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채널을 틀면 훈남들이 기다린다

2014.09.05
TV에서 다큐멘터리 채널이란 일종의 황무지라 할 수 있다. 케이블 채널 번호 배정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 같은 다큐멘터리 채널은 거의 대부분 NHK나 CNN보다 먼 저 끄트머리에 붙어 있다. <코스모스> 정도 되는 화제작이 아니라면, 아무 생각 없이 채널을 한 바퀴 돌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멀고 먼 영역의 프로그램을 보게 될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당신이 다큐는 아버지나 보는 고루한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방치한 사이 2014년 라이프스타일 전문 논픽션 채널로 런칭한 냇지오 피플 채널에서는 유독 매력적인 남성 호스트들이 활보 중이다. 특히 요리 프로그램의 호스트들은 전성기의 제이미 올리버나 고든 램지를 대체할 만큼 서로 다른 개성과 매력을 뽐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각기 다른 취향의 시청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애정의 대상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즈>에서는 아직 국내에서는 팬덤이 형성되지 않은, 아니 형성될 수 없었던 다큐 채널이라는 음지의 훈남들을 발굴해 소개한다. 아직 경쟁자들의 손때가 묻지 않은 ‘덕질’의 블루오션이 여기에 있다.


귀여움으로 빚은 가장 완벽한 손자
< Grandma's Boy >의 도널 스케한(Donal Skehan)

The Perfect Grandson. 냇지오 피플 공식 홈페이지에서 < Grandma's Boy >의 호스트인 도널 스케한을 소개하는 문구다. 풍경 좋은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을 찾아가 각 마을의 대표 손맛을 지닌 할머니들에게 비밀 레시피를 전수받는 < Grandma's Boy >에서 처진 초승달 눈으로 연신 싱글벙글 눈웃음을 지으며 할머니들에게 볼 뽀뽀를 하고, 자신도 보답으로 요리를 대접하는 이 아일랜드 출신 청년을 보노라면 이 문구는 결코 과하지 않다. 2006년 스트리트와이즈라는 글로벌 보이그룹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렸다는 이력만 보면 그저 잘생긴 얼굴과 애교를 무기로 쇼의 호스트가 된 것 같지만, 2007년 개설한 요리 블로그 내용을 책으로 옮긴 < Good Mood Food >는 자국 내에서 큰 반향을 이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집에서 간단히 시도할 수 있는 요리를 선보이는 TV쇼 < Kitchen Hero >를 진행하기도 했다. ‘제이미 올리버에 대한 아일랜드의 대답’이라는 별명처럼 그 역시 구하기 쉬운 재료(유럽 기준)를 창의적으로 조합해 빠르게 요리하는 스타일인데, < Grandma's Boy >에서도 송어와 호박, 염소젖 치즈 등 그 지역에서 난 재료를 채집해 요리를 만든다. 항상 요리를 할 땐 말과 손이 빨라지고 자신감이 넘치지만 그 집 할머니가 시식할 때마다 조마조마한 눈으로 ‘제발, 맛있다고 해줘’라는 의미의 레이저를 쏘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에는 ‘귀요미’. 특히 채집한 식용 달팽이에게 “굿바이 프랭크,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아름다웠어”라 말하는 장면은 그가 할머니들의 마음만을 공략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풍성한 어휘의 수다쟁이 미식 탐정
< Top Tables Top Cities >의 이샤이 골란(Ishai Golan)

만화 <미스터 초밥왕> 이후, 맛집 리포터들은 맛있는 음식에 대한 피드백을 위해 온갖 과장과 비유, 미사여구를 동원하게 됐다. 하지만 종종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에 처하고는 하는데, 그런 면에서 < Top Tables Top Cities > 진행자 이샤이 골란의 기발한 표현과 활기찬 수다는 맛집 리포터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세계적인 도시에 찾아가 그 도시를 대표하는 식당의 음식을 맛보고 10점 만점으로 평가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이샤이는 영화배우 출신답게 깊게 팬 주름살로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기분을 최대한 극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미스터 초밥왕>이나 <신의 물방울> 같은 요리 만화의 그것 같은 레토릭은 때론 참신하고 때론 엉뚱한데, 리스본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으며 “포르투갈의 바다로 뛰어든 기분”이라고 하거나 생김새와 식감이 전혀 다른 올리브 요리를 먹으며 “뇌 속에서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는 느낌”이라는 식이다. 자칫 서로 민망해질 수도 있는 표현이지만 과거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의 < Street Food Around The World >에서 세계 곳곳의 커다란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길거리 음식을 소개했을 때와 같은 이샤이 특유의 호들갑에 식당 주인도 시청자도 함께 전염되어버린다. 다만 이처럼 통통 튀는 그가 식사 예법이 자유롭다며 10점 만점에 9.3을 준 도시가 서울이란 걸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야생을 요리하는 상남자 모험가
< Tales From The Bush Larder >의 키런 제쓰와(Kiran Jethwa)

고든 램지와 레이먼 킴이 남자 요리사로서 이룬 가장 큰 성취는 어쩌면 요리의 섬세함과 남자다움이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일지 모른다. < Tales From The Bush Larder >에서 케냐의 정글을 누비며 요리 재료를 구하고 원주민들과 야생 체험을 즐기는 키런 제쓰와 역시 이런 상남자 타입의 요리사다. 그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나이로비는 문명과 야생이 맞닿은 독특한 도시인데, < Tales From The Bush Larder >는 키런이 이 경계를 넘어 야생 속에서 레스토랑의 그것에 못지않게 맛있는 요리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Grandma's Boy >의 도널 스케한이 신선한 농작물을 따오는 수준이라면, 키런은 원주민들과 함께 사냥에 참여하거나 스노클링으로 해산물을 잡거나 나무에 올라 야생의 열매를 따오는 훨씬 터프하고 육체적인 작업을 하는데, 영국인 어머니와 인디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혈통 때문인지 셰프 복장으로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지휘하는 모습도, 정글에서 칼로 열매를 베어 먹는 모습도 모두 잘 어울린다. 심지어 수준급의 럭비 선수라고까지 하니 축구 선수 출신인 고든 램지와 언젠가 짐승남 셰프 대결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탈리아의 햇살을 비추는 낭만 대머리
< David Rocco's Dolce Vita >의 데이비드 로코(David Rocco)

왜 동양인과 달리 서양인 중에서는 섹시한 혹은 미남형인 대머리가 나올 수 있는 걸까. 한국어로 번역하면 ‘데이비드 로코의 달콤한 인생’ 정도가 될 < David Rocco's Dolce Vita >의 데이비드 로코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2004년 첫 방영 후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이 프로그램에서 데이비드 로코는 그의 부인 니나와 함께 피렌체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보내는 금실 좋은 나날 및 그 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꾸며주는 이탈리아 요리 레시피를 소개한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지만 이탈리아인 가정에서 자라며 요리를 배워 훌륭한 요리 솜씨와 이탈리아 남자 특유의 로맨틱한 정서까지 갖추게 된 이 남자는 자신의 장점을 이 쇼 안에서 마음껏 뽐낸다. 어떤 정형화된 틀 없이 로코 부부가 시칠리아의 산비토로카포 해변을 거닐다가 야외에서 홍합 요리를 하거나, 와인용 포도 농장의 수확을 도와주고 받은 포도로 포카치아를 굽는 모습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여주며 제목 그대로 그들이 누리는 ‘달콤한 인생’에 대한 동경과 이탈리아에 대한 로망을 한껏 자극한다. 물론 여기엔 최종 레시피로 이탈리아 남자에 대한 로망이 추가되어야 하는데, 명백한 M자형 탈모가 진행되고 최근작인 < David Rocco's Dolce India >에선 아예 삭발을 했음에도 흔치 않은 미남형 대머리인 로코의 다정한 눈빛은 이 따뜻한 쇼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존재가 한국의 탈모인들에게까지 희망을 주기는 어렵겠지만.

사진제공. 냇지오 피플│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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