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Long Goodbye

2014.08.28
언제든지 다시듣기가 가능하다. 다행이기도 하고 큰일이기도 하다.

생애 처음으로 맡았던 단독 지상파라디오 프로그램이 개편으로 인해 지난 주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작가들과 함께 5년 넘게 지속하고 있는 팟캐스트 <웹툰 라디오>에서 이름도 가져와서 <라디오 웹툰>으로 제목을 정했었다. 지상파에서는 최초로 웹툰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프로그램이었고 진행자도 게스트도 모두 웹툰 작가이거나 웹툰계의 사람들이었던 만큼 이번 종방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별을 예감한 커플이 데이트를 할 때, 전학이 확정된 학생이 친구들과 놀 때처럼 살다보면 끝을 미리 알게 되었으면서도 똑같은 일상을 지속해야 하는 이상한 경험을 한 번씩은 하게 되는 것 같다. 종방 날짜가 결정되고 난 후로 한 달간, 그렇게 연장된 이별의 신선한 감각을 느꼈다. 마지막 한주는 매일매일 코너지기들과 인사를 나누고 청취자들의 안타까움 묻어나는 문자를 읽어주느라 말 그대로 순간의 이별을 길게 늘여서 보내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유희열 씨나 성시경 씨 같은 유명 라디오 진행자들이 마지막 방송 날 생방송 중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몹시도 궁금했다. 어떤 기분일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나 역시 이 시기 한 달 동안 그 일이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뒤로 갈수록 마음이 평정을 찾았다. 이별도 길게 하면 적응이 되나보다 했다.

나는 ‘쿨함’과는 거리가 먼, 상당히 질척이는 사람이다. 멜랑콜리한 기분을 느낄 건수가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입속의 사탕처럼 만끽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 생방송을 하러 가는 날 차 안에서도 역시 나의 이런 기질대로, 첫날 첫 생방송 파일을 다시 들어 보았다. 음, 이 때 이런 말을 했었군. 물론 오그라드는 기분에 끝까지 다 듣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아무튼, 마지막 생방송을 위한 정서적인 준비를 끝냈다는 느낌이었다.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순간에도, 인사를 하러 온 스태프들을 만날 때에도, ‘마지막 방송’이라는 글자가 찍힌 대본을 받아 들었을 때에도 딱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마지막 방송의 요상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일상 속의 일과처럼 끝을 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습공격은 생방송이 시작되고 마이크 앞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순간, 갑작스럽게 감행되었다.

만화 연재의 완결을 겪어본 나는 라디오 종방 역시 얼추 그 연장선상에서 잘 겪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포화는 청취자의 첫 번째 문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동안 고생했다. 덤덤한 내용이었고 별다를 것 없는 문자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이 만화 완결과 같은 ‘막내림’이 아니라 청취자 하나하나와의 ‘개인적인 헤어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라디오는 그런 것이었다. 일상적인 끝을 내려던 애초의 계획은 시작 후 3분 만에 위험해지고 말았다. 마치 레몬 앞의 침샘에서 침이 나오듯, 눈물이 전방으로 쭉- 발사될 기세로 격렬하게 차올랐던 것이다. 안 돼. 지금 울면 큰 일 난다. 질척이는 사람인 주제에 추해지는 것에 대한 면역은 아직 충분치 않은 사람이어서 생방 시작 때 그것도 심야 라디오처럼 정서가 뚝뚝 떨어지는 방송도 아닌 오후 한시 방송에서 그렇게 엉엉 거리는 것은 너무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필사적으로 참아내며 얼추 그 위기를 넘긴 다음부터는 비교적 수월했다. 물론 정해진 마지막 인사를 할 때가 더 큰 고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고 덕분에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추해지더라도 살짝 울먹이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청취자를 많이 아끼는 정서적인 사람이라는 훈훈한 이미지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경험치는 시작이 아니라 끝에서 나온다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은 위대한 경험이지만 나 자신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에는 끝을 내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끝을 스스로 내는 만화의 마지막화 같은 경우도 있지만 우리 삶 속에서 겪는 대부분의 ‘마지막’은 갑자기 던져진다. 거기에는 보통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다가오는 끝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예행연습을 해 본 느낌이다. 안녕 라디오 웹툰.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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