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지 않는 소극장 창작뮤지컬을 만드는 다섯 가지 법칙

2014.08.27
관객이 없어도, 작품이 엎어져도, 임금이 밀려도, 누군가는 지금도 뮤지컬을 만든다. 절망 속에 피는 꽃처럼, 공연 기회와 제작비를 제공하는 단체들이 있고 그들을 지지하는 관객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큐베이팅’이라는 개념이 생소한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는 가능성을 점친 지 겨우 1년 사이에 본 공연을 올린다. 다양한 실험은 불가능하고, 초연의 실패는 재공연 불발로 이어져 기회마저 박탈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개성으로 주목받았던 소극장 창작뮤지컬들이 현실과 급하게 만나 뱉어낸 결과물에서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양상이 보이는 까닭이다. <아이즈>가 찾아낸 ‘망하지 않는 소극장 창작뮤지컬을 만드는 다섯 가지 법칙’은 시장을 움직이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며 그와 동시에 모두가 경계해야 하는 당의정이다.

<빈센트 반 고흐>(사진제공. HJ컬처)

1. 내가 창작뮤지컬임을 알리지 마라
하늘 아래 완벽하게 새로운 이야기를 찾기란 어렵고, 그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드는 뮤지컬은 상상 이상으로 더한 공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뮤지컬은 라이선스든 창작이든 대부분 원작을 먼저 찾는다. 브로드웨이와 한국 모두, 고전 소설이 중심이었다가 21세기에 들어 인기 영화와 드라마로 이동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2011년부터 창작뮤지컬이 주목한 것은 대중에게 익숙한 인물 자체다. <라스트 로얄 패밀리>가 순종을, <삼천>이 의자왕을 다루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해외 유명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셜록 홈즈>, <아가사>, <빈센트 반 고흐>, <살리에르>는 인물 내면의 열등감이나 질투, 불안과 같은 정서를 꺼내 글로벌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오래된 유명 인사들은 특별한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높은 인지도는 물론이고, 저작권에 있어서도 다소 프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라이선스인 듯 라이선스 아닌 라이선스 같은’ 느낌은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좋은 선택지가 되어준다.

<비스티 보이즈>(사진제공. 네오)

2. 가능한 한 여자의 흔적을 지워라
데이트용으로도 기능하는 대극장 뮤지컬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주제로 삼더라도 결국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관객 마음속에 짙게 남긴다. 반면 등장인물이 많지 않고 한 인물에 포커스를 맞춘 소극장 창작뮤지컬은 로맨틱과 거리가 멀다. 소비의 중심이 2535세대의 젊은 여성 관객이어서인지, 좀 더 본질적인 인간의 감정에 대한 탐구 때문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소극장 창작뮤지컬이 인생의 고뇌를 짊어진 ‘남자’를 메인카드로 내밀면서, 여자는 남자들의 관계망을 흔들거나 그들을 각성시킬 뿐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여신님’은 소녀부터 할머니까지 1인 다역으로 큰 존재감을 부여받지만, <비스티 보이즈>를 흔드는 지원은 그저 대사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여자의 흔적이 지워진 곳을 채우는 것은 ‘브로맨스’다. 무대 위에는 생사가 갈린 두 남자(<풍월주>), 서로 다른 두 인격(<트레이스유>), 편지로 감정을 나누는 형제(<빈센트 반 고흐>)가 있고, 여자의 역할은 얼마든지 언제라도 남자로 대체 가능해졌다. 

<블랙 메리 포핀스>(사진제공. 아시아브릿지콘텐츠)

3. 주인공은 분산시켜라
독특한 성향의 인물이 아닌 특수한 공간에 주목한다면, 주인공을 분산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6.25 전쟁 속 남·북한군이 표류하게 된 무인도, <블랙 메리 포핀스>는 입양된 네 남매가 함께 살던 대저택, <비스티 보이즈>는 욕망에 이끌린 호스트바 개츠비에 인물들을 던져놓는다. 동일한 환경과 상황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반응은 캐릭터의 면면을 더욱 정밀하게 구축해내고, 이 관계 안에서 5~6명의 인물들은 다양한 매력을 뽐낸다. 마치 관객의 취향을 저격하기라도 하듯이. 다만 복수의 주인공을 선택할 경우 각자의 사연이 에피소드 나열이 되느냐 전체 서사 안에서 유기적으로 표현되느냐에 따라 작품의 퀄리티나 관객의 이해도가 결정된다. 인물 간 균형감과 서사의 구조를 더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4. 배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5~7명의 인물로 구성된 <여신님이 보고 계셔>와 <블랙 메리 포핀스>, <비스티 보이즈>는 각 배역에 3명의 배우를 캐스팅했다. <파우스트>를 바탕으로 제작된 <더 데빌> 역시 X역에 4명, 2인극인 <트레이스 유>에는 각각 5명의 배우가 참여해 대극장 뮤지컬 못지않은 화력을 뿜어낸다. 멀티캐스팅은 경우의 수를 늘린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인식되지만, 하나의 캐릭터에 대한 다른 해석은 종종 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비슷비슷한 배우의 참여는 배우의 이미지를 빠르게 소진시키고, 관객은 배우의 겹치기 출연으로 작품 사이의 변별점을 찾을 수 없으며, 무대 위 배우의 피로감은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10억 원 안팎으로 제작되는 소극장 뮤지컬의 상황상 세트나 조명, 의상, 음악 등 작품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에서의 비용 절감이 이루어지고, 이는 바로 퀄리티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사진제공. 스토리P)

5. 나만 본 것 같은 ‘레전드 레어템’을 심어라
지금 여기, 너와 내가 순간을 공유한다. 공연이 매력적인 것은 현장성과 희소성 때문이다. 음악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뮤지컬은 애드리브를 지양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관객 서비스에 둔한 것은 아니다. 묵직한 이야기에 지칠 때쯤 등장하는 멀티맨의 코믹한 신이나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무는 동선, 캐릭터들의 반전매력을 보여주는 노래, 그때그때 달라지는 배우의 반응 등은 ‘라이브’의 묘미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예다. <트레이스 유>는 매 회 다른 애드리브로 새로운 기대감을 심고,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그대가 보시기에’나 <비스티 보이즈>의 ‘레슨, 누나 누나’는 발랄한 율동과 쉬운 멜로디로 관객의 시선을 캐릭터로 주목시킨다. 하지만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여섯 인물 간의 관계에 주목해 앙상블의 동력으로 구현된다면, <비스티 보이즈>는 그들의 직업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 물론 두 곡이 일곱 번째와 두 번째 넘버라는 점에서 추구하는 기능이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음악적 서사 안에서 <비스티 보이즈>의 곡은 아쉬움을 남긴다.

어떤 분야에서든 타깃과 트렌드, 시장 상황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장르의 특성을 ‘상업’으로 분류한다면 흥행 공식이 안전장치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은 결국 잘 만든 작품이고, 그것은 대체적으로 크리에이터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할 때 빛난다. 정확한 방향성, 퀄리티를 보장해줄 수 있는 일정 수준의 투자, 그리고 크리에이터들의 양심이 깃든 영리한 설득력. 스스로 ‘호갱’이 되지 않는 건전한 관람 문화 역시 중요하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기 마련이고, 무대의 완성은 관객이 들어선 순간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망하지 않는 소극장 창작뮤지컬을 만드는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본을 지키는 그 자체다. 한 편의 연극과 뮤지컬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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