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커│② “‘11’은 내 취미이자 돌파구이자 꿈”

2014.09.22
작곡가 히치하이커는 과거 지누라는 이름으로 솔로와 그룹 롤러코스터로 활동했다. 몇 년 전 만든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가 큰 화제를 모은 뒤로는 여러 아이돌가수들의 곡을 만들기도 했고, 특히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 소속의 여러 가수들에게 곡을 주며 주목을 받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곡 작업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거나 맥주를 조금씩 마시는 정도로 스트레스를 푼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보다 개인적인 작업을 해보자는 마음에 자신의 아이 목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음악을 만들고, 평소 관심 있던 3D 애니메이션 작업을 활용해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11’은 반복적인 일상을 살게 된 뮤지션이 가상의 슈퍼스타를 상상하며 만든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뮤직비디오가 SM의 유튜브 공식채널에 올라가면서 ‘11’에는 별별 해석이 붙기 시작했고, 한 편에서는 세계적인 DJ 스크릴렉스와 디플로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저 아이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것이 좋았던 히치하이커는 지금 무슨 기분일까.


원래 아이 목소리를 녹음해서 만든 곡에 별별 해석이 다 붙고 있다. (웃음)
히치하이커
: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11’은 아이와 장난치다 아이 목소리가 재밌어서 아이폰으로 녹음해 틀어봤더니 거기서 나오는 소리의 질감이 너무 재밌어서 만든 곡이었다. 자기 목소리가 음악이 된다는 걸 교육시킬 수 있겠다 싶어서 만들기도 했고. 곡의 BPM이 93이다.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생각한 게 아니라 순전히 아이의 목소리에 비트를 맞춘 거라 템포도 어느 댄스 장르에도 안 속한다.

그런데 뮤직비디오는 아이와 아무 상관없는 내용이라 사람들이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정체 모를 캐릭터가 막 돌아다니니까. (웃음)
히치하이커
: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버스 번호판 숫자를 모두 더하면 무슨 의미가 있다는 해석을 하는 분도 있더라. 사실 그 버스들은 다 우리 동네에 있는 거다. 배경도 다 우리 동네고. 광진구 일대. (웃음) 그냥 카메라 한 대 들고 버스타고 다니다 재밌는데 있으면 내려서 찍었다. 그래서 이런 반응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약 빨고 만들었다’는 사람도 있고 이게 SM 유튜브 공식 채널에 올라가니까 SM이 해킹 당했다는 (웃음) 사람도 있었고. 사실 뮤직비디오 발표 전에 19금 판정도 받아서 이미 당황스럽긴 했다.

대체 왜?
히치하이커
: 선정성과 폭력이 이유였다. 뮤직비디오에 CG로 여자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뮤직비디오 속 히치하이커가 그런 것처럼 특정 재질로 된 옷을 전신에 입고 있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특정 부위가 보이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몸의 굴곡이 드러난다는 이유로 그걸 누드라고 판단한 거다. 또 히치하이커는 보다시피 입이 없다. 그래서 녹음된 아이 목소리를 그 캐릭터가 부를 수 없으니까, 다른 사람의 목을 팔로 끌어안고 입을 두드리면서 소리가 나게 했다. 나는 그게 웃음의 포인트고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폭력적이라고 심의에 걸렸다. 고서 심의를 받았고, 원래 버전도 아이튠즈나 유튜브의 다른 채널들을 통해서 공개하긴 할 거다.

이런 뮤직비디오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
히치하이커
: 손 가는대로 했다. 첫 작품이라 그런 걸 계산할 만큼 노련하지도 않고. 원래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많아서 <아이언맨> 같은 영화를 봐도 특수효과만 본다. CG를 어떻게 했는지, 어떤 소프트웨어가 사용됐는지 찾아보는 게 취미다. 그래서 단편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들어보기도 했고. 그러다 최근에는 개인용 컴퓨터로 혼자 CG를 써서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구나 싶어서 도전했다.

캐릭터가 복제되면서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내는 것도 즉흥적인 결과물인가.
히치하이커
: 나는 3D 영상에 대해 아마추어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가 있으면 기능을 다 써본다. 캐릭터가 늘어나는 것도 영상 만드는 소프트웨어 플러그인 중에 이펙터가 있어서 써봤다. 그리고 음악이 변하는 부분이 있으면 아 이런 게 잘 맞네 하고 준비한 것들을 시도해 보고. 전문가는 오히려 안하는 거니까 기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마 그런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11’의 뮤직비디오는 안 나왔을 거다. 테크놀로지는 예술을 표현하는데 있어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퀸의 ‘Bohemian Rhapsody’의 “맘마미아~” 하는 부분도 처음부터 그렇게 목소리를 여러 번 녹음해서 하려고 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 그 당시에 처음으로 그렇게 목소리를 여러 번 녹음해서 입힐 수 있는 기술이 나왔는데, 그게 신기해서 녹음하다 보니까 그런 영감이 나왔다고 한다. 


꼭 발명가 같다.
히치하이커
: 어렸을 때 꿈이 발명가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직접 발사되는 총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총알은 쿠킹 호일을 동그랗게 말고, 개머리판은 방 쓰는 빗자루를 거꾸로 해서 붙였다. 그래서 쏴보니까 맥주캔이 뚫리고. (웃음) 그 때부터 기계로 뭘 만드는 게 취미다. 요즘에는 3D 프린터를 만들어보고 있다.

와.
히치하이커
: 그냥 즉흥적으로 만든다. 원래 그런 걸 만들 때는 설계도를 부품 치수까지 정확하게 그려야 하는데 대충 계산하고 일단 나간다. 그래서 구로나 청계천으로 가서 베어링 같은 부품 있으면 만져보고 그냥 산다. 사서 맞춰보고 사이즈가 안 맞으면 직접 기계로 깎아서 맞추고. 공대 갔어야 했는데. (웃음)

‘11’은 직업과 취미, 감성과 기술의 결합이었던 건가. (웃음)
히치하이커
: 나이 들어 기력 없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오기 전에 반드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뭔가 홀린 것처럼 이번 작업을 했다. 다른 가수들의 곡 작업도 많이 해야 하는데 그것도 다 미루고 5~6개월은 이거에만 매달렸다. 시작에서 끝까지는 2년 정도 걸렸고. 막판에는 계속 앉아서 음악과 뮤직비디오 작업을 번갈아 하다가 허벅지가 보라색이 됐다. 계속 앉아 있다 보니까 혈관 어딘가가 막힌 거다.

왜 그렇게까지 매달린 건가.
히치하이커
: 4~5년 정도 개인적인 작품 활동을 전혀 안 하고 작곡가로만 활동했다. 다른 가수에게 주는 곡은 내가 만든 곡이어도 많은 사람의 의견이 들어가고 수정 작업을 거친다. 그러면 내 의도보다 더 잘 나올 때도 있고 못 나올 때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처음 의도와는 다르다. 전처럼 마음대로 하는 게 그리워졌다.

솔로나 롤러코스터 활동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도 여전히 아쉬움이 있나 보다.
히치하이커
: 이런 일도 있었다. 뮤직비디오에 쓴 배경이 촬영 장소도 날짜도 다 달라서 빛의 양이 다른데 이러면 안 되는 건가 싶어서 CF 편집으로 유명한 분을 찾아갔다. 16년 동안 하신 분인데, 영상을 보더니 아무 말이 없다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고 했다. 자기는 영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들어왔는데 당장의 일거리를 하느라 내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고. 그런데 음악 하는 사람이 몇 년 동안 만들었으니 봐달라고 하는 걸 보고 반성하게 됐다고. 그런 거 아닐까. 취미이자 돌파구이자 꿈.

이 경험이 다시 SM 같은 회사와 작업할 때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겠다.
히치하이커
: 예전 같지는 않을 거 같다. ‘11’ 같은 작업에서 못 벗어나거나 뭔가 뻥 뚫려서 더 좋은 게 나오거나. 이런 개인적인 작업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신 기댈 곳이 없어서 스트레스가 생기기도 하고. 한 쪽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다른 한 쪽에서 푸는 거다.

그래서 ‘11’이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간 건 아닌가. 트랩 같은 장르에서 쓰이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킥 드럼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넓게 퍼지게 녹음하는 건 흔치 않은 것 같다.
히치하이커
: 일반적인 믹싱이나 마스터링은 프로 엔지니어가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면 어느 정도 기준이 있다.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방송 나갈 때 너무 과하니까 줄인다거나. 그런데 이 곡은 내가 마스터링을 해서 그런 기준을 생략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이어폰으로 들었을 때 소리가 찌그러진다고 해도 증폭시킬 걸 증폭했다.

좋은 비트에 대한 기준이 있나. 
히치하이커
: 현대 음악의 큰 부분이 댄스 뮤직이고, 댄스 뮤직에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게 사운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게 킥이나 스내어다. 그걸 잘 만드는 게 너무 어려워서 데이비드 게타 같은 DJ는 좋은 킥을 만들면 그 킥을 모든 곡에 쓰라고 할 정도다. 그리고 여백이 많은 비트가 좋다고 생각한다. 하우스의 BPM이 127 정도라고 생각하면 기본적인 킥 위에 여러 소리가 쌓일 때가 많은데, 그러면 리듬이 멈춰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 때 다 빼면 오히려 춤추고 싶은 리듬이 된다. 그래서 공연을 가거나 클럽에 가서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게 필요하다. 앉아서 듣기만 하면 감이 안 생긴다.


이런 음악을 만들다 3~4분의 댄스 음악 안에 자기 스타일을 조화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나.
히치하이
: 많이 힘들지. 제일 힘든 건 멜로디인데 좋은 멜로디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계를 벗어나려면 새로 태어나거나 충격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고. 다행인 건 협업이 가능해서 내 생각보다 훨씬 좋은 멜로디가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SM은 내게 그리 대중적인 걸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희한한 걸 만들어달라고도 한다. 어떤 곡이든 독특하면 그걸 대중에게 잘 소개하겠다는 태도다. 그래서 고맙기도 하고.

영감은 어디서 얻나.
히치하이커
: 20년 이상 작업하다 보니까 웬만한 악기 소리에는 감흥이 없다. 오히려 자연의 소리에서 영감을 얻는다. 집이든 건물이든 새로 방문한 곳이면 벽을 두들겨서 어떤 소리가 나나 들어보기도 한다. 점점 소리의 질감 자체에 신경 쓰게 된다. 그리고 특별한 이유 없이 내 마음이 끌리면 그 음악을 하게 된다. 내가 신나고 행복하면 하고 싶은데, 요즘에는 음악을 만들기만 했지 듣는 일이 별로 없었다. 유일한 인풋이 아이하고 함께 보는 애니메이션 정도다.

아이를 키우고 정해진 시간 내에 곡을 만드는 일상 속에서 영감을 유지하는 게 쉽진 않겠다.
히치하이커
: 멜로디가 떠오르면 녹음하는 이유가 그걸 까먹지 않기 위해서다. 좋은 게 떠올랐는데 녹음을 못하면 바로 녹음하려고 내려가다가도 이웃 사람 만나서 인사하다 “어 뭐였지?” 이럴 수도 있어서. (웃음) 그리고 ‘11’처럼 아이 자체가 영감이 되기도 한다. 토와 테이라는 일본 뮤지션을 좋아하는데, 딸을 얻고서 곡에 아이 목소리를 넣었다. 나는 그 때 결혼 전이어서 이건 자기만 좋은 걸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나도 아이를 낳게 되니까 이 목소리가 너무 사랑스러워졌고, 항상 이 목소리로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 목소리를 녹음하고 아내가 가사를 써준 곡이 마음대로 해석되고, 전 세계 DJ들이 호응하게 됐다.
히치하이커
: 이런 음악을 듣지 않은 분들이라면 이게 음악이냐고 하는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웃음) 제대로 된 가사도 없으니까. 이 기회에 이런 음악도 들어보신다면 기쁘다. 한 편으로는 SM에 미안하기도 했다. SM과 전속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11’은 홍보 계약 없이 유통 계약만 했다. 그런데도 직원들이 홍보를 해주시고, 오피셜 채널에 뮤직비디오를 올려줬다. 혼자 만든 제품을 큰 백화점에 놔둔 거나 다름없는데,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반응이 왔으니까. 다행히 해외 바이어들이라고 할 수 있는 DJ들이 작업을 제안하기도 해서 기뻤다. 내가 좋아하는 스크릴렉스와 디플로가 좋다고 하니까 망치로 뻥뻥 맞는 기분이기도 했고.

뮤지션으로서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
히치하이커
: 뭔가 계획하고 한 게 아니어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SM이든 어디든 작곡가로 계속 작업하는 게 일일 거다. ‘11’ 이후로 DJ나 프로듀서로 활동할 수 있게 되면 그것도 재미있을 거 같고. 가장 이상적인 건 ‘11’ 같은 곡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도 나오고, 그런 스타일을 더 많은 사람이 즐기고 만들면 좋겠다. 나 혼자 ‘11’ 같은 걸 만들면 너무 힘들다. (웃음) 여러 사람들과 같이 새로운 곡들을 탄생시키고 싶다.

사진제공. 히치하이커 (<아이즈>를 위해 직접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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