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형훈,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FM 동현

2014.09.04
문이 닫힐 때 새로운 문이 열린다. 오직 노래로만 승부하는 나얼을 동경하던 백형훈은 문을 향해 끊임없이 소리쳤다. 대답은 없었다. 수많은 실패를 겪으며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 새로운 문이 열렸다. 자신이 기존에 세운 기준을 모두 흔들어놓는 개안과도 같은 신세계. 기회의 소중함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버린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향해 죽도록 달려가는 에너지뿐이었다. <화랑>의 문노나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북한군 조동현은 말보다는 행동이, 즉흥보다는 체계를 중요시하는 백형훈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누군가에게는 답답하게 보일 만큼 FM 같은 모습은 성실과 노력의 힘을 믿는 곳에서부터 나왔다. 우직함이 만들어낼 그 길의 끝이 궁금해졌다.

1. 뮤지컬배우입니까?
Yes.
2010년 <화랑>으로 데뷔해 <모차르트!>, <프라미스>, <명성황후> 앙상블을 했고 최근까지 속을 알 수 없는 차가운 북한군 (웃음) 조동현 역으로 <여신님이 보고 계셔>(이하 <여신님>)에 출연했다.

2. 꿈의 직업이었습니까?
No.
원래는 가수를 하고 싶어서 오디션을 엄청 봤다. Mnet <슈퍼스타 K>도 슈퍼위크까지 갔고, 3대 기획사 중 한 곳에서 남자그룹 마지막 멤버 뽑는 오디션 최종까지도 갔었다. 그런데 늘 잘 안 됐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만의 잣대가 없었다. ‘어떤 스타일이든 어디든 좋으니까 가수만 되면 좋겠다’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내 목소리도 못 찾고 어울리지도 않는 스타일의 노래를 자꾸 고집했던 것 같다.

3. 새로운 세계를 만났습니까?
Yes.
한참 가수 준비 중일 때 스티브 발사모의 ‘겟세마네’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됐다. 혼자 발라드를 부르는 경우 그 가수에 대한 팬심이 어느 정도 있는 게 아니면 혼자 무대를 채우는 게 쉽지 않다. 근데 스티브 발사모는 엄청난 관객이 있는 무대 한가운데서 노래와 연기가 섞인 어떤 것으로 무대를 꽉 채우고 있더라. 영어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심정으로 어떤 얘기를 하는지 다 알겠고, 울면서 노래하는데 심지어 소리도 잘 나와! 그냥 이건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그게 뮤지컬이더라고. 그래서 모든 걸 내려놓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뮤지컬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시 준비를 따로 해서 서울예대 연기과에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4. 실행력이 좋은 편입니까?
Yes.
막 지르는 성격은 아니지만 생존과 관련된 거였으니까. (웃음) 이번에 <시야플랫폼: 배우들>이라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그것도 좀 비슷했다. <여신님>에 출연한 배우들이 다들 바쁜 반면,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나는 이후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 <여신님>도 운으로 된 것 같은 느낌도 있어서 좀 더 배우고 리딩처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작업을 경험해보자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걸 발견한 거다. 아침 10시에 오디션을 봤는데 이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겟세마네’를 오디션 곡으로 선곡해둔 상태였다. 오래간만에 이른 시간에 노래를 했더니 이거 안 되겠더라. 오디션 직전까지 지하주차장에서 악을 바락바락 지르면서 연습하다가 극장 관리해주시는 분께 그만 좀 하면 안 되겠냐는 말도 들었다. (웃음) 근데 그렇게 해야만 했다. 노래도 그렇게 어려운 곡을 골라놓고 못 불러버리면 그건 그냥 허세잖아.

5. 필승의 곡이 있습니까?
No.
‘겟세마네’ 후반부가 저음부터 고음까지 다 가니까 음역대 보여주기가 좋아서 오디션장에서 자주 불렀다. 서울예대 입시도 그 곡으로 붙었고. 그래서 그게 필승의 곡이라고 생각하고 <이석준의 이야기쇼>에서 ‘겟세마네’를 불렀었는데 괜히 했다 싶더라. 너무 못해서. (웃음) 아무래도 가수를 꿈꿨으니까 노래 잘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도 있고 어려운 노래에 대한 욕심도 있다. 그 욕심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의 ‘난 괴물’도 연습해봤는데 너무 힘들다. 그런 넘버는 진짜 그런 작품을 하게 됐을 때 작품 속에서만 하는 걸로 마음먹었다. (웃음)

6. 발산하는 넘버를 좋아합니까?
Yes.
아직은 어려서인가 보다. (웃음) 무대에서 다 쏟아냈을 때 전율 같은 걸 느낀다. <여신님>에서 동현은 늘 관찰자 같은 인물로 있다가 ‘돌아갈 곳이 있어’ 넘버에서 눌러놨던 마음을 드러낸다. 그때 동현이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하는지를 늘 정확히 보여주고 싶어서 펑펑 우느라 노래를 제대로 못 할 때도 있었는데, 그렇게 부르고 소대로 빠지면 내가 하얗게 된 기분이 든다. 멍해지는 거지. 뮤지컬의 매력이 사실 그게 아닐까 싶다.

7. 잘해낼 자신이 있습니까?
Yes.
나는 아직 대본이랑 연출님한테 의지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한다. 게다가 공연은 보는 분들이나 하는 사람들이나 라이브니까 드라마가 깨지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다. 주로 객석을 보지 않고, 보게 된다고 해도 관객과 관객 사이를 보는 이유도 그래서다. 관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집중력이 깨지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다. 말 잘 듣고. (웃음) 내공이 아직 안 돼서 그 이상은 할 수도 없다. 예전엔 못한다는 소리 들으면 ‘그럼 하지 말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사진제공. 우란문화재단

8. 영향을 받은 이가 있습니까?
Yes.
<여신님> 공연 중에 대사 하는 순간이 거짓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진)선규 형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뭔가 연기적인 걸 알려주고 조언을 해줄 줄 알았는데, “난 너무 좋았는데? 그냥 너를 믿고 계속 하던 대로 해. 네가 생각했던 것만큼 못 했다 하더라도 내가 거기서 받아서 너한테 다시 주고 그걸 서로 주고받으면 되는 거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라고 하셨다.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지. 내가 흔들릴 때도 형은 끝까지 믿어주겠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용기를 많이 얻었다. (정)문성이 형도 장난을 많이 치는 편인데 연출님께 원석을 발견한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 다들 좋게 봐주시니까 너무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저렇게 칭찬해줬는데 저 말이 무색해지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다.

9.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습니까?
Yes.
평소 웅장하면서도 처절함이 있는 넘버들을 좋아하는데, 이번 <시야플랫폼: 배우들>에서 불렀던 곡 중 하나가 포크송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걸 못하는구나를 느꼈지. (웃음) 변희석·채임경 음악감독님이 느낌이나 드라마적으로 많이 만져주셨다. 변 감독님은 감독님 자체가 음악이고 일할 때 되게 섹시하다. (웃음) 채 감독님은 노래 해석이랑 다양한 보컬 능력을 갖고 계셔서 배우면 치료받는 기분이었고. 작업을 하면서 과연 내가 이걸 즐기면서 부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무대에서 어느 순간 즐기고 있더라. 안 해봤던 것도 막상 해보면 즐겁다는 걸 알게 됐다.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게 돼서 다행이지. 시야를 통해서 정말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 어? 라임인데? (웃음)

10. 꿈꾸는 미래가 있습니까?
Yes.
<서편제>의 유봉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는데, 정확히는 <서편제> 자체를 너무 하고 싶은 것 같다. 동호보다는 유봉이 더 마음속에 들어와서 유봉을 선택한 거고, 내가 여자였다면 송화를 탐냈겠지. (웃음) 처음에 <서편제>를 보고서는 영화를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내추럴하고 절제미가 있어서 좋았다. 또 최근에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엘리자벳>의 루케니인데, 그 캐릭터 같은 건 주인공이 아니어도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어서인 것 같다. 폭발하는 힘이 넘버만 들어도 느껴졌으니까.

11. 박은태 팬입니까?
Yes.
<이석준의 이야기쇼>에서 ‘겟세마네’랑 ‘나는 나의 음악’을 불렀더니 팬이 그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은태 배우 팬이에요?” (웃음) <모차르트!>를 같이 하기도 했고, 형도 가수를 꿈꾸다 뮤지컬로 왔고, 음역대도 비슷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팬 맞다. (웃음)

12. 자신을 잘 드러내는 편입니까?
No.
무대는 내가 아니니까 할 수 있는데 무대 아닌 곳에서는 내가 드러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나얼 같은 가수가 되고 싶었다. 노래를 너무 잘해서 노래를 들으면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데 나얼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온전히 노래로만 평가받고 본질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런 사람처럼 되고 싶어 했기 때문에 평소 밖에도 잘 안 돌아다니고 나가도 맨날 후줄근하게 하고 다닌다. (웃음) 근데 가끔 알아보시는 분들이 계셔서 깜짝깜짝 놀란다. SNS를 안 하는 것도 첫 번째는 귀찮아서이지만 혹시라도 실수할까 봐서다.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고 귀찮아질 일 자체를 만들지 말자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렇다. 근데 이제는 성향을 좀 고쳐야 될 것 같다.

13. 꼭 하고 싶은 게 있습니까?
Yes.
KBS <불후의 명곡>에는 꼭 나가고 싶다. 군생활 할 때 삶이 팍팍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성적인 것을 찾게 됐고, 음악을 통해 감동을 받는 <불후의 명곡>을 보기 시작했다. 바다 씨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부른 ‘옛사랑’이나 김진호 씨의 ‘가족사진’ 같은 무대는 우승 여부를 떠나 너무 감동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TV에 손자가 나오는 걸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시고. (웃음) 지금도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거니까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을 것 같다.

14. 지금 행복합니까?
Yes.
<여신님>을 할 때 부담이 많이 됐었다. 나보다 동생들도 있지만 경력으로는 나보다 더 오래 한 친구들이 많았다. 형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저분들 사이에서 폐가 되면 안 되는데 같은 생각이 강했고. 나한테 선규 형은 되게 큰 존재였는데 “넌 잘될 거야. 너랑 하는 게 정말 좋았어”라고 해주셔서 너무 감동이었다. 이거면 됐다 싶을 정도로. (웃음)

15. 마지막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백형훈.
1987년생. 노래의 힘을 믿는 빛나는 원석.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놀면 뭐하니?' 효리X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