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틱>, 지식의 저주를 벗어나는 길잡이

2014.08.29

리처드 도킨스는 우리 시대 진화론의 슈퍼스타다. <이기적 유전자>로 가장 널리 알려진 진화생물학자가 되었지만, 이 책은 본인도 인정하듯 윌리엄 해밀턴의 ‘혈연선택이론’을 축으로 엮어낸 대중용 해설서에 가깝다. 그런데 왜 대중은 원조 해밀턴보다 해설가 도킨스를 기억할까? 도킨스는 학계는 물론 영어권 전체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장가다. 더 중요하게는, 그는 진정 탁월한 카피라이터다. 혈연선택론? 무슨 말인지 알게 뭐야. 하지만 의식도 없는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니, 간질간질한 호기심이 들지 않을 도리가 있나.

진화를 작동시키는 자연선택은 개별 생명체가 아니라 유전자 단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을 이 이상 압축하기란 쉽지 않다. 메시지의 압축률이 하도 높아 여러 오해도 샀다. 대표적인 오해는 이 책의 한국어판 뒤표지에 있다. 한국어판은 이 책을 “인간은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이기적인 생존 기계이다”라고 요약했는데, ‘이기적인’의 위치를 ‘유전자’ 앞으로 옮겨야 맞다. 도킨스는(물론 해밀턴도) 인간이 이기적 생존기계라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 그들은 오히려 이기적인 유전자가 어떻게 인간의 이타성을 만들어내는지 입증하려 애쓴다.

숱한 오해를 받으면서도 이 위력적인 메시지는 40년 가까이 살아남아 복제되는 ‘성공적인 진화’를 해냈다. 왜 어떤 메시지는 40년을 살아남고 어떤 메시지는 40초 만에 사라질까. 조직행동론과 리더십 연구자인 칩 히스·댄 히스 형제는 <스틱>에서 이 비밀에 도전한다. 그들은 우리의 기억에 잘 달라붙는 메시지(그들의 표현으로 ‘스티커 메시지’)의 6개 요소로 단순성, 의외성, 구체성, 신뢰성, 감성, 스토리를 든다. 이 기준으로 ‘이기적 유전자’는 단순하고, 허를 찌르고, 감성을 건드린 덕분에 생물학의 가장 유명한 카피가 되었다.

히스 형제가 보기에 메시지 생산자들 대부분은 ‘지식의 저주’에 빠져 있다. 머릿속으로 아무 곡조나 떠올린 다음에, 그 박자를 따라 손가락이나 펜으로 책상을 두드려 보자. 당신에게는 박자를 따라 멜로디가 자동재생 된다. 하지만 박자만 듣는 상대방은 어떤 곡인지를 거의 알아챌 수 없다. 모호한 메시지, 이를테면 “주주 가치 극대화” 같은 메시지는 사장의 머릿속에만 울리고 직원에 가닿지 않는 멜로디와 같다. 지식의 저주를 빠져나오려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내 기사가 늘 실패해서 알지만 이게 정말 어렵다. 히스 형제가 제시하는 스티커 메시지의 6요소는 지식의 저주를 벗어나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메시지의 전달은 카피라이터나 고민할 주제일까. 이 책의 통찰이 진정 강력한 이유는, 말글은 물론 이미지, 숫자, 몸짓언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전달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성 때문이다. SNS나 유머 사이트에서 인기 있는 이미지를 보면 어김없이 단순성과 의외성이 튀어나온다. 탁월한 프레젠테이션은 숫자마저도 단순, 의외, 구체, 신뢰, 감성, 스토리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취업준비생의 자기소개서에도 영업사원 성공사례에도 교사의 교육법에도, 메시지 전달력은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다. 우리는 모두 정보 전달자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째 정치 기사를 쓰고 있다. 경제팀에 보내자니 산수가 안 되고, 국제팀을 시키려니 영어가 젬병이고, 문화면을 맡기에는 감수성이 메말랐고, 사건기자를 만들기엔 치명적으로 게으르다고 조직이 판단했다. 내막 모르는 어른들은 인정받아서 오래 있는 줄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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