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승 36패, 이상민 감독에게 없는 것들

2015.02.09

2월 8일 현재 9승 36패로 프로농구 10개 팀 가운데 꼴찌. 승률은 정확히 2할.  올 시즌 서울 삼성 썬더스(이하 삼성)의 성적이다. 삼성은 시즌 전부터 약체로 분류됐다. 지난해엔 8위였다. 김동광 감독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뒤, 삼성은 이상민 감독을 선임하며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했다. 이상민은 선수생활 대부분을 승리하는 팀의 리더로 보냈다. 대학 시절엔 대학 팀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달성했고, 프로에서 몸담은 대전 현대 걸리버스(이하 현대)와 전주 KCC 이지스(이하 KCC)는 90년대~2000년대 초반 KBL에서 가장 꾸준한 성적을 내는 팀이었다. 이상민을 주축으로 우승도 세 번이나 했다. 그렇지만 올해 이상민은 승리의 소감보다 패배의 원인을 설명해야 할 일이 훨씬 많다.

이상민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자신이 선수 시절에 펼치던) 빠른 농구”를 주창했다. 그가 경력의 대부분을 보낸 현대와 KCC는 신선우 감독의 ‘토털 농구’가 팀 전술의 중심이었다. 전 선수의 속공 가담을 중시하며, 선수들의 멀티 포지션 소화를 강조하던 그런 농구. 신선우 감독은 외국인 선수도 조니 맥도웰처럼 패스 능력이 뛰어나거나, 찰스 민렌드처럼 올라운드 플레이어 성향의 선수들을 선호했다. 센터 재키 존스조차도 3점 슛을 곧잘 쏘곤 했다. 즉, 이상민이 말하는 ‘빠른 농구’란 곧 ‘토털 농구’의 성격을 토대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대와 KCC엔 무엇보다 전천후 스몰 포워드 추승균이 있었다. KBL 역사를 통틀어 ‘토털’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 그러니까, 이상민은 선수 생활 내내 스몰 포워드 포지션에 대해 단 한 번도 걱정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연세대 시절에도 문경은이 있었다. 이상민은 어쩌면 자신이 말하는 빠른 농구가 삼성의 풍부한 포인트가드들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공을 마무리하든, 빠른 공격 전개로 오픈 찬스를 만들든 뛰어난 포워드(또는 슈팅 가드) 없이 빠른 농구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지금 스몰 포워드는 삼성의 가장 큰 약점이다. 임동섭과 김동우의 부상으로 스몰 포워드를 맡을 수 있는 선수는 차재영이 유일하다. 슈팅 가드 포지션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이관희의 입대 후 확실한 슈팅가드도 없다. 이정석과 이시준 모두 포인트가드와 슈팅 가드의 중간쯤이라 할 수 있는 듀얼 가드 성향이 강하다. 축구로 치면 공을 쫙쫙 뿌려줄 중원 미드필더 자원은 풍부한데, 빠른 윙어나 오버래핑이 가능한 풀백이 없는 상황과 비슷하달까? 포인트가드진 역시 양적으론 풍부하지만 딱히 상황이 좋진 않다. 지난 1월엔 드래프트 1순위로 뽑은 외국인 선수 리오 라이온스를 고양 오리온스에 내주고 젊은 포인트가드 이호현을 받기도 했다. 이상민 감독은 이 트레이드를 두고 “정통 포인트가드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호현이 어떻게 성장하느냐는 삼성의 미래에 꽤 중요한 일이다. 즉, ‘빠른 농구’를 위해 필요한 자원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삼성과 이상민 감독은 헛물을 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치적으로 말하자면 공격도 수비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상태다. 경기당 평균 실점은 79.9점으로 최하위다. 1위인 원주 동부 프로미(이하 동부)와는 10점 이상 차이가 난다. 평균 득점도 71.7점으로 뒤에서 두 번째다. 100점을 줘도 101점을 넣으면 이기는 게 공격 농구, 빠른 농구라지만, 그렇게 주장하기에도 무색한 공격력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두 가지 명제. 첫째로 “스타플레이어는 명장이 될 수 없다.” 당장 지금만 놓고 보면 동의하기 어렵다. 상위권에 있는 서울 SK 나이츠의 문경은,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유재학, 동부의 김영만은 모두 국가대표급 선수였다. 그리고 “포인트가드 출신 선수들은 좋은 감독의 자질이 있다.” 현재 프로농구 감독 중 ‘만수’로 불리는 유재학 감독을 제외하고 나면,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이하 전자랜드)를 이끄는 유도훈 감독이 포인트가드 출신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도훈 감독의 경력이 이상민 감독과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유도훈 감독은 현대에 입단해 현대에서 은퇴했고, 신선우 감독 밑에서 현대와 창원 LG 세이커스의 코치를 맡기도 했다. 심지어 연세대학교 동문이라는 점도 같다. 그런데 유도훈의 농구는 이상민의 농구와 꽤 달라 보인다. 전자랜드의 선수구성을 살펴보면 개인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무척 드물다. 프로농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름조차 생소한 선수들이 태반이다. 주전과 비주전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고, 실책을 최소화하는 지공 위주의 안정적인 운영을 한다. 전자랜드는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실책이 10개 미만(9.9개)인 팀이다. 전자랜드는 올 시즌 초반엔 9연패로 고전했지만, 이후 6연승을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즉, 유도훈 감독과 전자랜드는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들만의 ‘토털 농구’를 완성한 것이다. 1:1 승부에서 우세를 거둘 수 있는 선수가 드문 상황에서, 무턱대고 공격을 외칠 순 없다. 선수들에게 자신의 농구를 주입하기보다, 여러 선수의 장점을 골고루 이용하며 효율을 극대화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속공은 시원하다. 그렇게 이기면 기분이 두 배로 좋다. 이상민의 자로 잰 듯한 패스로 시작되던 연세대와 현대의 속공 장면은 아직도 선연하게 남아 있다. 그 패스와 시야에 사람들은 ‘타고 난’이란 수식을 붙였다. 하지만 지금 삼성은 ‘타고 난’ 재능이 득실거리는 팀이 아니다. 그보단 리빌딩이란 단어가 더 알맞다. 이상민은 결코 고압적이거나, 고집을 부리며 팀을 이끄는 감독이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떨쳐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글. 유지성([GQ KOREA] 피처 에디터)
사진. 서울 삼성 썬더스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NCT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