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 장보리>│① 막장 버전의 <대장금>이 탄생하다

2014.09.23

독주. 이제 더는 시청률 10%를 넘기기도 쉽지 않은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홀로 30% 이상을 기록 중인 MBC <왔다! 장보리>의 인기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좋은 표현은 없을 것 같다. 비교적 시청률을 확보하기 편한 주말 드라마라는 유리함이 있지만, 첫 방송 시청률 10%로 시작해 조금씩 조금씩 쉬지 않고 시청자를 유입하며 30%에 이른 저력은 분명 드라마 자체의 힘이다. 주연배우 오연서도 “마약 같은 드라마”라 칭한 이 드라마의 독주는 어떻게 가능했고, 또 무엇을 증명할까. <아이즈>의 이번 스페셜은 단순히 막장으로만 분류되는 이 드라마의 서사적 힘을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분석하고 인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연민정(이유리)의 악역으로서의 다양한 활약을 정리해, 종영을 앞둔 <왔다! 장보리>에 대한 좀 더 정확한 평가를 남기려 한다. 여기에 <왔다! 장보리> 출연진을 비롯해 유독 막장 드라마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배우들의 베스트 조합은 <왔다! 장보리>의 영광을 재현하고픈 창작자들에게 작은 힌트가 될지 모르겠다. 정말 많이 보고 정말 많이 이야기됐지만 제대로 이야기된 적은 없었던 특급 히트 드라마에 대한 <아이즈>의 최종 정리. What The 장보리.


왜 <왔다! 문지상>, 아니 <생부의 유혹>이 아닌 걸까. MBC <왔다! 장보리>에서 문지상(성혁)의 활약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주인공 장보리(오연서)를 비롯해 극 중 모든 인물들이 연민정(이유리)의 협박과 거짓말, 회유에 휘둘릴 때, 거의 유일하게 “연민정과 싸워도 내가 싸웁니다”라고 듬직하게 말하고 실제로 가장 확실하게 연민정을 위기로 모는 인물이라서만은 아니다. <왔다! 장보리>의 작가이자 첫 장편인 SBS <아내의 유혹>으로 단숨에 한국형 통속극, 소위 막장 드라마의 대표 주자로 떠오른 김순옥 작가의 특기는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의 귀환과 처절한 복수였다. 남편과 자신의 친구 때문에 죽음의 위기에 몰렸던 아내가 얼굴에 점을 찍고 돌아와 복수하는 <아내의 유혹>이 그러했고, 역시 아내에게 배신당해 모든 걸 잃었던 남자가 얼굴을 바꾸고 돌아와 복수하는 SBS <천사의 유혹>이 그러했다. 연민정과 결혼을 약속했지만 버림받고, 둘 사이의 딸인 비단(김지영)이 죽은 줄만 알았던 지상은, 김순옥 월드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하지만 드라마의 주인공은 복수의 화신보다는 명랑소녀에 가까운 장보리다. 그리고 이것은 시청률 30%를 넘기는 이 작품의 선전을 단순히 막장의 힘이라고만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사실 착하고 밝은 보리의 캐릭터는 이미 <왔다! 장보리>가 기존 김순옥 작가의 작품들이나 여타 막장 드라마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알리바이가 되어왔다. 김순옥 작가 본인은 어두운 현실에 대비되는 밝은 캐릭터의 힘을 강조했고, 주연배우 오연서 역시 보리를 통해 구현되는 코미디와 멜로를 강조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보리가 주인공이기에 만들어진 가장 유의미한 지점은 서사의 중심축이 복수가 아닌 주인공의 성장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보리는 사고로 기억과 부모를 잃고 민정의 음모 때문에 그 자리를 뺏겼지만, 진실을 밝혀내 한 번에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기보다는 바닥부터 차근차근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며 민정의 자리를 위협한다.


극의 막바지에 펼쳐지는 아웃도어 브랜드 디자인 경합을 비롯해, 작품의 중요한 고비마다 송옥수(양미경)와 김인화(김혜옥), 장보리와 연민정의 경합이 펼쳐지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극의 중심적인 대결 구도만을 본다면 <왔다! 장보리>는 연성화된 <아내의 유혹>보다는 차라리 MBC <대장금>의 통속극 버전에 가까워 보인다. 우연히도 <대장금>에서 장금(이영애)의 멘토 한상궁 역을 맡았던 양미경은 이번에도 보리에게 한복 기술을 전수해주고, 보리는 이를 바탕으로 형지패션에서 주최하는 한복 디자인 공모전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자신의 원래 자리인 비술채에 한 걸음씩 다가선다. 가난한 집 딸 출신인 인화와 민정은 세상을 불공평하다 여기고 자신들의 편법을 정당화한다. 만약 보리가 단순히 인화의 친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얻는다면 그들이 느끼는 억울함은 현실이 된다. 그래서 <대장금>을 연상케 하는 보리의 입지전적 스토리가 필요하다. 타고난 핏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공정한 경쟁이다. 아니 출생의 비밀이라는 전형적 코드를 가져왔음에도 오히려 핏줄에 대한 집착은 종종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가령 비교적 선량한 인물이고 보리를 아끼는 도혜옥(황영희)은 친딸인 민정의 행복을 위해 보리를 위기로 모는 데 동참하고, 친손녀인 비단을 위해 옥수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마다하지 않는다. 종종 속물적으로 그려지는 이재희(오창석)에 대한 이화연(금보라)의 차별적인 모정도 마찬가지다. 이 세계에서 진정한 선은, 공정하게 증명한 순수한 능력이다. 민정의 거의 모든 거짓말이 드러났음에도 마지막까지 디자인 경합으로 보리의 최종 승리를 준비하는 건 그 때문이다. 민정에게 복수하며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지상의 역할은 이 구도에서 주변부로 밀릴 수밖에 없다.

보리와 민정의 선악 구도가 뚜렷함에도, 그래서 <왔다! 장보리>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 작품에서 부딪히는 건 선과 악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경합으로 대표되는 능력 중심의 경쟁 논리가 한 축이라면, 공정한 경쟁을 막는 모든 불합리한 편법이 대결의 또 다른 한 축이다. 즉 한복 공모전 최종 심사자를 협박하는 민정의 악행이 문제인 건, 적어도 드라마 안에서는 협박이 부도덕한 행동이라서가 아니라 그 협박을 통해 불공정한 승리를 챙기기 때문이다. 보리와 민정의 성격적인 대비가 전통적인 선악 대립으로서 시청자의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낸다면, 이런 착한 보리가 성공에 대한 욕망에 눈먼 민정과 그런 민정에 휘둘리며 그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오직 정정당당한 실력행사로 이겨내는 과정은 아무리 혼탁한 세상이라도 능력 있는 사람은 결국 그것을 인정받는다는 판타지를 선사한다. 한복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전통적 가치와 자본주의 시대의 미덕 모두 보리를 통해 모순 없이 행복한 모습으로 구현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왔다! 장보리>의 진정한 판타지다. 물론 단순한 막장이 아니라는 것이, 시청률만큼 좋은 드라마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대의 시청자가 드라마를 통해 상상적으로나마 실현하고픈 욕망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좋은 리트머스일지는 모르겠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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