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생활툰에 관한 오해와 진실

2014.09.04
만화에 등장한 지인이 상처를 받아 화를 내기도 한다. 만화에 등장한 지인이 상처를 받아 화를 내기도 한다. 만화에 등장한 지인이 상처를 받아 화를 내기도 한다. 만화에 등장한 지인이 상처를 받아 화를 내기도 한다. 만화에 등장한 지인이 상처를 받아 화를 내기도 한다. <루드비코의 만화 일기> 중

바로 지난주에 라디오를 끝내며 느낀 회한을 정리해 놓고 이런 말 하긴 조금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겠다. 라디오가 끝나면서 조금은, 아주 조금은 다행스러웠던 구석도 있다. 바로 오프닝 원고를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몇 줄 안 되는 오프닝인데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같이 반년을 쓰려면 솔직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마치 웹툰에서 탄생해 찬란한 꽃을 피웠지만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생활툰 장르처럼 말이다.

생활툰, 혹은 일상툰은 웹툰이라는 매체에서 가장 많이 발달한 형식의 만화다. 일상의 소소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 본인이나 그에 해당하는 캐릭터가 공감, 개그, 소소한 깨달음 등을 풀어내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그림도 긴 호흡의 스토리 극화보다는 귀엽거나 단순한 스타일인 경우가 많고 소재 역시 일상 속의 경험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몇몇 독자들이나 혹은 (믿기지 않지만) 극화를 연재하기 시작한 신인 후배 작가들 사이에서는 ‘생활툰은 쉽다’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 언제였던가 술자리에서 한 신인 작가님의 ‘연재 힘들어 죽겠어요, 다음번엔 쉽게 생활툰이나 그리고 싶어요’라는 대사를 듣고 기절초풍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생활툰을 쉽게 생각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그냥 일상 속에서 소재를 주워오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구상이라는 농사가 아니라 땅에 떨어져 있는 열매를 줍는 채집에 가깝다는 생각일까. 특정한 포인트를 잡아내어 섬세하게 구성을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냥 일기 쓰듯 쉽게 만드는 만화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기 일기를 매주 써서 누군가에게 보여줘 보길 바란다. 단언컨대 재미있게 읽힐 리가 없다. 만에 하나 재미있게 읽혔더라도 몇 번이나 반복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쉽지 않다.

극화 스토리의 소재나 플롯이 광각렌즈, 혹은 망원렌즈로 잡아내는 큰 스케일의 이미지라고 가정한다면 생활툰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는 대물렌즈를 통해 생활의 단면을 표본 채집하여 보여주는 일에 가깝다. 그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며 늘 깨어있어야만 하는 고통의 나날이다. <생활의 참견>을 연재하는 (김)양수 형님의 경우 내가 SNS에 뭔가 재미있었던 일을 쓰면 쪽지를 보낸다. “야! 그런 일은 SNS에 올리지 말고 형한테 문자로 보내줬어야지!” 이런 형님들을 만나면 인사보다 소재를 먼저 물을 정도다. <루드비코의 만화-일기>를 연재한 루드비코 작가 역시 ‘극화가 신체적인 고통이라면 생활툰은 장시간 이어지는 정신적인 고통의 향연’이라고 했다. 소재를 잡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늘 깨어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으며 심지어 있는 그대로 쓸 수도 없다.

생활툰 작가들의 애환은 그 뿐이 아니다. <셋이서 쑥>을 그린 (주)호민이 형이나 앞서 말한 루드비코 작가는 ‘생활툰의 경우 실제 존재하는 자신의 주변인을 그리기 때문에 상당히 민감한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악플이 주렁주렁 달리기도 하고 만화에 등장한 지인이 상처를 받아 화를 내기도 한다. 네이버에서 연재중인 <미쳐 날뛰는 생활툰>은 그런 면면을 날카롭게 묘사하는 멋진 생활-극화 하이브리드 웹툰이다.

과거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생활툰에 접근한 작가들이 성공적으로 데뷔하기도 했지만 최근 10년 동안 생활툰이라는 장르 역시 눈부시게 발전했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이제는 초기의 반전 개그와 드립에만 의존했던 방식으로는 독자를 사로잡기 힘들다. <신과 함께>의 호민이 형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과거 생활툰은 희로애락 중에서 ‘희’와 ‘락’만을 그렸다. 생활툰에는 늘 즐겁고 밝은 에피소드만 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즉 이제는 소재주의에만 빠져있는 생활툰은 살아남기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소재는 결국 반복되고 새로운 소재는 드물어졌다. 지금은 그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시선과 태도가 생활툰의 핵심이 되었다. 즉, 작가 본인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캐릭터 뒤에 숨을 수도 없고 본인의 목소리와 생각, 가치관과 태도가 그대로 그 작품의 핵심 매력이 되거나 핵심 단점이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소위 ‘작가주의’라는 단어와 가장 잘 들어맞는 면이 있다. 재미있게도 가장 가볍고 일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생활툰이 가장 작가주의적인 형식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어쿠스틱 라이프>의 난다 누나는 그러한 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보물 같은 작가다.

생활툰을 만만하게 보아선 절대 안 된다는 글을 여기까지 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망생이라면 생활툰을 습작으로 경험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작은 소재에서 출발해 테마를 담아내어 하나의 서사를 만드는 훈련을 반복한다는 것은 작가라는 씨앗을 발아시키는 훌륭한 토양이다. 나의 경우에도 데뷔 전 습작했던 <소왓툰>이라는 생활툰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내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있다는 것. 당시의 이런 배움들이 아직까지 이야기를 만드는 나날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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