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김래원, 카운터펀치

2015.02.02

SBS [펀치]의 박정환(김래원)은 웃지 않는다. 그가 유일하게 진짜 웃음을 보이는 것은 딸 예린(김지영)과 함께 있을 때뿐,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생의 끝자락에 선 박정환은 항상 바쁘고 초조하고 화가 나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위를 향해 매달려 살았고,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의 사냥개 노릇을 하며 정상을 넘봤지만 미래가 사라진 남자가 미소 지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5kg을 감량했고, 죽어가는 사람을 연기하기 위해 일부러 식사를 거르는 김래원의 퀭한 얼굴에는 형형한 안광만이 남았다. MBC [옥탑방 고양이]와 [어린 신부]에서 커다란 체구에 천진한 미소로 사랑받던 대형견 같은 남자가, 적에게 둘러싸인 늑대가 되기를 선택한 결과다.

꼭 필요했던 한 방이었다. 서른다섯 살, 데뷔 18년째를 맞은 배우에게는. 신인 시절 김래원은 가볍고 능글맞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믿음직하고 정이 많은 남자친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훗날 그가 ‘어깨에 힘이 들어갔었다’고 인정했을 만큼 뜨거운 인기를 얻은 [옥탑방 고양이] 당시 김래원은 불과 스물셋이었다. 망가뜨리고 싶을 만큼 순수하거나(MBC [사랑한다 말해줘]), 잔혹한 깡패였음에도 본성은 순박한 청년([해바라기]) 역시 송아지 같은 눈망울을 지닌 그에게 딱 맞는 옷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더 어린 미남들이 쏟아져 나오고 더 센 한류에 올라탄 스타들이 선호되는 시장에서, 과거의 성취는 현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군 복무로 인한 공백과, 유흥업소 종업원 폭행 논란, 스스로 좋은 연기를 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린 SBS [천일의 약속] 이후 [마이 리틀 히어로]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더 이상 청춘이 아닌, 게다가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은 배우는 무엇으로 미래를 확보할 수 있을까. 김래원이 [펀치]의 출연을 확정한 것은 방송 한 달 반 전이었다. 그리고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남자 박정환과 함께, 그가 돌아왔다.


어마어마하게 머리가 좋고 수완이 뛰어난 악당이자 본의 아니게 불의와 맞서게 된 히어로, 하루를 일 년처럼 살아야 하지만 적에게 허둥대는 모습 따위 보이지 않는 박정환의 여유는 박경수 작가의 비장하고 함축적인 대사에서 시작되어 김래원의 태도로 완성된다. 더 이상 얻고 싶은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만큼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이는 없다. 수술 실패 후 각성한 박정환을 연기하는 김래원은 희로애락의 감정 표현을 극도로 절제한다. 대신 자신이 모시던 이들에게 눈을 치켜뜨고 말끝을 슬쩍 잘라먹는 것으로 불손함을 드러낸다. 그가 공손하게 공격성을 드러내고 차분하게 상대를 위협하는 순간, [펀치]는 총성 없는 누아르가 된다. 그리고 이 강철 같은 남자가 통증 때문에 혼미한 의식으로 자신을 부르는 딸의 목소리에 답해주지 못하고 마침내 “살고 싶다”며 오열하며 무너질 때, 이야기는 과녁을 명중시킨다.

그래서, [펀치]의 김래원은 제대로 돌아왔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을 뿐 아니라 더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며 판을 뒤집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돌아보면 그는 [옥탑방 고양이] 시절에도 그 서글서글한 얼굴로 “옛날엔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연기 못한다였고, 지금은 연기 잘한다 소리 못 들으면 미쳐요”([문화일보])라고 털어놓던 독한 배우였다. 그런 연기자가 링에 설 때는 청춘이 아니어도 괜찮다. 관록이 붙으면서, 승률은 다시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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