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나무, <우리 노래방에 가서 얘기 좀 할까?>의 ‘찌질미’ 희준

2014.09.25
‘결핍의 아이콘’ 윤나무에게 대체 왜 그런 작품에만 출연하느냐고 물었다. “연출들이 좋아할 만한 이미지가 있다고 하더라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얼굴에 그늘이 많다”는 말도 이어졌다. 마른 몸, 톡 볼가진 광대, 순수와 광기를 동시에 담은 두 눈동자. 제대를 두 달 앞두고도 여전히 삐쩍 마른 몸으로 자살을 시도하던 말년병장의 이야기가 데뷔작(<삼등병>)이었으니 공황장애 환자(<블랙 메리 포핀스>), 유약한 유태인 소년(<히스토리 보이즈>)으로 커리어가 이어지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난 8월 9일부터 윤나무는 다크 포스 대신 ‘찌질미’를 입었다. 여자친구를 붙잡기 위해 무릎 꿇고 비는 건 물론이고, 화를 주체하지 못해 옷을 벗어 던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아버지에게는 화만 내는 남자. 그런데 결핍의 아이콘이었던 지난날들보다 현재를 사는 지금의 윤나무가 궁금해졌다. 다크 포스 뒤편에 가려져 있던 윤나무의 가지.

1. 연극배우입니까?
Yes.
2011년 <삼등병>으로 데뷔해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왔다 갔다 하며 <블랙 메리 포핀스>, <모범생들>, <아가사>, <히스토리 보이즈> 등 열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지금은 연극 <우리 노래방에 가서 얘기 좀 할까?>(이하 <우노얘>)를 공연 중이다.

2. 노래방 주인입니까?
No.
아버지랑 한 번, 여자친구랑 한 번 노래방을 찾는 희준 역을 맡았다. 여자친구와의 신보다는 아버지와 있는 신에서 더 이입이 된다. 우리 아버지도 노래방에서 진짜 ‘My Way’를 부르시니까. 아버지는 공연을 보고 “너 나한테 화낼 때처럼 똑같이 하더라”라고 하셨다. (웃음) 극 중 희준이는 말이라도 하지만, 난 어느 순간부터 대화를 아예 끊어버렸거든. 불효자가 맞구나, 라는 생각을 항상 하는데 그걸 꼭 대화를 한 이후에 하니까 문제다. 한숨 푹푹 쉬는 거지. 어릴 때는 아버지가 진짜 무서웠는데, 요즘 너무 유해지신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애정 표현도 엄청 잘 하시니까 왜 이러시지? 싶기도 하고. (웃음)

3. 애정 표현을 잘 하는 편입니까?
No.
희준이는 아버지는 물론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굉장히 찌질하다. 근데 그건 아마 여자친구를 정말 많이 사랑해서 그랬을 거야. 카톡도 맨날 내가 먼저 보내고 여자친구는 심각한 얼굴로만 나를 대하는 것 같고, 그게 곪고 곪다가 터진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연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보일지는 모르겠다. 으허허허헝. 연애를 대학 들어가서 처음 했는데, 나도 그때는 여자친구가 원하는 대로 모든 걸 다 해줬었다. 그게 어느 순간 보니 잘해주는 게 아니라 참고 있는 거더라. 희준이는 거기서 선을 넘어가는 애인 거고, 나는 그냥 포기해버렸다.

4. 관계 맺기에 서툰 편입니까?
Yes.
예전 연애를 생각해보면 연애하는 방법도 모르고 그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만 있다 보니 내가 지칠 때가 많았다. 이제는 서운한 게 있으면 서운하다고 서로 얘기하는 그런 연애를 하고 싶다. 한참 동안 연애를 못 했다. 연애한 지 굉장히 오래된 상태에서 연습을 하다 보니 처음엔 여배우랑 둘이 말을 주고받는 것 자체도 너무 어색하더라고. (웃음)

5. 다크한 편입니까?
Yes.
지금은 성격도 유해지고 말도 곧잘 하지만, 예전엔 쑥스러움도 많이 타고 웃음기 자체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시련>이나 <갈매기> 같은 비극만 해서 늘 죽었고, 항상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그늘진 상태로 연습실 구석에 있었다. 얼굴에 한이 있어서 그동안 결핍이 있는 캐릭터를 많이 맡았던 것 같다. 다크한 게 한몫했지. 근데 그렇게 살다가는 죽겠더라.

6. 변화의 계기가 있었습니까?
Yes.
‘실제의 나는 재밌는 사람인데 왜 연기만 하면 달라지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과감하게 표현해야 될 것도 눌러서 하게 되는 것 같고.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니 사람들이 늘 내 속을 모르겠다고 했는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만히 있는 거다. (웃음) 어느 순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더 예의 있는 거라는 걸 알게 되면서 밝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기 시작하니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

7.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Yes.
대학교 4학년 때 남산에 트레이닝 하러 갔다가 개인적으로 트레이닝을 하러 온 박신양 선배님을 우연히 만났다. 동국대학교 선배니까 인사를 드렸는데 그 계기로 방학 3달 동안 남산에서 같이 놀았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서 선배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태훈아(윤나무의 본명), 내가 너를 한 달 동안 봤는데 활짝 웃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거울 보고 웃어봤는데 정말 어색하더라고. 그때가 스물여섯이었는데 웃는 근육이 26년간 전혀 발달하지 않은 거다. 뭐 때문에 이렇게 진지하게 살고, 한편으로는 진짜 진지한 거라는 건 뭐지? 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제공. 스토리P

8. 스스로 납득해야 움직이는 편입니까?
Yes.
학교 졸업공연을 앞두고서야 내가 연기에 재미를 못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영상을 봤는데 못 봐주겠더라.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교수님이 만들어놓은 인형 같았다. 그걸 내 눈으로 확인한 이후부터는 연습실에서 카메라 틀어놓고 내 멋대로 얘기해보면서 평소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계속 봤다. 무대에서와는 전혀 다른 화술을 쓰고 있더라고. 그러니까 진심이 안 느껴지고, 재미가 있을 리 없었다.

9. 한 번 하겠다 마음먹은 것은 끝을 보는 편입니까?
Yes.
아버지가 배우였기 때문에, 진짜 하면 안 되는 직업이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2 때 오래간만에 아버지가 복귀하신 연극을 봤는데, 커튼콜에서 박수 받는 아버지 모습이 처음으로 너무 멋있어 보였다. 밥 먹다가 연극영화과 가겠다고 얘기해서 아버지에게 숟가락으로 맞았지. (웃음) 당시 영화 <올드보이>, <범죄의 재구성>이 유행할 때라 동국대를 가면 최민식, 박신양 선배님들처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입시학원을 갈 형편이 아니라 연기를 혼자 책으로 배웠고, 재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종시험 특기로 노래를 했는데, MR이 귀해서 테이프 한 곡당 12만 원씩 팔던 때라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안재영한테 테이프를 받아서 준비하기도 했다. 테이프 늘어질까 봐 복사해서 CD로 옮기고, 노래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냥 걔가 부른 노래(<지킬앤하이드> ‘Take Me As I Am’)로 하고. 지정 연기로 <리어왕> 했을 때도 10명 중에 나를 포함한 9명이 에드몬드 대사를 해서 이건 붙기 힘들겠다 싶었다. 결과적으로 6번의 시험 끝에 동국대에 들어갔는데, 내가 붙은 건 착오가 아니었을까? (웃음)

10. 성실합니까?
Yes.
학교를 너무 힘들게 들어왔기 때문에 다른 애들처럼 캠퍼스의 낭만을 느낄 정신도 없이 학교에서 거의 살았다. 잠도 많이 안 잤다. 되게 숨 막히는 삶이었다. (웃음) ‘연기 이거 정말 재밌는 거네!’ 하면서 다니기보다는 ‘이렇게 하면 선생님들이 나를 예뻐할 거다’라고 생각했다. 배우라기보다는 성실한 학생에 가까웠다. 그래서 엄마가 좋아하셨지. 학비를 충당할 수 있었으니까.

11. 책임감이 강합니까?
Yes.
부끄럽지는 않지만 가난했고,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우리 엄마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어릴 때부터 그걸 보고 자라다 보니 엄마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있다. 그러니까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했던 행동들을 교수님도 좋게 보셨고, 그렇게 학교에서도 성실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얻어걸렸다. (웃음) 4년 사이에 정식 공연된 작품만 열한 편을 했는데, 일단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책임을 져야 된다는 마음이 강해서다. 워낙 들이닥치면 내가 잠을 안 자고서라도 해결하려고 하는 편이라서.

12.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No.
책임을 지겠다는 것도 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좋은 이야기를 같이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기 때문에 본 공연이든 리딩 공연이든 다 허투루 할 수가 없다. 대사 외운다고 후배 집 앞까지 찾아가 새벽 2~3시까지 한 적도 있다. 잠도 많이 못 자고 힘들어하다가 다 해결하고 나서 또 후회하는 거지. 맙소사! 올해 <히스토리 보이즈> 연습할 때 <카인과 아벨> 연습이랑 <아가사> 공연이 겹쳤었다. <히스토리 보이즈> 연습 초반엔 굉장히 힘들어서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포스너는 그런 애가 아닌데. (웃음) 계속 이렇게 하다가는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겠다 싶어 좀 멈춰야 할 것 같다.

13. 꿈꾸는 미래가 있습니까?
Yes.
그동안 워낙 어눌하거나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들을 맡다 보니 진짜 나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던 중 <우노얘>를 하게 됐다. 이 작품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황이 펼쳐지는 거라 캐릭터를 구축하기보다는 그냥 나로 하면 된다. 열 번째 하고 넘어가는 작품인데 굉장히 의미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거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뮤지컬을 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하게 됐고, 좋은 사람도 많이 알게 됐다. 일이 이렇게 저질러졌는데 앞으로도 지금처럼 어디에 국한되지 않고 기회가 닿으면 다 해보고 싶다.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고 있는 기준이 있습니까?
Yes.
대본이 좋은 작품이 먼저다. 이야기가 좋지 않으면 내가 거기서 뭘 하든 무너질 가능성이 크니까. 대본에 흥미가 있고 메시지가 뚜렷하든 안 뚜렷하든 작품의 스타일이 확실한 게 좋다. 연출님들이 나를 선택하는 건 그 안에서 무슨 역이든 내가 할 역할이 있기 때문일 거니까 열심히 하고 싶고. 어쨌건 난 아직 초년생이니까 별다른 방법이 없다. 성실하게 하는 수밖에.

15. 마지막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윤나무.
1985년생. 그늘 뒤에 감춰진 은근히 귀여운 남자.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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