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극을 보는 법

2015.02.10

오래 기다렸다. ‘그분’을 영접하기 위해 티켓 전쟁에 뛰어든 게 무려 넉 달 전, 2월 25일 공연을 목전에 둔 현재 준비된 티켓은 매진 상태다. 치열한 매진 행렬의 주인공은 마성의 영국 남자 베네딕트 컴버배치, 게다가 영화도 아닌 연극이다. 정확히 말하면가 출연한 연극 [프랑켄슈타인]을 카메라에 담은 연극 실황 버전. 그가 직접 오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의 대표 연극을 전 세계에 중계하고 상영하는 프로그램인 NT Live의 퀄리티는 이미 지난해 상영한 [워 호스], [코리올라누스], [리어왕]으로 증명된 바 있기 때문이다. 시공간의 제약이 있는 공연 예술은 라이브의 장점이 한계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공연 실황 영상 작업은 연극도 영화도 아닌 제3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영국 국립극장의 NT Live는 2009년을 시작으로 전 세계 1,100여 개 극장에서 350만 명의 관객들을 만나며 연일 자체 기록 갱신 중. 영화적 재해석을 배제하고 오로지 무대 그 자체를 담아내는 촬영 방식은 런던의 극장 안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NT Live의 폭발적 인기 비결은 영국 국립극장의 탄탄한 라인업에서 비롯된다. 런던의 템즈강변에 위치한 영국 국립극장은 해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안톤 체홉, 헨리크 입센과 같은 고전과 다양한 스타일의 신작을 골고루 선보이며 세계 공연예술계를 이끌고 있다. 시즌제로 운영 중인 영국 국립극장의 연평균 제작 작품 수는 스무 편이 넘는다. 덕분에 영국 국립극장은 매일 아침 일찍부터 티켓을 구하기 위한 행렬로 북적이는데, 이처럼 놀라운 인기의 중심엔 ‘스타’가 함께한다.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영국 국립극장의 위엄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톰 히들스턴, 제임스 프랭코 등 세계적인 배우들을 무대 위로 이끌고 샘 멘데스, 대니 보일과 같은 명장으로 하여금 무대를 지휘하게 한다. 이렇게 귀한 스타를 모셔 와 완성한 무대를 전 세계와 공유하니 NT Live의 흥행은 당연지사.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 전역에는 NT Live만 따로 상영하는 극장이 있을 정도다.


현재 전 세계에서 상영 중인 NT Live의 라인업은 열네 편에 달한다. 헬렌 미렌이 영화 [더 퀸]에 이어 다시 한 번 엘리자베스 2세로 나선 연극 [디 오디언스]를 비롯하여 영국의 대표 배우 빌 나이와 캐리 멀리건이 호흡을 맞추고 영화 [빌리 엘리어트], [디 아워스]의 감독 스티븐 달드리가 연출을 맡은 연극 [스카이라잇] 등 배우와 연출의 이름만으로 눈이 휘둥그레지는 작품이 줄을 잇는다. 여기에 영국 국립극장의 간판이자 NT Live의 인기 견인차 [워 호스]와 혁신과 환호를 동시에 일궈낸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은 당장 런던으로 날아가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런던행 비행기 표를 손에 쥐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 곧 서울에서도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프랑켄슈타인]을 볼 수 있으니까. 게다가 대니 보일의 고마운 연출에 힘입어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가 ‘닥터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을 번갈아 연기하므로 각기 다른 두 편의 연극을 보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은 자꾸 NT Live 홈페이지를 떠나질 않는다. 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이건 뭐 완패 수준이다. 그나마 2012년부터 레퍼토리 시즌제를 도입해 공연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국립극장의 행보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덕분에 영국의 NT Live가 한국까지 상륙했으니 다음엔 한국판 NT Live를 만날 기회도 있지 않을까.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에선 강신일이 지난 세월 연극에 쏟아부은 흔적을 곱씹는 장면이 나온다. 먼지 쌓인 상자에 대본과 팜플렛만으로 남은 그 연극은 소수 관객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존재한다. 그 무대의 감격을 영상으로나마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삶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박정자의 [해롤드&모드]꺼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위로가 될까. 송강호, 김윤석, 최민식의 연극은 도대체 어떤 느낌이었을까. 좋은 연극을 향한 타는 목마름은 해소될 수 있는 걸까. 오늘도 물음표만 가득 안고 극장에 간다. 우선 부지런히 보고 느끼고 기억해야 할 테니.

이유진(공연 칼럼니스트)
영화부터 공연까지 십 년 넘게 명함을 스무 개 정도 만들며 직업과 나이가 불명확한 삶을 버티는 중. 뭘 하든 간에 매일이 마감인 건 함정. ‘이번 생엔 망했어’와 ‘삐뚤어질테다’를 입에 달고 산다.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NCT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