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상상마당 영화팀 “<족구왕> 봇이냐는 말도 들었다”

2014.09.24
<족구왕>의 각본을 쓴 영화감독 김태곤은 지난 8월 27일 자신의 SNS에 이렇게 썼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처럼 내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볼 수 없기에 원치 않는 장소와 시간대에 영화를 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족구왕>은 무려 1만 명이 그 수고를 했다.” 신인 감독의, 스타 배우 하나 없는, 복학생이 땀 흘리며 족구 하는 이야기를 보기 위해 그 후로도 2만 명 넘는 관객들이 그런 수고를 했다.(9월 22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36,460명이 이 영화와 만났다.) 여기엔 작품의 힘뿐 아니라 배급사인 KT&G 상상마당 영화팀의 효과적인 마케팅이 큰 역할을 했다. 치밀한 전략, 세련된 포스터, 위트 있는 SNS 활동으로 입소문을 퍼뜨리고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한 것이다. 천만 관객 영화의 시대에 1만 관객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민수 KT&G 상상마당 기획실장, 진명현 영화사업총괄팀장, 임유청 영화사업팀 홍보·마케팅 담당자를 만났다.
진명현 영화사업총괄팀장, 이민수 KT&G 상상마당 기획실장, 임유청 영화사업팀 홍보·마케팅 담당자. (왼쪽부터)

<족구왕> 누적 관객 수가 3만 명을 훌쩍 넘겼다. 기분이 어떤가.
진명현
: 피곤하다. (웃음) 사실, 이번 주가 제8회 대단한 단편영화제(9/18~9/24) 개막인데 사무국 전원을 합쳐도 나, 임유청 씨, 김신형 프로그래머 셋뿐이다. 연초에 배급과 영화제가 겹치지 않게 일정을 짰지만 <족구왕>이 잘되면서 오버랩 기간이 생겼는데 지난주 개막 준비로 가장 바쁠 때 2만 명 돌파 파티가 딱 겹쳐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행복하다.

올 초부터 4월 <셔틀콕>, 6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8월 <족구왕>을 묶어 야심 찬 개봉작 라인업을 발표했는데 <셔틀콕> 누적 관객이 4,518명,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2,898명으로 다소 아쉬운 성적을 냈다.
진명현
: 특히 <셔틀콕>은 비운의 작품이다. 관객 1만 명을 꼭 넘기고 싶었고, 60여 명의 저자를 어렵게 섭외해 <셔틀북>이라는 책도 만들었고. 포스터도 여성 관객들이 반할 만큼 예쁘게 만들었다. 그런데 4월 24일 개봉을 앞두고 준비했던 이벤트들이 세월호 참사로 다 중단됐다. 극장이나 버스 등 뚜렷한 광고 영역이 있는 상업영화들은 상황이 나았다. 하지만 작은 영화는 포털 사이트나 극장에 광고를 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GV(관객과의 대화)나 SNS 등 구전 효과가 있는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으면 존재조차 알리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유빈 감독과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론은 ‘하지 말자’였고, 하지 않았더니 역시 곧바로 타격이 왔다. 아직도 <셔틀콕>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마지막 작품인 <족구왕>의 흥행에 대한 부담이 더 컸던 건가.
이민수
: 진 팀장님은 ‘이걸로 끝을 보겠다’는 의지가 장난 아니셨다. 개봉 전에도 3만 명 가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막상 그렇게 될 때쯤엔 너무 격무에 시달리신 것 같다. 나는 운영 총괄 담당자인데, 다른 사업 분야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명량> 평점이 8점대인데 <족구왕>은 9점대”라면서 홍보하고 초대권 드리곤 했다. (웃음)
진명현: 1만 명을 넘겼을 때는 정말 기뻤다. 그런데 3주 차인 추석 연휴 전 개봉관 수도 많이 줄고 상영 회차도 반 토막 난 데다 <자유의 언덕> 같은 히트 브랜드 작품도 나오고 해서 5일 동안 5,000명만 들면 좋겠다, 그렇게 조금만 버티면 3만 명도 바라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8,500명이 넘게 와주셨다. 게다가 요즘은 <자유의 언덕>, <야간비행> 등의 스코어가 다 괜찮게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상반기에 비하면 시장 상황이 정말 좋아진 거라, 그런 물꼬가 터지는 초반에 우리 영화가 있었다는 게 기쁘다.
임유청: 2013년 <환상 속의 그대>(7,518명)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족구왕> 덕분에 입사 후 처음으로 1만이라는 숫자를 넘는 걸 봤다. (웃음)

<족구왕> 마케팅의 기본 방향은 무엇이었나.
진명현
: 기존 독립영화 관객들이 볼 때 대중적이고, 일반 대중이 볼 때 신선한 느낌을 주는 거였다. 이런 작품의 매력은 기대치가 높지 않은 데서 차차 올라가는 재미일 수도, 상업영화가 차지하지 못한 빈 구석에서 생기는 재미일 수도 있다. 사실 <족구왕>은 상업영화로 놓자니 유명인이 없고, 독립영화인데 이렇다 할 수상 타이틀이 없다는 것 때문에 모호한 경계에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래서 ‘독립영화’라는 타이틀을 떼고 갈 것이냐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그러면 자칫 그냥 기획 코미디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살렸고,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갔다.

큰 틀을 잡은 뒤 특히 힘을 준 마케팅 포인트는 뭐였나.
진명현
: 포스터와 예고편 제작에 예산을 크게 배정하는 편이다. 영화 제목이 <족구왕>이라고 디자인까지 웃기게 했다가 C급 기획 코미디영화처럼 보이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코드는 ‘병맛’이지만 레이아웃은 굉장히 세련되게, 사진의 톤과 마감도 팬시하게 가자고 했다. 1만 관객 돌파 때 제작해 선물한 캐릭터 카드도 촌스러운 것 같지만 하나도 안 촌스러운 게 포인트였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왜 디자인인가.

진명현
: 영화의 배급을 맡아 개봉한다는 건 화장을 시켜 세상에 내보내는 것 같은 일이다. 독립영화는 광고를 다양하게 할 수 없으니까 얼굴이 포스터 하나다. 수정 메이크업도, 성형도 할 수 없다. 내 딸을 처음 무도회에 내보내는데 명품 화장품은 못 써도 오천 원짜리 새 립스틱은 발라줘야 한 번이라도 춤추자는 사람이 생기지 않겠나. 멀티플렉스 관마다 여러 영화 포스터가려 있을 때 우리 포스터가 ‘인디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 게 목표다. ‘인디는 세련되지 못하고 촌스러운 것’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프로파간다(디자인 스튜디오) 실장님들에게 굉장히 큰 빚을 지고 있다.

7월 초 “여름 5대 블록버스터 <군도>, <명량>, <해적>, <해무>, 그리고 <족구왕>”이라는 문구의 포스터를 서울 전역에 붙였다. 무슨 패기였나.
진명현
: <족구왕>에 돈을 쓰고 싶은데 많이 쓸 수는 없었다. 포털 사이트, 버스 광고는 너무 비쌌고 거리 포스터는 상대적으로 싸서 이틀에 5백만 원 정도 하더라. 그런데 당시 모든 기사에서 <군도>, <명량>, <해적>, <해무>만 언급하는 걸 보고 디자이너랑 “우리가 한 글자 더 많네!” 농담하다가 아예 포스터 시안을 만들어버렸다.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지도고, 호감도는 그다음 문제니까 아예 대작들에 붙어서 가보기로 한 거다.

SNS에서 쉬지 않고 <족구왕>과 배우, 감독들의 소식을 전해온 건 역시 비용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작업이기 때문인가. (웃음)
진명현
: 작은 영화에는 그에 대한 에너지를 계속 유지하면서 정보를 쏘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관객 수에 대해서도, 보도자료를 보내면 특정 시점에야 화제가 되지만 배급을 담당하는 서윤희 대리까지 우리 셋은 영진위 통합전산망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계속 올렸다. 업무용 계정과 개인 계정을 번갈아 운영해 정보가 멈추지 않게 하려고 한 거다. 사실 개인 트위터 계정에서 계속 <족구왕> 홍보하다가 200명 정도에게 언팔로우당했다. (웃음) “너는 족구왕 봇이냐”는 욕 쪽지도 왔다. 그럼 그냥 “많이 사랑해주세요”라고 답장한다. <환상 속의 그대>나 <셔틀콕> 때도 그렇게 했다.

2008년, 씨네큐브를 운영하던 백두대간에서 마케팅 일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독립영화 관객층의 변화에 대해서도 체감했을 것 같다.
진명현
: 40대 이상 관객들은 외국 예술영화를 선호한다. 한국 독립영화계는 공동묘지라고 느낄 만큼 상황이 나빴던 상반기에도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이나 <그녀>는 크게 히트했고, 유명하지 않은 작품도 어렵지 않게 1만 명을 넘겼다. 내가 ‘씨네큐브 관객’이라고 칭하는 중장년 관객층의 주말 문화생활 패턴이 CGV 무비꼴라쥬까지 퍼지고 있는 것 같다. 반면 초강력 풀파워 에너지를 장착하고 거의 매일 한국 독립영화 GV에 다니며 실무자들보다 부지런히 SNS에 글을 올리는 젊은 관객들은 천 명이 채 안 된다. 좀 덜 열성적인 관객층은 그사이 많이 사라진 거다. 그런데 <족구왕>이 1만 명을 넘긴 다음에는 이들이 독립영화의 핵심 관객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전효과’라는 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도 놀랄 만큼 입소문의 힘이 컸다.

입소문이 퍼지는 플랫폼과 그 과정은 어땠나.
진명현
: 앞서 말한 핵심 관객들은 SNS에서 정보를 가장 빠르게 캐치해 한 번 더 뿌리면서 널리 퍼뜨린다. 하지만 트위터 같은 경우 20대, 특정 취향에 국한된 매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도 트위터로 바람은 잡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결정적 반응이 온 건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족구왕> 티저 예고편이 소개됐을 때였다. 독립영화 티저 조회 수는 보통 1만에서 3만 정도인데 <족구왕>은 10만이 넘었고 ‘저거 뭐야? 웃겨 보인다’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작품을 접했던 사람들이 블로깅을 하기 시작했다. 8월 초 열린 정동진영화제 관객 반응이 좋은 걸 보고 독립영화로서는 드물게 1,500석 규모의 일반 시사를 진행했는데, 난리가 났다. 관객들에겐 ‘너넨 아직 이거 모르지? 난 알아’ 하는 식으로 자랑하고 싶은 심리도 있었던 것 같다.

한정된 시간, 예산, 인원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분야의 일을 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을 텐데, 그럼에도 지금의 일이 특별한 즐거움을 주는 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임유청
: 모두들 바쁘게 살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취향이나 즐거움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통해 충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가지고 여가를 좀 더 즐겁게 보내고 싶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작업의 예산은 작지만 거기에 들이는 공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업계 최고의 실력자들과 함께 일하고 그 결과물을 볼 때 직업인으로서 즐거움을 느낀다.
진명현: 즐거움과 부담과 대의가 혼재된 상태다.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재미가 없으면 못 하는 사람이었지만, 만 7년째가 되니 즐거움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업계에 3년 차 이상이 드물 만큼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도, 우리 쪽 사람들은 남들에게 항상 힘들게만 보이는 것도 속상하다. 사실 처음에 GV 모더레이터를 하게 된 건, 직원이 맡으면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력이 쌓였고, 전에는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민망해서 손사래를 쳤지만 요즘은 이 분야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팔리면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들이 볼 때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만큼 이 분야에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올해 가장 바빴을 시기가 지나고 나면 앞으로, 혹은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뭔가.
진명현
: 휴가, 전화 한 통 안 걸려오고 와이파이도 안 터지는 해변에서의 휴가! (웃음) 아니, 사실 진짜 해보고 싶은 건 우리 배급작 라인업이 여러 해 동안 쌓였을 때쯤 상상마당 이름으로 영화제를 하는 거다. 극장과 배급 등 파트 간 콜라보레이션도 가능하고, 우리가 함께 작업한 배우와 감독들을 한 자리에서 소개해주며 서로 친하게 어울리게 하면 생일파티나 졸업무도회 같고 좋을 것 같다.
이민수: 지금은 홍대가 중심이지만 춘천이나 논산의 상상마당도 점점 자리를 잘 잡으면 좋겠고, 과거에 진행했던 영화 수입이나 제작 등 다양한 영화 사업의 비중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임유청: 대단한 단편영화제와 함께 작가들이 해외 영화제 출품용 포스터를 제작해주는 ‘대단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런 식의 콜라보레이션을 상시적으로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이를테면 그 작가분들과 함께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의 아트 포스터를 만들어 전시, 판매하는 기획은 예산과 여력이 된다면 꼭 해보고 싶다. 그리고… 허리 통증이 있으니 병원에도 가고 싶다. (웃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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