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혼자’가 아닌 여행의 경험

2014.10.23
사진. 이종범

여러 번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여행을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자주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무리 같은 장소로 여행을 떠나더라도 모든 여행은 늘 특별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여행을 최근에 다녀오게 되었다. 나는 지난 2주간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신혼여행은 일주일 이내의 기간 동안, 장소는 휴양지로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출퇴근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너무 길게 휴가를 내지 못해서겠지, 라고 생각하며 나와 아내는 호기롭게 2주간의 스페인 여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가서 알게 되었다. 신혼여행을 휴양지로 가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는 것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혼여행은 너무나 좋았다. 하지만 갈등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재앙은 시작되었다. 정말이지 바르셀로나에는 창의적인 소매치기들이 많았다. 나의 부주의로 인해 스페인 입국 한 시간도 안 되어 내 보물인 카메라를 가방째 도둑맞은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보다 행복한 신혼여행을 위해 조금 울고 나서 잊으면 된다. 잊을 수 있다. 문제는 여권이었다. 카메라 가방 안에 여권을 넣어두다니,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나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다. 마드리드 영사관까지 아내를 홀로 둔 채 여권을 재발급 받으러 가면서 처음으로 혼자가 아닌 여행의 험난한 여정을 예감했다.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해 죽을 맛이다.

내 아내는 걷기 애호가다. 물론 나도 걷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아내의 초인적인 체력에는 아무래도 민폐다. 아주 천천히 걷다가 힘들면 아무 데나 주저앉아 이국적인 도시의 풍광을 즐기는 나의 여행 스타일 때문에 아내는 여러모로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걷는 스타일뿐 아니라 무엇을 볼지, 무엇을 살지,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는 매 순간마다 우리는 매우 달랐고 그 다름을 조정해야만 하는 상황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겪어야만 했다. 이런 세세한 여행 방식의 차이는 세세한 갈등을 만들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둘 사이의 차이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늘 갈등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아내가 상상하던 신혼여행의 핑크빛 무드에 걸맞은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기적이고 무신경하며 제멋대로인 나도 그 정도는 안다.

사실 그런 점들을 제외한 여행의 나머지 부분은 참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라나다에서 빌린 렌터카로 네르하와 프리힐리나를 거쳐 말라가로 가는 동안, 남부 스페인의 지중해 연안 도로를 달렸다. 렌터카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엄청난 풍경이었다. 중간에 만난 이름 없는 해안 마을이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그뿐이 아니다. ‘유럽의 주방’이라 불리는 스페인답게 수많은 음식과 술, 타파스, 특히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술집들은 최고였다. 단언컨대 작은 접시에 조금씩 나오는 다양한 요리, ‘타파스’는 스페인의 매력 중 최고일 것이다.

잊지 못할 경험도 몇 번 했다. 피카소의 고향인 말라가에 들러 말라가 대성당에 들어섰을 때의 일이다. 가우디의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느꼈던 압도적인 감동과는 다르지만 말라가의 대성당에는 다른 곳과 다른 따스함이 있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고요해진 마음을 마주 대하고 있을 때 갑자기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한 중년의 여성 여행객이 절름거리며 일어나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베마리아’였다. 일순간 조용해진 성당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마도 그녀는 젊은 시절 유명한 성악가였을지도 모르겠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채광, 대성당의 울림 속에서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는 이번 여행에서 건진 보물 같은 순간이었다. 여행 중 가장 빛나는 순간들은 보통 우연으로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나의 신혼여행은 참 다사다난했다. 좋은 순간도 있었고 힘든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 이번 여행이 소중했던 이유는, 지난 2주간의 여정이 나와 아내가 앞으로 함께 걸어갈 결혼생활에 대한 더없이 좋은 메타포였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각자의 여행을 해온 두 사람이 앞으로는 함께 여행을 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 다를 것이고, 그건 섬세한 조정과 깊은 배려를 필요로 하는 위기들을 가져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을 이렇게 신인 부부가 처음부터 함께 경험하는 것 또한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은, 이제 혼자 하는 여행을 끝내고 새로운 장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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