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완자의 커밍아웃

2014.10.23

2006년, 여고생이었던 완자는 옆 학교 여고생이었던 야부와 사귀기 시작했다. 이듬해 학교에서 아우팅을 당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친구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했다. 2012년, 고등학생인 동생들에게 커밍아웃했다. 2013년, 엄마에게 갑작스럽게 커밍아웃했다. 2014년, 가까운 사람 중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커밍아웃했다. 완자와 야부는 9년째 연애 중이다. 완자 작가의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다.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되는 레즈비언 커플의 일상툰, 2012년 초 ‘도전 만화’ 코너에 작품을 올리며 “소재가 드러나자마자 빛삭(즉시 삭제)될 가능성도 생각했다”는 작가조차 예상치 못했던 정식 연재 기회는 반년 만에 찾아왔다. 완자는 첫 회에서 야부에게 선언한다. “나 만화로 세상을 바꿔볼 거야.” 꿈이 원대한 만큼 현실은 험난했다. 동성애를 혐오하고 이 작품을 청소년 유해매체로 낙인찍으려는, 지극히 예상 가능했던 일부 댓글보다도 오히려 더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작품 내적인 논란이었다. 연재 초, 완자는 호모포비아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며 “나는 틀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당신도 틀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해 비판받았다. 성소수자들을 향한 호모포비아들의 실제적 위협과 차별은 단순히 ‘다름’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간과한 발언이기 때문이었다.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레즈비언 친구의 레즈비언 인터넷 커뮤니티 가입 과정 일부를 등장시킨 에피소드에서는 이들 커뮤니티를 검색해 습격한 남성 훌리건들의 아우팅 시도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받았다. 단지 그 존재 여부를 언급했을 뿐인데 커뮤니티의 비밀을 폭로하고 안존을 위협한 인물로 지목된 것이다.

이러한 논란과 해프닝은 완자의 독특한 포지션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대사회적 활동은 대개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들은 각자의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좀 더 뚜렷이 자각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집단의 문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태도를 배우게 된다. 그러나 처음 좋아하게 된 여성을 통해 자신의 성 지향성을 깨닫고 같은 상대와 오랜 연애를 지속해온 완자의 작품에는 레즈비언 커뮤니티가 등장하지 않는다. 완자에게는 레즈비언 친구와 게이, 트랜스젠더인 지인이 있지만 작품에 더 자주 등장하는 것은 가족이나 (호모포비아를 포함한) 이성애자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다. 어쩌면 완자는 게이에 비해 커뮤니티의 수가 적고 게토화된 데다 2000년대 중반 중·고등학교에서 진행된 ‘이반검열’ 이후 아우팅에 대한 공포가 지속되며 폐쇄성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한국 레즈비언 사회의 딜레마를 내부에서 체감한 경험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커뮤니티에 소속되었건 아니건, 현재 완자는 가장 대중적인 플랫폼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의 존재를 매우 적극적으로 가시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인 학생, 직장인, 가족 구성원으로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함께 동성혼, 입양에 대한 생각을 밝히거나 이성애자 중심의 고정관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두에게 완자가>의 댓글난에서 LGBT 청소년들의 자기 고백을 종종 볼 수 있는 것은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성을 거의 갖지 못하는 나이에 억압과 차별, 두려움을 견뎌야 하는 이들은 감춰왔던 고민을 토로하거나 이 작품을 통해 위로받았다고 털어놓는다. 한국은 성소수자로서의 롤 모델, 특히 레즈비언 롤 모델이 극히 드문 사회지만 완자는 이들이 가장 쉽게 접근 가능한 통로에서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캐릭터이자 행복한 사회적 성공 모델이다. 과거 TV에 나온 성소수자를 보고 ‘꼴 보기 싫다’며 채널을 돌렸던 아빠로 인해 상처받았던 완자가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아빠가 알고 있었으면 해서” 마침내 커밍아웃한 최근의 에피소드는 기대 이상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리고 단지 그가 특별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 치부하기 전에 염두에 둘 것은, 자신의 삶을 둘러싼 관계에 대해 간단히 낙관할 수는 없지만 지레 비관해버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커밍아웃 끝에 “말이 많고 탈이 많아도, 내 사람들은 여전히 내 옆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완자의 말은 성소수자가 살아가기에 결코 녹록지 않은 이 사회에서 먼저 고민하고 행동했던 사람이 제시해줄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일 것이다.

철학자 클로디아 카드는 <레즈비언 선택>에서 동성애자를 밀실에 가두려는 사회적 강요를 약화시키는 세 가지 방법으로 ‘스스로 커밍아웃하기,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도록 설득하기, 레즈비언과 게이 집단들을 위한 공공성을 모색하기’를 꼽았다. “우리가 얼마나 광범하게 확산되어 있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영예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적합한 인식을 전달하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상황들 속에서 커밍아웃해야 하고 (중략) 수많은 삶의 행보에서 우리의 존재를 전달해야 한다.” 완자가 카드의 이론에 대해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두에게 완자가>는 이미 여기서 이야기한 모든 것을 하고 있다. 지난 2년 3개월 동안 238회에 걸쳐서. 그러니까 그 사이 세상은 조금, 바뀌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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