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자스시티 로열스는 오늘을 위해 산다

2014.10.20

90년대에 상당한 반향을 이끈 <하드볼>이라는 야구 게임이 있다. 게이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케이드’와 ‘시뮬레이션’의 재미를 두루 갖춘 게임이었다. 5일마다 한 번, 박찬호의 승패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던 때. 메이저리그는 프로야구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주말만 되면 배를 깔고 침대에 누워 <하드볼>을 켰다. 최신 선수 패치를 깔고 나면, 텔레비전에서나 겨우 만날 수 있던 선수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그 선수들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관리했다. 아무리 게임이라도 지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 주로 강팀을 골랐다. 혹은 유명한 선수가 있는 팀이거나.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시즌을 치러본 적은 없다. 거기엔 3할 타자도, 15승 투수도 드물었다. 주목할 만한 유망주들이 좀 있었지만, 선수 프로필에 얼굴조차 제대로 묘사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로열스는 게임에서도 별로 환대받지 못하는 팀이었다.

지금은 그때처럼 메이저리그를 챙겨 보지 않는다. 관심 있는 몇몇 팀의 결과를 확인하는 정도일 뿐이다. 지난해, LA 다저스의 경기를 보다 잭 그레인키가 캔자스시티 로열스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2009년 사이영 상 수상자인 그레인키는 2010년 캔자스시티를 떠났다. 네 명의 유망주를 팀에 선물하고. 메이저리그는 NBA와 달리 샐러리캡이 없다. 돈이 많거나 당장 우승을 바라보는 구단은 힘닿는 데까지 선수를 영입할 수 있다. 당연히 그 선수들은 돈이 없고 우승과 거리가 먼 구단으로부터 이적해 온다. 그런 팀을 응원하는 것은 과연 어떤 일일까? 그저 ‘언더독 팀의 매력’이라 부르기도 어렵다. 몇 년 동안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는 필연적으로 팀을 옮겨야 한다. 아무리 선수는 떠나도 팀은 영원하다지만 글쎄. 경기장에서 공을 던지고 치는 건 결국 선수들 아닌가? 그렇다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처럼 천부적인 재능의 단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선수가 없어도 없는 대로 끌어모아 성적을 내는 재미를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그러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열혈 팬 이성우 씨의 캔자스시티 방문 소식을 들었다. 그가 캔자스시티에 초청받은 뒤 로열스가 8연승을 내달리는 놀라운 일이 생겼다는 소식도 함께. 어, 분명히 그렇게 이기는 팀이 아니었는데. 그때부터 ‘관심 있는 몇몇 팀’들과 함께 로열스의 경기 결과도 챙겨 보기 시작했다. 라인업엔 젊은 프랜차이즈 스타가 많았다. 캔자스시티에서 데뷔한 뒤 캔자스시티에서만 뛰고 있는 선수들. 에릭 호스머, 마이크 무스타커스, 알렉스 고든, 캘빈 에레라, 그렉 홀랜드, 살바도르 페레즈…. 그리고 이 선수들은 시즌이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힘을 냈다. 와일드카드로 29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더니, 내리 여덟 경기를 이기며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맘껏 박수만 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젊은 선수들이 큰 경기에서 잠재력을 폭발시키게 되면, 자연스레 그다음 시즌과 팀의 창창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겨야 할 텐데, 그러지가 않았다. 저 선수들도 곧 팀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사실 제각각의 정규 시즌 기록만 살펴보면 캔자스시티의 젊은 프랜차이즈 스타들 중 어마어마한 거액을 손에 쥘 만한 선수, 또는 다른 팀에서 유망주를 퍼줄 만큼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는 몇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팀을 옮기지 않고 함께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포스트시즌에서 거의 괴력에 가까운 방망이 솜씨를 뽐내고 있는 알렉스 고든, 에릭 호스머, 마이클 무스타커스와 팔이 빠져라 던지고 또 던지는 캘빈 에라라, 그렉 홀랜드의 불펜을 보고 있자면 애틋한 맘이 절로 생긴다. 그들 스스로도 승리의 기쁨과 함께, 동료들과의 이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게 아닐까?

내·외야 관중석을 빼곡하게 채운 팬들의 모습도 좀 달라 보인다. (결과적으로 포스트시즌의 전 경기를 다 이기긴 했지만) 결과나 게임 내 상황에 상관없이 목청껏 응원하고,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기는 듯 보인다. ‘스몰 마켓’ 팀의 팬으로서, 기약 없는 내일 대신 오늘을 충분히 즐기려는 듯한 인상. 플로리다 말린스가 1997년과 2003년 우승 후 팀을 거의 해체하다시피 선수들을 팔아넘겼듯(03년 우승 뒤엔 몇 년에 걸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이라도 한다면 당장 올겨울에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2014 시즌은 더욱 특별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올해뿐일지도 모르는 ‘가을의 기적’이니까. 즉, 2014년의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지금 거기에만 있다. 그래서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사진제공. 캔자스시티 로열스 공식 페이스북│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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