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티와 크러쉬, 한국 힙합의 새로운 ‘YOUNG’

2015.02.11

자이언티와 크러쉬가 함께 만들고 부른 노래 ‘그냥’은 발표와 동시에 음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정기고와 범키 등 이른바 ‘피처링 싱어’로 분류되던 힙합/R&B 뮤지션들이 전면에 부각되고 이들의 노래가 차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일이 더 이상 새롭지 않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미리부터 이들의 성공을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의 뮤지션들이 보컬의 지분을 확장시키는 정도에 그쳤다면, 자이언티와 크러쉬의 결과물은 좀 다른 모양새다. 애써 응용한 가요의 공식은커녕 장르를 규정지으려는 제스처조차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이들의 음악은 예상과 달랐고,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기대에 부응하는 식이다. 그리고 그 기묘한 호응에 대해 대중은 ‘취향저격’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설명한다.

‘그냥’은 제목만큼이나 무방비한 노래다. 달리 클라이맥스를 구분하기 어려운 노래 안에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두 사람의 음색이다. 그마저도 자이언티는 기존의 느낌을 탈색해버린 듯 한층 담백하게 노래하고, 크러쉬는 랩을 하면서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부르는 인상을 준다. 세련된 비트에 섬세한 건반이 더해지면서 노래는 정교하게 조율되었지만 “그냥 지나가면 돼요”라는 가사처럼 둘은 무심하게 ‘그냥 들으면 돼요’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래의 느슨한 무드는 아이돌 팬덤과 더불어 음원 차트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젊은 리스너들의 감성에 정확하게 소구한다. 감동, 호기심, 공감 등 듣는 이를 자극하는 것에만 온통 초점을 맞춘 무수한 노래들 사이에서 ‘그냥’은 편하게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미덕을 갖췄다. 래퍼들처럼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지도 않고, YG 엔터테인먼트가 그러하듯 가장 최신의 트렌드를 선택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다. 목소리라는 큰 재능은 영리한 계절 감수성 위에서 자연스럽게 만개한다. 말하자면 자이언티와 크러쉬의 비결은 취향뿐 아니라, 간과되어 왔던 리스너들의 필요를 저격한 배짱에 있었던 셈이다.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자이언티의 앨범에 수록된 ‘뻔한 멜로디’는 의도적으로 대중가요의 분위기와 작법을 차용한 곡이었고, 두 사람은 노래의 허리를 나눠 같은 멜로디를 각자 번갈아 부르는 방식으로 노래를 완성했다. 덕분에 노래는 개성이 두드러지지만 서로 다른 결을 가진 두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하고 평범한 구성 안에서도 충분히 매력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실험처럼 보였다. 사실 자이언티의 앨범은 그 전체가 하나의 흥미로운 시도였다. 소울부터 레게까지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며 그가 추구한 것은 장르적 성취보다는 카메라 플래쉬, 끈적이는 여름 날씨 등 공감각적인 표현력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이후 발표한 ‘미스 김’‘양화대교’에서 그는 훨씬 탈장르적인 면모를 노출했고, 단순한 가사 안에서 풍성한 서사와 풍경을 확보하는 프로듀서로서 그의 능력은 독특한 음색만큼이나 주목받기 시작했다.

첫 앨범으로 블랙뮤직에 대한 모범적인 답안지를 제출한 크러쉬는 자이언티에 비해서는 정체성이 선명한 편이다. 그의 앨범에서 자이언티와 함께 부른 ‘Hey Baby’는 랩 한 소절 없이도 비트의 박력에 밀리지 않으면서 빈틈없이 노래를 채우는 둘의 목소리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곡이었다. 세련되고 정돈된 크러쉬의 방식은 사뭇 원초적인 아이디어들로 구성된 자이언티와 다른 스타일로 보인다. 그러나 싱어로서 ‘감미로움’ 너머에 비전을 두고, 프로듀서로서 관습과 장르를 성실하게 이해해 뛰어넘고자 하는 이들의 지향은 궁극적으로 닮아 있다.

그들의 프로젝트 이름이 ‘YOUNG’이라는 점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최근까지도 힙합/R&B 뮤지션들은 장르를 규정지어야 한다는 고민을 토로해왔다. 그러나 티페인을, 다이나믹 듀오를 선망하며 자란 세대인 자이언티와 크러쉬에게는 장르의 정통성을 계승해야 한다는 강박이 희미하다. 이들이 자라며 접한 블랙뮤직은 이미 이종교배를 활성화한 뒤였고, 장르는 완수해야 하는 목표가 아닌 활용할 수 있는 재료에 불과하다. 이미 본토인 미국에서조차 힙합과 EDM이 서로를 넘나들고 새로운 소울과 더 새로운 R&B가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핵심적인 감각만을 남겨둔 채 스펙트럼을 넓혀버리는 두 사람의 태도는 충분히 현대적으로 온당하다. 그리고 장르에 대한 부채감 없이 비트와 창법과 그루브를 자유자재로 시도하는 ‘완전히 새로운 세대’인 둘이 새로운 리스너들을 겨냥해 높은 명중률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무엇으로 불려도 상관없는 두 사람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힙합에 바탕을 둔 덕분이었다. [힙합플레이야]와의 인터뷰에서 자이언티는 “음악을 만드는 데 돈이 한 푼도 안 들잖아요”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밴드를 결성하고자 했다면 악기를 살 돈과 멤버가 되어줄 친구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래퍼를 꿈꿨다는 크러쉬 역시 자신의 컴퓨터 앞에서 습작 시절을 거쳤다. 게다가 새로운 인물을 쉽게 작업에 동참시킬 수 있는 힙합의 피처링 문화는 이들의 원석이 필요 이상으로 세공되기 전에 빨리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주었다. 결국 자이언티와 크러쉬의 성공은 그동안 내부적인 논쟁에 갇혀 오랫동안 애호가들이 동의하는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데 실패해온 한국 힙합 신의 한 시절이 완전히 지나버렸음에 대한 증거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의 등장으로 한국 힙합은 바야흐로 전성기를 예고한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세련되고 동시대적이며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둘을 잉태한 장르이니까 말이다.

글. 윤희성(객원기자)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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