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발견│①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흑역사였다

2014.09.02

탈영, 자살, 대입 실패, 청소년 가출, 방화, 살인의 원인은? KBS <연애의 발견> 속 대사에 따르면 이 모든 건 연애 때문이다! 물론 과장된 것이겠지만, 세상 모든 것을 파스텔 톤으로 채색한 것처럼 마음을 붕 뜨게도, 이와 함께 자신의 가장 밑바닥에 깔린 찌질함까지 기어코 드러내게도 되는 그 수많은 감정의 기복들을 떠올리면 연애란 분명 위험한 경험이다. 사회적 예절과 규범의 안전거리가 극도로 좁혀진 상황에서 벌어지는 아찔한 순간들. 아름답게 혹은 애틋하게만 그려지던 기존의 로맨스물들과 달리 최근 <연애의 발견>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이 이와 같은 연애의 음지에 시선을 돌리는 건 그래서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은 현실 연애에 대한 솔직한 긍정일까, 새로운 방식의 판타지일까. 어쨌든 이제 누구도 연애가 마냥 아름답다는 말에는 속지 않는다.


연애라 쓰고 흑역사라 읽는다. KBS <연애의 발견>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5년 동안 사귀고 5년 전 헤어진 한여름(정유미)과 강태하(에릭)가 우연히 재회하며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그린 이 드라마에서 두 사람이 공유하는 연애의 기억 중 상당수는 쪽팔리고 일부는 몸서리쳐지는 것들이다. 백일 기념으로 처음 호텔 숙박에 도전했다가 프런트에 한마디도 못 하고 돌아왔던 일이 민망하되 젊은 날의 귀여운 일화 정도로 기억될 수 있다면, 기분 전환하러 간 여행에서 싸우고 헤어지거나 이후 전화로 울고 불며 매달린 일들은 정말 삭제하고 싶은 기억이다. 볼 꼴 못 볼 꼴 다 본 두 사람에게 연애란 아름답거나 애틋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작품이 제목 그대로 연애의 무엇을 발견한다면, 실패한 연애의 기록을 복기해서만은 아니다. 실패를 경험한 뒤 연애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노라 자부하며 남하진(성준)과 성공적인 연애를 하는 여름도, 그런 여름에게 그리웠노라 말하며 과거를 극복한 듯 보이는 강태하도 얼핏 좀 더 성숙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술에 취해 태하의 집에서 자게 된 여름은 자신의 행방을 묻는 하진에게 거짓말을 하다 들키고, 태하는 둘 사이를 알면서도 자신의 인테리어 프로젝트에 여름의 공방을 참여시키며 쿨하지 못한 관계를 이어간다. 심지어 매사에 신사적인 하진조차 여름과 태하의 관계를 의심하다가 결국 태하와 우격다짐까지 벌인다. 여전히 그들의 연애는 고매한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다. 이 드라마에서 발견하는 것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이 구질구질한 과정 자체가 연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가령 5년 전, “나 요즘 얼마나 힘든지 몰라? 그래도 너 우울하니까 온 거 아니야”라는 태하의 말에 여름은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를 이기적인 인간이라 욕하던 여름 역시 하진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그가 더는 자신과 태하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적반하장으로 못되게 군다. 전자는 상처로 남았지만 후자는 성공했다. 중요한 건 이기적이냐 이기적이지 않으냐가 아니다.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고 싶은 관계에서 이기심은 기본 옵션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양한 장애물을 넘어 순수한 형태로 전달되고 교환되는 것이 연애라는 건 오래된 환상이다. 그보다는 연애의 다양한 양태 속에서 사랑을 짐작하고 느끼는 게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하여 우리에게 가능한 건 이기심과 찌질한 자존심을 버린 성자가 되는 게 아니라 이러한 기본 옵션들 안에서 덜 오해하고 더 이해하는 것뿐이다.


지난봄, 이혼했던 부부의 새로 시작되는 로맨스를 그린 MBC <앙큼한 돌싱녀> 방영 이후, <연애의 발견>, 역시 전 남편과 전 부인이 재회하는 tvN <마이 시크릿 호텔> 같은 작품이 자주 등장하는 건 이런 맥락에서 흥미로운 일이다. 이미 한 번씩 짜게 식어본 경험이 있는 이들 커플에게 연애란 세상에 맞서 둘의 사랑을 지켜내는 애틋한 서사가 아니라, 불신과 못마땅함 속에서 그럼에도 서로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지고지순한 사랑만을 그린 과거의 로맨스물이 반쪽짜리인 건, 단순히 현실 연애의 구질구질한 디테일들을 잡아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 자체가 연애의 반쪽이기 때문이다. ‘무엇을’만큼이나 중요한 건 ‘어떻게’다.

실제로 애정 관계에 대한 최근 담론의 흐름은 ‘무엇을’보다는 ‘어떻게’에 방점이 찍힌다. JTBC <마녀사냥>의 MC와 패널들은 제보자들이 올리는 불편부당한 사연에 대해, 사랑하면 이럴 수 없다고 감정을 진단하기보다는 사랑하면 이러지 않는 게 좋다고 행동을 교정한다.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 역시 기념일을 잊었을 때나 클럽에 갔다가 들켰을 때 메신저로 상대방의 기분을 풀어주고 위기를 모면하는 법을 공부한다. 한동안 하진의 애를 태운 뒤 섹스로 분위기를 반전하는 여름의 연애 스킬도 이런 맥락 안에 있다. 비록 그 과정은 쿨하거나 애틋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언정, 진실한 사랑, 운명 같은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허상을 바라보느라 현실의 연애에 불만족스러워하고 결국 관계를 망치는 것보다는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로소 사랑의 발견이 아닌 연애의 발견을 말할 수 있다. <연애의 발견>을 비롯한 일련의 드라마와 예능은 사랑을 더럽히는 불순물이자 부차적인 것들이라 여겼던 여러 감정과 욕망들이 실은 우리 연애의 매우 본질적인 요소였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덕분에 헤어진 연인에 대해 ‘우리 정말 사랑하긴 했을까’라 노래하던 이들은 이제 희미해진 사랑을 탓하기보다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신이 행했던 순간순간의 행동이 과연 옳았는지 복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이 이불을 걷어찰 만큼 부끄럽다면, 애꿎은 사랑 탓이 아닌 내 탓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하는, 여름은, 그리고 좀 더 나은 연애를 꿈꾸는 모두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흑역사였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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