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뒷이야기들

2014.12.04

처음 <닥터 프로스트>라는 웹툰을 연재하게 된 경위는 ‘#18. 웹툰작가 데뷔백서 part.2’에서 간략하게 쓴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긴 이야기지만 재미없을 것 같아 짧게 썼다. 연재가 결정되고 나서 가장 먼저 다가온 고민은 이것이었다. “나에게 심리학이라는 게 뭐지?” 여러 종류의 작가들이 저마다 발상, 소재, 캐릭터 등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씩 갖고 있다. 위대한 작가가 되면 그것들이 한 지점에서 만난다고 믿고는 있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나는 그중에서 ‘테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이다. 테마라는 것은 소재에 대한 작가의 입장, 시선,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 고민은 내가 심리학을 소재로 삼겠다고 결정한 이상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할 고민이었던 것이다. 저 고민에 대한 대답을 정리하기 위해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뭔지 내 안쪽을 뒤적여봐야만 했다.

20대 때의 나는 ‘성장’이라는 개념에 빠져있었다. 어떤 것이 성장인지, 성장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늘 고민했던 것 같다. 그 고민은 자연스럽게 ‘자기 이해’라는 새로운 고민 지점으로 옮겨갔다. 근 몇 년간 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이 뭔지 항상 생각해 왔다. 아직 해상도가 낮은 결론만을 갖고 있지만, 행복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이해가 필요하다는 잠정적 결론만큼은 베이스캠프의 깃발처럼 계속 꽂혀있어 마음에 바람이 불 때마다 펄럭이며 자기 존재를 상기시키곤 한다.

이야기를 쓸 때 나는 늘 두 가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제목과 (혹은 주인공이 이름)과 결말이다. 이 두 가지가 정해지지 않으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제목의 경우 쉽게 떠오르지 않아서 고생했다. 하루는 친한 동료작가 임인스(<싸우자 귀신아>), 정석우(<오렌지 마말레이드>)와 함께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면서 어떤 제목이 좋을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동안 떠오르지 않아 조용해졌을 무렵, 석우가 내 담뱃값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프로스트가 뭔 뜻이여?”라고 물어왔다. 당시 내가 피우던 담배 이름에 들어가 있던 단어였다. 순간적으로 프로스트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프로이트를 떠올리는 어감에, 차가운 성격을 반영하는 ‘서리’라는 의미. 그 이후로 계속 그 담배만 피우고 있다.

어떻게 보면 결말은 제목보다 쉽게 정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즉 ‘테마’에 해당하는 주장이 생기면 그것을 엔딩으로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 이해’라는 문제에 빠져 있었으니까,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대한 결말이 중요했다. 그러려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해야 했다. 작법의 논리는 역산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시작은 대부분 결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백 교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고민했던 것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였다. 취재에 들어가기 전 큰 드라마의 틀을 만들면서 ‘그리고 싶지 않은 것’이 가장 먼저 정리되었다. 나는 세 가지 소재는 그리고 싶지 않았다. 심리학이라는 단어에서 대부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세 가지였다. 다중인격, 사이코패스, 기억상실. 가장 흥미롭고 자극적이지만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기억상실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흔히들 알고 있는 전건망-모든 기억을 일시에 잊는-은 매우 드물거나 없다고 하는 학자도 있다.) 그 대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다 일상적인 소재를 고민했다. 그 결과 ‘성격장애’가 가장 많이 다루어졌다. 성격장애는 만성이라 오랜 시간에 걸쳐 증세가 생기며 한 번에 치료되는 종류의 증세도 아니다. 즉, 이야기라는 형식에는 정말 맞지 않았다. 그 결과 프로스트의 진단을 받아 이야기의 뒤편에서 후속 치료를 행하는 인물, 송선이 생겨났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대부분 주변에서 따왔다. 윤성아는 내가 하던 밴드의 멋진 보컬, ‘윤성하’의 이름에서 따왔고 천상원은 친한 친구 두 명의 성과 이름을 따와 합친 이름이다. 과거 내게 악기를 배우던 쌍둥이 여학생 자매의 이름, 송이와 설이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합쳤더니 ‘송설’이라는 멋진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설이라는 외자가 프로스트의 느낌과 겹치는 느낌이어서 그 이름은 결국 송선의 동생 송설에게 주었다. 결국 송선미 씨를 좋아하는 개인취향 때문에 언니의 이름은 송선이 되었다.

휴재가 길어지면서 욕도 어지간히 먹고 있다. 얼른 시즌3 연재를 시작하기 위해 가열차게 취재를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죄송합니다. <닥터 프로스트>의 시즌1과 2는 성격장애의 여러 증세를 그렸다. 하지만 연재가 길어지면서 나의 관심사와 문제의식이 변해서인지 시즌3은 조금 다른 톤이 될 것 같다. 개인의 문제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시스템의 문제, 사회현상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나 보다. 내가 그리고 있는 만화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럽네 어쩌네 했던 주제에 막상 쓰기 시작하니 참 뻔뻔하게도 줄줄 써내려가는 느낌이다. 여러 가지 뒷이야기들이 더 있지만 언젠가 할 기회가 생기겠지, 안 생겨도 어쩔 수 없고.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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