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신 “답이 보이는 삶은 싫다”

2014.09.23
스포츠에 있어 유망주가 만개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드물다. 올해부터 MBC SPORTS PLUS <베이스볼 투나잇>(이하 <베투>)의 메인 진행을 맡은 김선신 아나운서를 보는 프로야구 팬의 심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사실 시즌 초, 팬들의 시선은 <베투>를 이끌던 김민아 아나운서의 SBS Sports <베이스볼 S>로의 이적과, 해당 프로그램의 배지현 아나운서가 <베투>로 오는 과정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시즌 개막과 함께 벌어진 특급 에이스의 맞교환과 지각변동. 하지만 MBC SPORTS PLUS는 3년 차인 김선신 아나운서에게 <베투>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주중 3연전 리뷰를 맡겼고, 그는 선배들과는 또 다른 특유의 발랄하면서도 안정적인 진행으로 차세대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올 시즌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야구 여신’이라는 흔한 칭호보다는 그가 인간계에서 겪은 성장의 과정이 궁금했던 건 그래서다. 유망주의 만개가 즐거운 건, 재능을 갖는 것보다 재능을 꽃피우는 게 더 어렵기 때문이니까.

파트너인 김민아 아나운서의 이적을 비롯해 변화가 많은 2014년이었다.
김선신: 올해로 <베투> 3년 차가 됐는데, (김)민아 선배가 나가면서 이제는 회사에서의 위치도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밑에 후배들이 많이 들어오고, 주말 경기 대신 주중에 하는 저녁 경기들을 담당하면서 스케줄도 조금 더 빡빡해진 게 있고. 가령 올 시즌의 경우 새벽 1시 좀 넘어서 <베투> 생방송을 한 적도 있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5, 6월 즈음에 한창 늦게 끝나는 시합이 많았다. 두 자릿수 득점도 많았고. 아무래도 야구가 긴 시간 동안 기록하며 봐야 하는 스포츠라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 아침에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한 거 같아서 주로 건강식품이나 약으로 해결한다. 배즙, 양파즙, 이런 거. (웃음)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의 메인 진행자가 된다는 건 해당 스포츠 채널의 에이스가 된다는 것이기도 한데.
김선신
: 다행인 건, 우리 회사가 9년 연속 스포츠 채널 시청률 1위였다는 거다. 프로야구로 따지면 4연패를 바라보는 삼성 라이온즈 같은 팀이랄까. 우리 채널의 장점이라 할 요소가 많다. 가령 야구 중계에서 이닝이 끝날 때마다 그 이닝의 특징을 위트 있게 나타내는 자막을 내보낸다거나. 만약 내가 약체나 신생팀의 에이스였다면 혼자 완봉을 해서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배 PD와 캐스터 등 워낙 좋은 자원들이 풍부한 집단이기 때문에 꼭 완봉까진 안 하고 퀄리티 스타트(선발투수가 6이닝 동안 3실점 이하로 막아내는 것)만 해도 1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강팀의 에이스이기에 높은 기준치를 충족해야 하지 않나.
김선신
: 그렇기 때문에 민아 선배가 가고 나서 투입된 게 아니라, 전부터 주말 경기를 담당하며 2, 3선발 역할을 하며 키워졌던 거겠지. 2년 정도 현장 분위기와 <베투야> 제작 환경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지금의 역할이 아주 어렵진 않았다.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런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시켰다고 하더라.

스포츠로 따지면 유망주 육성 시스템인 건데.
김선신
: 강팀들의 경우 육성 시스템은 되게 비밀스럽게 얘기하던데. (웃음) 일단 우리 회사의 경우 신입 아나운서가 들어오면 우선 문 앞 신입 자리에 앉아서 선배건 손님이건 주차요원이건 누구든지 들어올 때마다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일종의 예절 교육인데, 여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되는 것 같다.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일을 해나가야 하는데 기본적인 예절과 인성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혼날 일이 있으면 선배들에게 꾸중도 듣고 하나하나 배워나가며 조금씩 다듬어지는 거겠지. 이런 과정을 통해 단단해져야만 어느 순간 혼자 바다에 들어가 헤엄을 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처음 바다에 나왔을 때 잘해야겠다는 것과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중 뭐가 더 중요했나.
김선신
: 꼬투리 잡힐 일은 하지 말자는 게 제일 중요했다. 처음 교육을 받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조심하라는 거였다. 말도 조심하고 옷도 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하고. 비록 우리가 스포츠 아나운서지만 어쨌든 그들의 직장에 외부인으로서 접근하는 거니까.

그에 반해 현장에서 야구 선수들에게 본인이 김태희 닮지 않았느냐고 하는 리포팅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선신
: 그건 스프링캠프니까 가능했던 콘셉트였다. 스프링캠프의 경우 어떤 팀이든 조금 경계심이 풀어진 시기고, 나 역시 선수들과 친해지는 게 목적이라 그렇게 했던 거다. 시즌에 야구장에 가서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선수들과 인사할 때도 조용조용 거의 고개만 숙이고 인사하는 정도다. 물론 친하게 지내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남자들이 대부분인 공간에 여자 혼자 들어가고 바라보는 시선 역시 많다면 누군가는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 그렇다면 그냥 어떤 오해의 빌미도 제공하지 말자는 생각이다.

그런 시선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더욱 해당 종목에 대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될 것 같다.
김선신
: 공부는 끝이 없다. 사실 1, 2년 차 때는 어떻게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룰을 잘 알게 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기록지도 열심히 작성하고. 그래서 이제 야구 좀 아는 것 같다, 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건 방송에서 쓸 일이 없는 거다. 경기가 끝난 뒤에 나가는 방송이니까 내가 아는 건 다들 알고 있는 거지. 오히려 중요한 건 아는 것이 아닌,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오늘 삼성이 큰 점수 차로 이겼다면, 왜 삼성은 강한가, 그들의 선수 육성 시스템의 어떤 부분이 뛰어난가, 이렇게 계속 이어지는 궁금증을 가지고 나보다 훨씬 많이 아는 해설위원분들에게 질문하는 거다.

하지만 내가 이만큼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망도 클 것 같은데.
김선신
: 그래서 지금보다 1, 2년 차 때 말이 더 많았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나에게 원샷이 오면 어떻게든 아는 척을 하고 싶은 거다. 왠지 사람들은 내가 이것들을 모른다고 생각할 것 같으니까. 그래서 실수를 되게 많이 했다. 나는 잠깐만 비추고 샷이 넘어가야 하는데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안 넘어가는 거다. 시간이 지난 뒤에 그때 방송을 모니터 하는데 너무너무 부끄러웠다. 저건 진짜 그냥 내 욕심이구나. 그런 꼴불견이 없다. 그래서 지금은 좀 변화를 주고 있다. 꼭 스포츠 아나운서뿐 아니라 여러 전문 진행자들, 가령 손석희 앵커 같은 분들의 방송을 많이 모니터하는데, 이분들의 경우 정말 임팩트 있는 한마디로 받아치면서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나도 리드 멘트는 굉장히 쉽게 하고, 좀 중구난방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때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려 한다.

그런 게 시간이 흘러 능숙해지는 점이라면, 본인만이 가진 재능은 무엇 같은가.
김선신
: 우선은 목소리? (웃음) 물론 처음에는 내가 얼마나 하이톤인지 자각하지 못하고 진행하다가 시청자들에게 지적도 많이 당하고 어느 정도 적당히 조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밤에 하는 프로그램이라 시청자도 좀 졸릴 텐데 그럴 때 어떤 애가 나와서 되게 방방 뜨는 목소리로 활달하게 진행하면 재밌지 않을까. 그리고 타고난 건 아니지만 웬만한 친구들보다 강해진 멘탈도 이 일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장점 같다. 그래야 현장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고. 이번에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갔을 때도 그런 면 때문에 나름 재밌는 영상을 따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선배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해주고.

다른 아나운서들에 비해 단신인 편인데 덩치 큰 남자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 때는 없나.
김선신
: 원래는 그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이조차 나를 차별화할 수 있는 전략이 된 거 같다. 또래에 비해 키가 작기 때문에 어려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물론 나 같은 체구의 사람이 섹시하거나 성숙해 보이긴 어렵다. 대신 좀 더 귀여워 보이고 아담해 보일 수는 있겠지.

소위 야구 여신들과 본인을 비교하진 않는 건가.
김선신
: 나 스스로는 안 한다. 1, 2년 차 땐 나도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러면 정말 피곤해진다. 타 방송사 모니터를 하면서 왜 나는 저렇게 말을 매끄럽게 못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끝이 없다. 나중에는 외모도 비교하고, 의상도 저기가 더 예쁜 거 같은데, 이러고.

근래 몇 년 동안 야구 하이라이트 메인 진행자는 준 연예인으로 소비되는 게 있으니까.
김선신
: 그건 정말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부터 선배들이 많이 말씀해주신 부분이다. 뭐가 됐든 네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언론이 너희를 어떻게 비추던 너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네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고. 그런 면에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명확하기 때문에 오히려 남들이 뭐라 하든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여신이라 하든, 준 연예인으로 소비되든. 남들이 뭐라 하든 내 길을 간다는 느낌이다.

그러려면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할 텐데.
김선신
: 초등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이 직업을 선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내 인생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을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도 하고 많은 사람도 만났다. 내가 스포츠 아나운서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메이저리그 구단의 라커룸에 가서 선수들을 만나봤겠나.


교사를 하다가 아나운서가 됐지만, 이미 교대 시절부터 아나운서를 꿈꿨다고 들었다.
김선신
: 교대를 다니면서 공부하고 교생 실습도 나가면서 내가 좋아하고 또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으로서 손색이 없었지. 그런데 문득 3학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사를 하면 40~50년 정도 교사를 하겠지? 내 인생의 자서전을 쓴다면 김선신은 태어나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다, 여기서 끝일 거 같은 거다. 물론 교사를 하고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내 인생이 변화 없이 갈 거라는 게 갑자기 무서워졌다. 렇다면 인생을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혹시 나이 때문에 도전이라는 것을 포기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릴 때 이런저런 갖고 싶은 직업을 생각할 땐 아나운서도 포함됐었다. 하지만 경쟁률도 높으니 그냥 쉽게 포기하고 내 인생의 갈래 중 아예 배제하고 있었는데, 더 늦기 전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내가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두 가지다. 제일 좋아하는 것, 그리고 잘할 수 있는 것. 이때 후자에 대해서는 좀 더 냉정하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나 역시 그랬고.

좀 더 다이내믹한 삶을 원했다면 좋은 선택이긴 하지만, 분명 그만큼의 위험 부담도 있지 않나. 여자 아나운서로서의 수명이라거나.
김선신
: 우선 나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 답이 보이는 삶은 싫다. 가끔 1년 뒤에 뭘 하고 있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받는데, 그땐 나도 모르겠다고 한다. 오늘까지 정말 최선을 다해 살다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않나. 그렇다고 지금 내 일을 충실하게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지금 주어진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 점이 찍히면서 선이 되고 그 선이 이어져서 미래가 되겠지. 그걸 내가 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다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스포츠 아나운서이니 이 점에서 연결되어 나가겠지.

MBC every1 <김선신의 카니발원더>을 진행했었는데, 그런 식으로의 확장도 가능할까.
김선신
: 그럴 수도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언론이나 방송계로의 확장보다는 오히려 스포츠 쪽으로 영역을 넓혀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스포츠 마케팅이나 스포츠 심리학 같은. 지금으로서는 스포츠 자체가 너무 좋으니까. 가령 운동선수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스포츠 심리학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거지. 그러다 또 다른 일로 확장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이 일을 하며 꼭 경험해보고 싶은 순간이 있나.
김선신
: 그런 생각을 한다. 고 최동원 감독님과 선동열 감독님의 그 전설적인 투수 대결을 직접 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자료 화면으로만 봐야 하지 않나. 그런 역사적인 순간을 현장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가령 지난 2013년을 떠올리면, LG 트윈스 팬들이 11년 만에 유광점퍼를 입고 벅차게 응원하는 모습을 잠실구장에서 볼 때 말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꼈다. 그렇게 스토리텔링이 있는 순간들을 경험해보고 싶다. 지금으로서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우승하는 현장?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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