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자신감이라는 속임수

2014.09.25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내 몸뚱이의 부실함을 적나라하게 알게 되어 생각하게 된 글. 자신감 초하락 중이지만 하루 빨리 근거를 만들어야 연재에 들어갈 수 있을 듯.

군대에 갔을 때의 일이다.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로 복무할 때엔 영어와 더불어 운동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 두 가지 기준으로 부대를 배치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입대 전부터 꾸준히 준비한 사람들의 운동 능력에는 당할 수가 없다. 따라서 평소에 운동을 해오지 않은 사람들은 운동 능력 테스트를 받으면서 자신의 능력치를 여실히 깨닫게 된다. 살다 보면 이렇게 자신의 능력치를 명료하고 적나라하게 절감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럴 경우 보통은 좌절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며 움츠리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20대 초반이 되었는데도 그때까지 그렇게 명확한 열등의 입장에 서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10대 시절 공부의 세계를 거의 다 통과할 때까지도 직면해보지 못한 것이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위험천만한 일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감이라는 것은 게임에서 ‘+5’ 능력치와 같은 일종의 부스터 역할을 종종 해준다. 실제 능력치와 무관하게 마치 내가 잘 해낼 것 같다는 느낌을 심어주면서 사기를 올려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한국 사회에서는 자신감을 미덕으로 인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거기에는 아주 큰 함정이 있다.

개인적으로 자신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무언가를 성취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어린아이는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는다. 그때 태초의 자신감이 뿌리를 박기 시작한다. 그 자신감은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다. 이런 종류의 원형적인 자신감은 그 아이가 향후 무언가를 할 때에 마음의 종잣돈이 되어준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두 번째 종류의 자신감, 딱히 근거가 없는 자신감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명확한 성취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겨난 자신감과 달리, 이런 자신감은 막연하며 광범위한 일종의 ‘태도’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감은 굉장히 기만적이다.

자신감은 성찰이라는 행동과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뒤를 보는 성격이라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바라보는 성격에 가깝다. 산 중턱에 올라서서 지나온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이 성찰적인 태도라면, 자신감은 산의 정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자신을 속이는 데 능하다는 점에 있다. 정상을 바라보다 보면, 현재 자신이 산 중턱에 있음에도 이미 정상에 올라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신감 넘치는 남성들이 스스로를 대인배라고 생각하는 반면, 그들이 연애라도 시작하면 놀랄 만큼 속이 좁고 질투심에 불타오르곤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마음이 넓다’는 대부분, ‘나는 마음이 넓어지고 싶다’라고 해석해야 맞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감은 근거가 없을 경우 마치 샤워 직후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처럼 자기상 위에 천연의 메이크업을 해준다.

물론 어느 지점까지는 그렇게 메이크업된 자아상이 큰 도움이 된다. 아직 아무런 자산과 경험이 없을 때에 새로운 경험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독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그러한 자신감만으로는 매우 위험하다. 명확한 자기 파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거 없는 자신감의 기만은 진정한 도전의 순간에 더욱 큰 함정이 된다. 내가 데뷔 준비를 하던 시절, 내 주변에는 그림도 스토리도 너무나 잘 풀어내는 작가들이 많았다. 소위 ‘존잘러’들에 둘러싸여 지내던 나는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똑똑히 기억나는, 그 당시 나를 구원했던 명확한 한마디, 마음속에서 들렸던 한 문장은 “내 까짓 게 뭐라고”였다. 이 문장은 매우 자조적인 면이 있지만 동시에 그때까지 부둥켜안고 있던 자의식을 깔끔하게 내려놓게 만드는 인정의 힘이 있었다. 내려놓는다기보다는 시원하게 바닥에 패대기치는 느낌에 가깝다. 자신감이라는 허상 속에서 나 스스로 나에게 기대하고 있던 것들을 저 말과 함께 던져버리게 되면 너무나도 편안한 마음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 뒤를 이어서 자기 뒤통수를 호되게 후려치는 말들이 연이어 찾아오게 된다. 내가 언제 잘했다고 걸작을 그릴 생각을 하지? 배운 것도 습작도 그다지 없는 주제에 저 사람들하고 비교를 하다니 정신이 나간 것 아냐? 건방진 것에도 정도가 있지. 이러한 건강한 자학의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그 이후에는? <더 파이팅>의 챔피언 일보가 챔피언 방어전을 펼치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았던 한 가지, 바로 도전자의 순수한 자세가 될 수 있다. 그때부터가 진정한 게임의 시작인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의 거품을 조금씩 걷어내고, 근거 위에 생겨난 자신감의 비중을 조금씩 늘려나가다 보면, 그런 자신감의 총합은 자존감으로 진화하는 것 같다.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가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감각이다. 내가 무언가를 잘하거나, 돈을 잘 벌거나, 잘생겼거나 하는 조건과 무관하게 유지되는 것, 즉 조건이 없는 자기 존중감이 바로 자존감이다. 이런 종류의 자존감은 근거와 무관하게 자신을 둘러싼 일종의 갑옷이 되어 절망적인 경험의 순간에도 자신을 비하하고 학대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준다. 자신감이 주식처럼 요동치는 가치를 지닌다면, 자존감은 순금과 같은 것이라서 시세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보호막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직 오를 산 정상이 저 위에 있더라도, 지금까지 올라온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다시 등반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놀면 뭐하니?' 효리X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