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아시안게임 개회식인가 한류 콘서트인가

2014.09.22

인천아시안경기대회 개회식을 봤다. 세 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버티고 나니 머릿속에 익숙한 멜로디가 맴돌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허망하고 화가 났다. 아시아의 평화와 화합을 도모한다는 목표로 개최한 아시안경기대회의 서막이 장동건으로 시작해 싸이로 끝나다니, 이것은 아시안경기대회 개회식인가 아니면 한류 콘서트인가.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존재론적 질문으로 번져가는 물음표를 그냥 둘 수 없어 개회식 다시보기 버튼을 클릭했다. 어금니 꽉 깨물고 개회식을 다시 보는 와중에 “개·폐회식을 통해 자국을 자랑하는 세태로부터 평화롭고 정이 흐르는 대회를 치를 수 있도록 차별화하고자 했다”는 임권택 감독의 소회가 들려왔다. 이게 자국을 자랑하는 세태가 아니었던 건가. 비겁한 변명이었다.

임권택 총감독과 장진 총연출, 인천아시안경기대회 개·폐회식을 연출할 두 명의 수장이 공표되는 순간부터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감독과 연출이란 타이틀을 나눠 가진 두 ‘감독’이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할지, 두 감독 ‘연출’ 스타일의 접점이 가능한지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진 감독은 말(言)에 능한 연출이다. 장진의 힘은 말을 지어내고 말을 가지고 노는 과정에서 터진다. 한 방의 어퍼컷이 아니라 잦은 잽을 날림으로써 메달 획득이 가능한 선수란 말이다. 하지만 아시안경기대회 개회식은 잦은 잽으로 감당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아시아 45개국이 수긍할 수 있는 만국 공통의 상징이자 메시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이번 인천아시안경기대회 개회식엔 어떠한 상징도 메시지도 없었다. 공식 홈페이지엔 개회식 테마가 ‘아시아의 미래를 만나다’라고 나와 있지만 도무지 수긍할 수 없었다. 


시작부터 장동건이었다. 그가 ‘아주 오래 전 아시아 모두가 가족이고 친구’였음을 자상히 가르쳐주고, ‘오늘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굴렁쇠 소녀를 인도했다. 원조 한류 스타 장동건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신흥 한류 스타 김수현이 배를 타고 아시아 45개국을 방문하는 영상에 이어 서해 어드메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과 미추홀에 도읍을 정한 비류 왕자가 등장하며, 둘이 손 붙잡기가 무섭게 인천의 통신과 교통의 역사를 상징하는 매스게임이 이어졌다. 현빈은 태극기 기수로 나섰고 이영애는 성화의 최종 점화자로 등장했다. 개회식 전에 허망하게 공개된 이영애의 등장에 MBC 김정근 아나운서는 “예상하고 있었는데 진짜 보니까 반갑네요”라고 했지만 설마 하고 있다가 진짜 보니까 무서웠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시즌마다 찍어내는 CF와 면세점을 도배하고 있는 한류 스타 화보가 오버랩 된 탓이다. 45개국을 두루 거친 김수현이 배 타고 직접 무대 정중앙에 등장하고, 장동건이 굴렁쇠 소녀를 데리고 그 배에 올라타 신사의 미소와 함께 양손을 흔드는 것에서 한류 스타를 보는 것 외에 어떤 메시지나 예술적 성취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개회식 끝을 향할 즈음엔 몹시 삐뚤어져버렸다. 4년 만에 공중파에 등장한 JYJ가 반갑기도 전에 그들의 노래를, 그것도 공식 주제가를 이영애 성화 점화의 BGM으로 연출함에 짜증이 났다. 게다가 하루 종일 한류 노래를 부르더니 싸이는 왜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과 협연했을까. 사람들은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개회식에 출연한 걸 알기는 할까. 조수미가 부른 고은의 시 ‘아시아드의 노래’나 정성화, 양준모, 마이클 리, 차지연, 옥주현이 부른 ‘만나면’을 얼마나 기억할까. 싸이와 함께 말춤을 춘 아시아 45개국 선수들은 개회식에서 ‘아시아의 미래’를 보았을까. 물음표를 없애려 다시보기에 도전했는데 없어지기는커녕 더 늘어나기만 했다. 게다가 공식 홈페이지에 나온 폐회식 개요까지 보고 말았다. ‘아시아는 인천을 기억할 것입니다’를 테마로 씨스타, 씨엔블루, 빅뱅이 출동한단다. 폐회식이 열리는 10월 4일은 인천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으로 가리라 다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엔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줄 뭔가가 있으리란 간절함으로.

이유진(칼럼니스트)
영화부터 공연까지 십 년 넘게 명함을 스무 개 정도 만들며 직업과 나이가 불명확한 삶을 버티는 중. 뭘 하든 간에 매일이 마감인 건 함정. ‘이번 생엔 망했어’와 ‘삐뚤어질테다’를 입에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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