거침없이 표현한 그녀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태도와 사고방식, 스타일까지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은 윤미래가 성공한 이유이자 윤미래 외의 여성 래퍼들이 좀처럼 성공하기 어려웠던 이유에 대한 힌트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한국말에 서툰 이방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실력을 꽃피운 윤미래의 무기는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칠전팔기 내 인생”이라는 가사가 상징하는 확고한 캐릭터였다. 비트는 트렌드에 따라 바뀌고 라임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분분하지만, 래퍼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만큼은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이며 이야기를 쌓은 래퍼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확보할 수 있는 법이다. 제시의 랩에는 일관된 태도가 있다. 그리고 십 대 시절부터 연예계의 흥망성쇠를 겪어온 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을 때, 태도는 곧 캐릭터가 된다. 릴샴의 가사에 대해 “뭐가 baddest냐”고 반박한 그녀의 태도가 드러내는 것은 ‘직접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살아내는 것’에 이르는 래퍼의 자격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 래퍼의 입지가 여전히 좁은 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쇼 미 더 머니 3]에 출연했던 키썸은 스윙스로부터 “외모에 신경 쓸 시간에 랩 연습이나 하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당시 그의 외모를 강조한 것은 키썸 본인이 아닌 남성 심사위원들이었다.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힙합 문화에서 여성 래퍼들은 정체성만으로도 다른 존재, 불리한 입장이 된다. 이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획득하고 고유한 캐릭터를 확보할 시간을 충분히 얻지 못하며, 공정한 평가에서도 제외되기 일쑤다. 두각을 나타낸 여성 래퍼들은 성적인 문제로 공격을 받기도 하며 이를 도화선 삼아 루머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대등한 입장에서 주고받아야 할 디스곡에서 “생리 중이냐”는 조롱으로 여성의 이성을 부정하는 가사가 등장해도, 여성을 향한 선명한 혐오는 힙합의 자유로움 앞에 쉽게 묻혀버린다. 뛰어난 여성 래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려 한 여성 래퍼들은 번번이 래퍼가 아닌 여성으로 평가당하고 간섭받으며 제 싹을 미처 틔워내지 못한 것이다.

여성 래퍼들에게 따로 시간을 내어준 [언프리티 랩스타]의 배려가 참신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자아내는 것은 그래서다. 그저 ‘디스전’으로만 요약된 타이미와 졸리브이의 다툼은 사실 ‘여성 래퍼’라는 라벨링에 대한 의견 차이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마치 여성들의 핸디캡을 인정하듯 그들을 따로 모아 진행하는 경쟁에 함께 참가했다. “우먼파워를 보여주게 돕고 싶었다”는 제시의 의도는 여성끼리의 경쟁을 통해서는 아무래도 달성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들의 꼴이 우스워지지 않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이 결국 여성 래퍼들을 격리해낸 합당한 이유를 설명해내는 수밖에 없지만, 이미 방송은 편집 기술을 동원해 출연자들의 신경전을 연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존재하지 않은 체으로 분류된 이들은 덕분에 ‘제2의 윤미래’를 배출하게 될까. 굳이 ‘언프리티’라는 수식어로 여성 래퍼들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프로그램의 저의가 그저 기우로 끝날 수만 있다면, 여성 래퍼들의 영역이 한 뼘 더 넓어지는 날을 기대해도 좋겠다.

글. 윤희성(객원기자)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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