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LG 트윈스 팬이다

2014.10.20

한 번은 우연일 수 있다. 두 번도 물론. 그렇기에 두 번째는 더욱 중요하다.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다시 말해, 세 번 네 번 거듭 이어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두 번째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LG 트윈스(이하 LG)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며 기나긴 암흑기에 종지부를 찍은 2013년이지만, 그렇기에 2014년을 앞둔 팬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이 단순한 ‘후루쿠’가 아니었음을 납득시켜야했기 때문이다. 다른 팀의 팬들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LG가 그렇지 뭐”라는 익숙한 체념을 늘어놓기에는 주변에 떨어놓은 ‘엘레발(LG+설레발)’이 너무 컸다. 십 년 만에 경험한 가을야구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그럴 리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이야 어쨌건, 시간이 흐르면 또 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그게 사람이다. 그 사람이 야구팬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부모님 전화번호는 잊어도 ‘6-6-6-8-5-8-7-6-6-7’이라는 암흑기 비밀번호만은 좀처럼 잊지 못하는 LG 팬들에게 2014년은 일종의 시험대였다. 새로운 도약이냐 익숙한 추락이냐. 개봉박두.

이어지는 이야기는 당신이 아는 대로다. 이를테면 찰리 쉰과 톰 베린저 주연의 <메이저리그> 같은 이야기. 영화 같지만 막상 영화로 만들면 너무 영화 같다고 욕먹을 이야기. 하지만 나는 몰랐고, 그래서 괴로웠다. 왜 아니겠는가? 열세 경기 만에 9위로 추락한 팀은 좀처럼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설상가상 감독은 자진해서 팀을 떠났다(나는 여기서 ‘도망갔다’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시즌 개막 후 한 달도 채 지나기 전의 일이다. 사상초유. 반등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전임 감독의 말과는 달리 한 번 추락한 성적은 다시 오를 줄 몰랐고, 팬들은 익숙한 조롱에 시달려야 했다. ‘DTD’의 망령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한 시즌 내에서 일어나는 ‘미시-DTD’가 아닌) ‘거시-DTD’라고 할까. 짧은 감독 대행 시기를 거쳐 새로운 감독이 선임되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LG는 계속해서 졌다. 어이없이 졌고, 우습게 졌으며, 이길 것 같다가도 졌고, 어김없이 졌다. 매번 지는 주제에 평균 경기 시간은 또 어찌나 긴지. 한 마디로 고통.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예전만큼 웃지 않고 조금 야위게 된 것은. 어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유부남이 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어쩌자고 이런 팀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원망도 해봤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야구가 인생을 닮은 게임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런 의미다. 누가 봐도 편한 길을 두고 길고 울퉁불퉁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이기는 것보단 지는 걸 더 잘하는 팀을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취향이자 태도이고 무엇보다 습관이며 따라서 운명이다. 이어지는 것은 체념. “LG가 그렇지 뭐”라는 푸념은 “내 인생이 그렇지 뭐”라는 자조로 이어진다(닉 혼비가 지적하듯 스포츠에 자신을 이입하는 건 덜 자란 남자들의 특징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묘한 역전이 벌어진다. 승리가 아닌 패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패배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은 패배와 함께 사라지고 남는 것은 익숙함이다. 당연한 패배. 혹은 학습된 무기력. 나는 그것이 지난 암흑기 동안 LG 선수단을, 그리고 팬들을 지배했던 정조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너무 거창하게 말하는 건가? 별 수 없다. 사랑하는 팀이 매번 깨지는 꼴을 보고 있자면 온갖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2014년의 LG는 그렇지 않았다. 양상문 감독이 선임된 후에도 한 달 동안 꼴찌를 맴돌던 그들은 조금씩 이겨나갔고, 한 계단 한 계단씩 차분히 올라갔다. 6월 12일에는 8위가 되었고, 7월 3일에는 7위가 되었으며, 7월 29일 6위가 된 후 곧이어 5위가 되었고, 6위와 5위를 오르내리는가 싶더니, 8월 21일 4위가 된 후 결국 그 자리를 지켜냈다. SK 와이번스가 시즌 막판까지 맹렬히 추격했지만 한 번도 4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니 이 글은 일종의 반성문이다(고백하자면 지난 6월 나는 바로 여기 <아이즈>에 꼴찌 LG를 디스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야구에 인생을 대입하는 덜 자란 어른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너무 쉽게 포기해온 게 아닐까. 양상문 감독은 선임 직후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덕아웃에 걸어놓았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 흔한 말이라는 건 나도 안다. 더 멋진 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말은 흔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다. LG는 그렇게 했고, 스스로 증명했다. 그러니 어떻게 이 게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덧. 내가 이렇게 오글거리는 글을 쓴 이유는 오늘이 10월 17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0월 17일 LG는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시즌 마지막 경기를 허무하게 패했고, 결과적으로 시즌 5할 승률을 달성하지 못했다. 분통터지는 일이다. 하지만 19일, ‘우리’는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13대 4의 대승을 거두었고 그걸로 됐다. 야구팬이란 그런 법이다. 그리고, 최소한 2차전이 열리기 전까진, 나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야구팬이다.

사진제공.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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